우에르타 그란데 - fAu

정세를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올바른 사유가 필요하다. 올바른 사유란 현실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단순히 수집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질서 정연하게 배열하며 적절히 활용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올바른 사유의 실천은 특정 지역과 시기에 발생하는 사건을 정확히 분석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사고의 도구가 필요하며, 우리의 과업에서 그 도구는 개념이다. 개념들이 상호 논리적으로 결합된 체계가 형성될 때 사고는 일관성을 획득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이론은 개념의 체계라는 형식으로 요구된다.

이론이 결여된 상태에서는 모든 문제를 개별적이고 고립적으로 다루게 될 위험이 존재한다. 그 결과 매번 상이한 관점에서 출발하거나, 주관적 추측과 단편적 설명에 의존하여 문제를 처리하게 된다.

우리 당이 중대한 오류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일정 수준의 일관성을 지닌 개념 체계에 근거하여 사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론적 사유가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탓에 심각한 오류를 범한 사실 또한 존재한다.

강령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나라의 경제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현실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이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정치 노선을 수립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만약 지식이 불충분하거나 왜곡되어 있다면, 우리는 강령 대신 모호하고 일반적인 노선만을 가지게 될 것이며, 이는 당이 개입하는 모든 현장에서 실행 불가능한 한계를 낳는다. 노선이 불분명하다면 정치적 실천 역시 효율성을 상실하며, ‘의지주의’적 실천은 단지 선의에 기반한 즉흥적 행동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사태의 전개를 예측하지 못한 채 사건들에 의해 규정되고, 단순한 반응적 행위로 귀결된다.

이론적 노선이 결여된 조직은 규모가 아무리 크더라도 현실을 이해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정치 노선은 각 단계에서 도달해야 할 목표로서의 강령을 필요로 하며, 강령은 우호 세력·적대 세력·일시적 동맹 세력을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무엇보다도 나라의 현실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을 전제한다. 따라서 우리는 알지 않으면 안 되며, 알기 위해서는 이론이 필수적이다.

당은 우리 나라와 지역, 그리고 역사적 맥락에서의 국제 노동자 운동을 일관되게 사유하기 위해 명료한 인식의 틀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경제적·정치적·이데올로기적 현실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설정할 수 있는 효율적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이 자료들을 분석할 수 있는 방법 또한 확보되어야 한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을 우선 다루며, 무엇을 후순위로 둘 것인가를 파악함으로써 사회적 개입의 전선에서 우리의 역량을 적절히 배치할 수 있다. 사물들을 체계적이고 일관된 질서 속에서 연결하는 개념적 도식은 목표 달성을 위해 필수적이며, 이러한 도식은 다른 현실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개념을 어떻게 적용하여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천적 사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나라를 인식하는 과업은 우리가 직접 수행해야만 한다. 그 누구도 그것을 우리 대신 수행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장하는 바는 새로운 이론이나 그 분과를 창조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운동 환경과 전문 기관들이 일반적으로 후퇴되어 있으며, 또한 우리가 그 과업을 수행할 여력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정립된 이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선별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어떤 이론이든 비판 없이 교리처럼 수용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전면적 변혁이므로 부르주아지가 생산한 이론을 그대로 채택할 수는 없다. 부르주아적 관념을 수용하는 것은 곧 부르주아지가 의도한 방식으로 사고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루과이와 각 지역을 혁명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사유하고자 한다. 또한 우리는 여러 사회주의 경향을 구성하는 요소들 가운데 혁명적 분석과 실천에 실제적으로 기여하는 요소들만을 선택적으로 채택할 것이다.

유행을 따라 이론을 수용하는 태도는 거부되어야 한다. 상이한 인물들이 상이한 시공간과 조건에서 제기한 ‘인용구’를 단순히 되풀이하는 삶은 결코 이론적이라 할 수 없으며, 이는 오히려 기만적 행위에 불과하다.

이론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자 도구일 뿐이다. 이론은 반드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여 정치적 실천에 기여해야 한다. 우리가 가장 먼저 알고자 하는 것은 우리 나라다. 만약 이론이 정치적 실천에 유용한 지식을 산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용하며 단지 공허한 논쟁이나 불모의 이데올로기 다툼에 지나지 않는다.

