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는 자선이 아니다 : 우리가 상호부조에 반대하는 이유 - 블랙 플래그 시드니

최근 몇 년간 좌파 진영에서 상호부조라는 용어가 폭발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특히 이 말은 소규모 자원봉사자 집단이 모여 일정한 형태의 자선 활동을 실천하는 방식을 가리키는 말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노숙인에게 음식과 담요를 제공하거나, 지역 공동체 정원을 조직하거나, 낯선 이의 자동차 브레이크등을 고쳐 경찰의 단속을 피할 수 있게 돕는 일과 같은 활동을 펼쳐왔다. 물론 이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다른 활동도 존재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이러한 서비스 제공 방식에 주목하고자 한다. 우리에게는 이것이 상호부조라는 경향을 가장 잘 대표하는 형태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직적 노선을 지향하는 사회적 아나키스트로서 이 전술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좌파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좀 더 적극적인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열망에 공감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에 대한 열기가 점차 확산되는 흐름은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접근은 광범한 사회정치적 맥락과 분리될 때 정치적 막다른 길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상호부조란 무엇인가

상호부조란 동물,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종이 자기 자신과 전체 종의 이익을 위해 협력하려는 경향을 뜻한다. 이 용어는 진화 과정에서 상호부조가 종의 생존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임을 밝혀낸 아나키스트이자 과학자였던 크로포트킨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는 사회적 협동을 일종의 이타적 사랑이 이끄는 것으로 본 낙관적 인본주의자들, 그리고 다윈의 경쟁 개념을 가져와 기존 자본주의 사회 질서를 정당화하고 강화하려 했던 보수적 사회진화론자들 모두에 맞서고자 했다.

크로포트킨은 인간의 협동 경향이야말로 아나키즘적 공산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이라고 보았다. 과학적 관점에서 인류는 조화로운 사회를 유지하는 데 군대나 경찰, 자본가의 지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문명을 결속시키는 힘은 권위가 아니라 연대여야 했다. 경쟁적 시장경제는 사회적 혼란을 낳지만, 자유로운 생산과 분배에 기초한 사회는 더 안정적인 질서를 구축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바쿠닌과 프루동 등 앞서 존재한 아나키스트들이 이미 제기한 견해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었다. 특히 프루동은 자신의 사회철학을 ‘상호주의’라 부르며, 상호성·호혜성의 원리에 따라 사회를 점진적으로 재편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여기서 ‘상호주의’라는 용어는 원래 리옹의 급진적 노동자 집단이 스스로를 ‘뮤튀엘리스트(Mutuellistes)’라 칭하며 사용하던 표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며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노동자운동 역시 함께 성장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성과는 노동조합이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계급적 이익을 위해 결집했을 때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형태로 부상했다. 그러나 노동조합만이 유일한 노동계급의 제도는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전투적 노동조합은 협동조합, 신용조합, 친목단체와 긴밀히 결합해 함께 존재했다.

이러한 평화적 제도들은 수십 년 동안 노동자운동의 핵심을 이루었으며, 급진적 흐름과 개량적 흐름 양쪽 모두와 맞물려 있었다. 양질의 저렴한 의료 서비스가 부재하던 시기, 노동자들은 매달 임금의 일부를 모아 의료 인력을 고용했다. 마찬가지로, 지역 상인들이 소비재에 과도한 이윤을 붙여 판매하자 노동자들은 소비협동조합을 설립해 도매가를 활용하고, 조합원들에게 더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제공했다.


오늘날 상호부조는 무엇인가?

오늘날 급진적 담론에서 상호부조란 흔히 일종의 서비스 제공 방식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는 자선단체나 국가의 원조와 같은 주류적 서비스 제공 방식과는 어느 정도 구분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2020년 10월 Current Affairs에 실린 케이트 루트의 글은 이러한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현대 세계에서 인간들 사이에 나타나는 상호부조의 수많은 사례”로서 임신중지 기금, 보석금 기금, 풀뿌리 차원의 법률 및 강제퇴거 대응, 재난 구호, 식량 배분 등을 열거한다.