최신의 대형 기계를 보유하고도 그것을 작동시키지 않은 채 끝없이 떠들기만 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고, 기만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기계를 두고도 “과거에는 이렇게 했다”는 이유로 굳이 수작업을 고집하는 자 또한 다르지 않다.


이론과 이데올로기의 차이

통상적으로 ‘이론’과 ‘이데올로기’라 명명되어 온 개념들 사이에는 몇 가지 본질적 차이가 존재함을 분명히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론은 구체적 현실을 엄밀히 사유하고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개념적 도구들을 정교하게 구성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론은 과학적 성격을 지니며, 따라서 과학과 동등한 위상을 갖는다고 규정할 수 있다.

반대로 이데올로기는 비과학적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들은 직접적으로 객관적 조건에서 발생하지 않고, 조건과의 관계 속에서 구성된다. 이데올로기는 객관적 조건에 의해 일정하게 제약을 받으나, 그 조건에 기계적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이데올로기는 실천에 활력을 부여하는 기능을 수행하지만, 그 근거는 과학적 분석이 아니라 조건과의 관계에 있다.

구체적 상황을 실제적이고 객관적 차원에서 엄밀하게 분석하는 작업은 가능한 한 과학적 성격을 지향하는 이론의 임무에 속한다. 반면, 동기와 목표, 지향점과 이상적 과제의 제시는 이데올로기의 고유한 영역에 해당한다.

이론은 정치적 실천이 직면한 제약과 한계를 정밀하게 규정하며, 이데올로기는 그 실천에 동력을 부여하고, 나아가 ‘이상적’ 목표와 그 양식을 구성한다.

따라서 이론과 이데올로기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긴밀한 연관이 존재한다. 모든 이데올로기적 제안은 이론적 분석의 결론 위에서 성립하며, 그 결론에 의해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이데올로기가 정치적 실천의 동력으로서 효율성을 가지는 것은 그것이 이론의 결론에 확고히 근거할 때에만 가능하다.


이론적 작업의 범위

이론적 작업은 언제나 역사적 현실의 과정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들에 근거하며 보완된다. 그러나 동시에 이론은 전적으로 사유의 영역에 속하는 작업이므로, 그 안에서는 어떤 개념도 다른 개념보다 더 ‘현실적’일 수 없다.

두 개의 기본적인 명제를 짚고 넘어가자.

  1. 현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과정과, 그것을 인식하고 이해함으로써 얻어진 사유의 과정은 서로 구별된다. 다시 말해, 존재와 사유, 있는 그대로의 현실과 우리가 그것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지식은 명확히 구분되어야 한다.
  2. 사유보다 존재가, 인식보다 현실이 우선한다. 다시 말해, 현실에서 실제로 전개되는 사건 그 자체는 우리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거나 알고 있는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규정력을 지닌다.

우리는 이 기본 명제들에서 출발해, 이론적 작업의 성격과 범위를 정확히 파악하여야 한다. 이는 엄밀하고 과학적인 지식을 획득하려는 목적에 따라 이루어지는 인식의 노력이다.

이론적 작업은 언제나 미리 주어진 원재료에 기초한다. 이론은 구체적 현실 그 자체에서 직접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에 관한 정보와 자료, 개념들에서 비롯된다. 이 1차 재료를 이론적 작업을 통해 일정한 개념과 사유의 도구들로 다듬은 결과물이 지식이다.

다시 말해, 현실에 존재하는 것은 구체적이고 단일한 물질이다. 그리고 역사적 상황, 특정한 사회, 특정한 시기에 의해 서로 다르게 규정되는 물질계를 인식하는 과정이. 이론적 작업인 것이다.

때로 이론적 작업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사유 속에만 존재하는 추상적 대상을 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대상은 단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물을 이해하기 위해 불가결한 도구이자 전제 조건이다. 예컨대 ‘사회 계급’이라는 개념이 그렇다.

지식의 생산 과정에서 원재료(현실에 대한 피상적 인식)는 가공되어 산물(그 현실에 대한 엄밀하고 과학적인 지식)로 전환된다.

“과학적 지식”이라는 용어는 사회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정의되어야 한다. 현실에 적용될 때 그것은 엄밀한 개념어를 통해 현실을 파악하는 것, 곧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가장 가깝게 다가서는 것을 뜻한다.

사회 현실을 이해하는 과정은 다른 연구 대상과 마찬가지로 무한히 심화될 수 있다. 물리학이나 화학 등 다른 과학들이 각자의 연구 대상을 이루는 현실에 대해 무한히 지식을 확장할 수 있는 것처럼, 사회과학 역시 사회 현실에 대한 지식을 끝없이 심화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 현실에 대해 “완결적으로” 이해한 후에 사회변혁을 위한 실천을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는 부적절하다. 동시에, 사회를 깊이 알지 못한 채 변화시키려는 시도 역시 마찬가지로 부적절하다.

사회 현실과 사회 구조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정보와 통계 자료 등을 다루고, 이론 속에서 주어지고 형성되는 보다 추상적인 개념적 도구들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이론적 작업의 실천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개념적 도구들을 점차 더 정밀하고 구체적으로 생산하며, 그것이 곧 우리 주변의 구체적 현실을 인식하는 데 이를 수 있다.

충분히 깊고 과학적인 이론적 이해를 통해서만, 사회 현실을 변혁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지향, 가치, 이상 등)이 원칙의 일관성과 정치적 실천의 효율성을 갖춘 형태로 발전될 수 있다.


정치적 실천과 현실을 알기

따라서 효율적인 정치적 실천은 다음을 요구한다. 현실에 대한 인식(이론), 그 인식을 변혁의 목적적 가치들과 조화롭게 결합하는 것(이데올로기), 그리고 그 변혁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수단(정치적 실천)이다. 이 세 요소는 변증법적 통일 속에서 결합하여 당이 지향하는 변혁의 노력을 형성한다.

이런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론이 완성될 때까지 실천을 미뤄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이론의 전개는 학문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무에서 시작되지도 않는다. 이론은 이데올로기적 가치와 정치적 실천의 존재에 의해 그 근거를 두고, 추동력을 얻고, 발전한다. 그 요소들은 이론보다 역사적으로 먼저 존재하며 이론의 발전을 추동한다.

계급투쟁은 그 이론적 개념화보다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피지배계급의 투쟁은 이론적 작업이 공식화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 투쟁의 존재는 그것을 아는 지식보다 앞섰고, 그 존재에 대한 이론적 분석보다 먼저 존재해왔다.

따라서 이 기본 명제에서 도출되는 것은 행동(정치적 실천)이 근본적이고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유효한 이론적 틀을 정립하는 것은 오직 실천과 실천이 전개되는 구체적 조건 속에서의 실재적 존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 틀은 단순히 내부 논리만 갖춘 추상적 진술들의 무가치한 축적이 아니라, 집행 과정의 전개와 일관성을 가지는 틀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효율적으로 이론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동해야 한다.

그렇다면 실천의 긴급성을 이유로 이론을 버릴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이론적 분석에 적절히 근거하지 않고 오직 이데올로기적 기준에만 의존한 정치적 실천, 다시 말해 근거 없거나 불충분한 토대 위에 세워진 실천이 존재할 수 있다. 이는 우리 환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우리의 현실, 더 나아가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현실에서 이미 충분히 개념화된 적절한 이론적 분석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그런 수준에 전혀 이르지 못했다. 이는 다른 현실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론은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그러나 수십 년, 수십 년 동안 투쟁과 대립은 계속되어 왔다. 이 점을 이해한다고 해서 이론적 작업의 근본적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앞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다. 우선은 실천이 우위에 있다. 그러나 그 실천이 얼마나 효과적인가는 현실에 대한 더 엄밀한 인식에 달려 있다.

우루과이의 사회적 구조 속에서 이론의 전개는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효율적인 이론적 개념들의 집합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것들은 가능한 한 방대한 자료 위에서 만들어져야 하고, 이 자료가 곧 이론 전개의 원재료를 이룬다.

자료가 그 자체로, 고립적으로, 적절한 이론적 개념 처리를 거치지 않은 채 검토된다면 그것은 현실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오히려 그 자료는 단순히 장식되거나,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는 기능 속에서 왜곡된다.

또한 추상적 개념들만으로도, 혹은 충분한 배경 정보만으로도 현실에 대한 더 깊은 인식을 얻을 수는 없다.

우리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이론적 작업은 대체로 이 두 가지 잘못된 극단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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