주류 비정부기구와 국가가 관료적이고 위계적이며 조작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는 반면, 상호부조 집단은 수평적이고 아래로부터 조직되며, 구성원을 역량화하고 공동체의 요구를 진정성 있게 표현한다. 상호부조 집단은 종종 합의에 기반한 의사결정, 채용상근지도부의 부재, 선출직의 정기적 교체와 같은 민주적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유급 상근자를 두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상호부조는 흔히 ‘자선’과 대비된다. 상호부조가 긍정적이고 급진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반면, 자선은 부정적이고 보수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우리가 상호부조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

간단히 말해, 대부분의 상호부조 단체는 그 이름에 걸맞은 성격을 갖추지 못한다. 대다수의 경우 자선과 상호부조 사이의 ‘차이’는 무너지고 만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강한 상호성의 원리가 작동하는 사례는 소수에 불과하다. 실제로 이런 단체들은 주로 다른 누군가를 대신하여 활동한다. 어떤 조직을 진정으로 상호적인 형태로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사람들은 대개 음식 부족, 임금 체불 등 자신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 이런 단체를 찾기 때문이다. 문제가 해결되면, 혹은 단체가 도움을 줄 수 없을 경우, 사람들은 쉽게 발길을 끊는 경향을 보인다.

노동자들의 이러한 태도는 우리가 살아가는 냉혹한 자본주의 체제의 부산물이다. 노동조합과 같은 연대의 제도들은 강제적 탄압이나 체제 내 통합 과정을 통해 와해되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극도의 단절감을 느끼며, 직장 내 부당대우와 같은 불만을 개인적 문제로 경험한다. 그들은 더 열심히 일하고 어떻게든 출세의 사다리를 오르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여긴다. 최악의 경우 노동자들은 그러한 성취를 이루지 못한 원인을 자기 무지나 무능 탓으로 돌린다. 이러한 환경은 필연적으로 반동을 낳는다.

이러한 태도를 깨뜨리려면, 노동자들은 자신의 계급 동료들과 그들을 대표하는 제도들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이러한 신뢰를 구축하는 과정은 점진적이며,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명확한 전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립된 ‘상호부조’ 프로젝트만으로는 그러한 과정을 실질적으로 진전시키기 어렵다는 점은 분명하다.


서비스 제공의 나락

오늘날 상호부조 집단의 대다수는 음식 제공, 법률 지원, 자동차 브레이크등 교체와 같은 서비스 제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상호부조 집단은 이러한 활동을 지속적이고 일정 규모 이상으로 이어가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고, 결국 스스로의 활동을 현실적으로 조정하게 된다. 즉, 공동체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스스로 탈정치화하는 경향을 띠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업 후원이나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기존 비정부기구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지만, 소규모 상호부조 집단에도 그 압력은 그대로 작용한다.

예컨대 난민운동에 참여하는 비정부기구들은 폭넓은 재정 후원자를 확보하기 위해 활동을 조정한다. 이들은 난민들이 겪는 가장 심각한 문제를 본질적으로 인도주의적 사안이나 사회적 공감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으로 제시한다. 실제로 난민 문제는 의도적이고 치밀하게 설계된 정치적 기획의 결과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업 기부와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대규모 보수적 비정부기구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급진적 상호부조 단체라고 해서 이러한 압력에서 예외일 것 이유는 없다. 활동을 위해 ‘공동체’에 의존해야 하는 단체는 필연적으로 그 ‘공동체’를 비판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지역 청과상인으로부터 잉여 식량을 제공받아 재분배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면, 그 상인들이 노동자를 착취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주저하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 소부르주아지가 노동자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점을 드러내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서비스 제공 활동은 그것에 관여하는 사회주의자들을 비계급화하는 경향이 있다. 노동계급이 잠재된 힘을 스스로 자각하도록 호소하는 대신, 공동체에 기부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노동계급의 정의는 잠재적 비노동계급 지지자들까지 포괄하도록 확장되거나, 대중영합적이고 무해한 방식으로 재구성된다. 스탈린주의자들처럼 부르주아지와 “인민전선”을 꾸리는 데 거리낌이 없는 세력에게는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기준을 가진 사회주의자들에게는 심각한 문제다.


자선 : 혹세무민가의 도피처

스탈린주의자들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자. 최근 좌파가 “상호부조”에 매혹되면서 나타난 가장 혐오스러운 부산물 가운데 하나는 이 용어가 온갖 추악한 집단들에 의해 거의 저항 없이 전유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에서부터 오스트레일리아 광물위원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흉측한 제도들은 자선 프로젝트를 통해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그리고 상호부조가 좌파식 자선으로 퇴행함에 따라, 좌파 분파들 또한 점차 비슷한 방식을 모방하려 드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상호부조 프로젝트를 전개하는 일은, 그것이 ‘기층’ 전략의 일부이든 단순히 ‘당’ 건설의 수단이든 간에, 분파에게 긍정적인 명성과 모집 수단을 동시에 제공한다. 선의를 가진 사람들은 전위단체에 빨려 들어가고, 분파는 비판자들에게 즉시 사용할 수 있는 방어 논리를 갖추게 된다. 곧, “너희는 말뿐이지만 우리는 실제로 나가서 인민을 위해 봉사한다!”라는 식이다. 대중은 굶주려 있고, 당은 그들을 돕기 위해 나섰다는 주장이다.

아마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분명한 사례는 ‘공동체 단결 방어 동맹(Community Union Defense League, CUDL)’일 것이다. 이름은 ‘껴안다(cuddle)’로 발음되는 듯하다. CUDL은 원래 호주공산당(Communist Party of Australia)의 노상급식 프로젝트로 출발했으나, 2019년 분당 이후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당시 노상급식 활동가들과 일부 인사들은 불만을 품고 탈당한 전 당 서기장 밥 브리튼과 함께, 기발하다고 할 수 없는 이름의 오스트레일리아공산당(Australian Communist Party)을 결성했다.

호주공산당(CPA)의 힘은 예나 지금이나 좌파 노조 관료조직 안에 존재한다. 이들은 녹색당과 같은 선거 기반도, 여러 트로츠키주의 집단들과 같은 주요 활동가 기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1970년대, 원래의 유럽공산주의적 성격을 띠던 호주공산당에서 친소 분파로 갈라져 나온 이후 계속되어 왔다. 반면 오스트레일리아공산당(ACP)은 출범 당시 기존 당의 노조 활동가들을 끌어들이는 데 실패했고, 결국 기반을 잃은 채 방황하게 되었다. 그 결과 CUDL이 대신 그들의 활동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CUDL은 활동적이라는 점 하나만은 부정할 수 없다. 이들의 활동은 노상급식을 넘어 ANZAC 데이 새벽 추모식에서 차와 비스킷을 제공하고 레거시를 위한 모금을 진행하는 일에서부터, 이혼을 이유로 사제를 해고한 덜리치힐 성공회 교회를 상대로 한 피켓 시위, 그리고 입스위치에서 잔디를 깎아주는 일까지 다양하다. 이들의 웹사이트에는 “상위 1%가 호주 인구의 70%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다!”와 같은 뻔한 구호가 담긴 포스터와 함께,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초』의 PDF 파일, 그리고 파블로 네루다가 쓴 기이한 시 「당에 부쳐」까지 실려 있다.

정치적 색채가 옅은 자선 활동과 극도로 정치적인 스탈린주의가 뒤섞인 이 뜨거운 혼합물이 과연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러나 네루다의 시가 앞날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비영리 부문 구인 게시판인 ethicaljobs.com.au의 최근 공고에 따르면, CUDL은 자발적으로 주당 “8~12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모금 코디네이터(Fundraising Co-ordinator)”를 모집하고 있다. 이 “비교적 신생 단체”는 “정부, 지역 기업, 대기업으로부터 기부금·보조금·후원을 확보할 수 있는” 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공고에 따르면 “높은 동기와 회복탄력성”을 갖춘 모금 코디네이터는 “호주 전역의 모든 정부·기업·지역 공동체 단체의 문을, 실제로든 온라인으로든 두드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 공고에 응답하게 될 사람을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아마도 실습 경험을 찾는 사회복지학과 학생이거나, 정원 가꾸기나 론볼 경기를 하느니 차라리 자선 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은퇴자가 공고에 응할 것이지만, 누구건 험난한 여정을 겪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어쨌든 결과는 둘 중 하나다. CUDL이 역사상 최초로 기업 후원과 정부 보조금을 확보한 ‘마르크스-레닌주의’ 단체가 되든가, 아니면 스스로 색깔을 옅게 조정해 자금을 확보하든가.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상호부조”라는 명칭은 새롭지만, 좌파가 사회사업에 관여하는 관행 자체는 오래된 일이다. 이러한 활동은 1960~70년대 미국 신좌파 집단들의 주된 실천 가운데 하나였다. 좌파의 다수가 낭만적으로 바라보아 온 흑표당의 경우, 무료 아침식사 프로그램이나 학교와 같은 사회적 지원 조직망을 구축한 결과, 많은 당원들이 자유민주주의적 선거정치로 통합되는 길을 열었다. 실제로 흑표당은 1977년 오클랜드 시장 선거에서 라이오넬 윌슨을 당선시켰고, 그는 이후 우익 정치인이 되었다.

더 직접적인 사례로는 공산주의노동자당(Communist Workers’ Party, CWP)과 그들의 전위단체인 평등을 위한 아시아계 미국인들(Asian-Americans for Equality, AAFE)을 들 수 있다. 공산주의노동자당은 한때 전투성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1979년 그린즈버러 학살에서 쿠 클럭스 클랜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평등을 위한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성장하면서 당은 점차 노선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여러 신좌파 조직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1984년 제시 잭슨의 대통령 선거 출마를 지지했고, 이듬해 공식적으로 새로운 형태로 변모했다. 당시 당 서기는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들을 선출직이나 임명직에 앉히고 나면 친구들에게 계약을 몰아줄 수 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자금을 모을 수도 있다. 우리가 그것을 적절한 장소와 분위기에서, 겉모습까지 그럴듯하게 갖추어 해내면, 그리고 주류 정당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그 돈은 그들로 하여금 우리를 진지하게 대하게 만든다.” 오늘날 AAFE는 뉴욕 차이나타운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착취적인 지주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민주당의 메커니즘에 완전히 얽혀 있다. 그들의 ‘비영리 단체’ 지위는 전형적인 지주 행위를 감추는 얇은 가림막에 불과하다.


기부하지 말고 반란하라

서비스 제공 단체가 초래하는 가장 심각한 실제적 효과는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의 기본적 비판을 약화시킨다는 점이다. 사회주의는 단순히 인민의 생활 수준을 높이거나 삶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공산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의 삶은 비할 데 없이 더 나아질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인민의 고통의 근원이 자본주의와, 자본의 이익을 위해 노동계급을 체계적으로 착취하는 구조라고 본다. 따라서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그것의 철폐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전략은 바로 그 목표를 중심에 두고 사유재산 체제를 전복하고 공산주의로 대체할 수 있는 힘을 형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물론 그 투쟁 과정 속에서 조건 개선은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임금 인상을 쟁취하고, 주민들은 지방의회가 녹지와 공동체 시설을 제공하도록 강제하며, 세입자들은 집주인의 강제 퇴거를 막아낸다. 그리고 노숙인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행위 자체는, 그 일을 하는 주체가 가톨릭 교회건 스탈린주의자건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다. 이 글은 그것에 반대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적하는 근본적 오류는 조건 개선을 그것 자체로 목적화하여 전략적 전망을 무력화하는 태도다. 조건 개선은 노동계급을 강화하고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을 전진시키는 경우에만 전략적 가치를 지닌다.

우리는 지역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는지를 고민할 때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첫째, “상호부조”에서 “상호”라는 부분을 어떻게 진지하게 실현할 것인가. 둘째, 법률방어기금과 같은 모금·자선 프로젝트를 어떻게 노동계급 반란을 위한 일반 전략의 일부로 구성할 수 있는가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자본과 나란히 앉을 수 없으며 그것과 협력할 수는 더욱 없다는 것이다. 단순히 “공동체 권력”을 키워 국가를 흡수할 수 있을 만큼 성장시키면 사회주의 사회가 실현된다는 발상은 오류임이 이미 증명되었다. 우리는 자본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다른 일에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댓글 쓰기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