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향 아나키즘 조직의 기초개념 - 토미 롭슨

초록

정향 아나키즘 조직의 기초개념은 토미 로슨이 집필한 소책자다. 이 소책자자에서 로슨은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과 그들의 조직적 실천을 형성하는 기초적 개념들을 소개한다. 이 개념들을 바탕으로, 아나키즘 경향의 역사 전반에 걸쳐 공유되어온 조직 형태와 전략들이 형성되어 온 것이이다.

기초개념은 마르크스와 말라테스타 같은 이론가들의 사상에서부터 현대의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조직들의 실천에 이르기까지, 아나키즘에 영향을 준 계보를 추적한다. 인민과 계급투쟁에 대한 물질적 분석을 중심에 두는 실천을 통해,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보다 나은 세상, 곧 자유롭고 평등한, 자유의지주의적 공산주의를 위한 투쟁에 기여하고자 한다.

이 팸플릿은 쿨린민족 와타우룽부족의 땅 위에서 집필되었다. 이 땅의 주권은 결코 양도된 바 없다.

이 문건을 니콜라 라자레비치에게 바친다. 그는 건설노동자이자 번역가였으며, 러시아 내전에서 싸웠고, 붉은 2년 동안 북이탈리아의 공장을 점거했으며, 거리에서 이탈리아 파시스트들과 싸웠고, 스페인 혁명을 지지하는 파업을 벨기에에서 조직했다. 그는 생애 전반에 걸쳐 소비에트 연방의 범죄를 폭로했고, 19685월 프랑스의 점거에도 참여했다. 라자레비치는 아나키스트 총동맹의 조직적 강령령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 그처럼 혁명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다.

 

서문

이 소책자의 목적은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의 조직 모델, 전략, 전술을 형성하는 기초 개념들을 소개하는 데 있다. 이 글에서는는 이러한 개념들을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정리하기는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 소책자가 아나키즘이나 사회주의 이론 일반에 대한 입문서는 아니다. 본문은 아나키즘적 공산주의라는는 정치 경향이 존재해온 역사 전반에 걸쳐,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조직들이 일반적으로 실천해온 방식을 반영하려 했다. 물론, 역사적 조직과 현대 조직 사이에는 이론과 실천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이론과 실천의 집합으로서의의 정향 아나키즘 조직이라는 총론은 분명히 존재한한다. 독자들이 각 조직의 맥락과 실천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세부 내용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할 동기를 얻기를 바란다.

이 소책자에 포함된 주제들과 개념들은 관련된 다양한 개념들을 포괄하려는 시도이며, 동시에 어느 정도는 아나키즘 운동 안에서의 나의 편향과 경험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이 작업은 어디까지나 기초 개념들에 대한 설명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며, 오류가 있다면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조직 전체가 아니라 나에게 책임이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또한 어느 정도는 오스트레일리아 운동의 분위기와 경향을 반영한다. 예컨대, 현대 오스트레일리아의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정향 아나키즘 조직 이론, 즉 정향 아나키즘(Especifismo)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촉해왔다(Murphy, 2020). 그러므로 어떤 개념이나 주제는 포함된 것만큼이나, 생략된 것으로도 그 의미를 드러낸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이론의 폭과 일관성을 보여주기 위해, 참고문헌 목록을 단순히 나열하기보다는 특정 텍스트들을 의도적으로 인용하였다. 인용은 가능한 한 풍부하게 했으나 과도하지 않도록 하였고, 접근성을 고려하여 되도록 『The Anarchist Library』, 『Libcom』, 『Marxists Internet Archive』와 같은 온라인 자료들을 인용하였다. 서적을 인용한 경우는 주로 번역의 질에 따른 선호이거나, 아직 온라인에 게시되지 않은 경우다.

각주에서는 때때로 더 자세한 설명이나 보충 정보가 제공되며, 각 절 사이에 연결되는 개념들의 관련성도 드러낼 것이다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에게 중요하거나, 역사적 맥락을 알아야 하거나, 실천적 사례와 함께 볼만한 주제들은은 더 깊이 다루었으며, 어떤 개념은 혁명적 사회주의 이론 전반에 이미 포함되어 있기에 간략히 기술하였다. 이 글이 오스트레일리아 내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경향을 공고히 하고, 더 나아가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며, 국제 동지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정향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조직이란 무엇인가?

현대적인 정향 아나키즘 조직개념을 형성한 사상들은, 국제노동자협회(IWMA) 내의 사회민주주의 동맹(Alliance for Social Democracy)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인터내셔널이라고도 불리는 IWMA는 초기 사회주의 운동이 국경을 넘어 결집하던 시기를 반영하며, 노동계급 해방의 의미를 둘러싼 사회주의 사상들의 쟁투를 보여준다. 1인터내셔널 내부에서 제임스 기욤, 미하일 바쿠닌, 그리고 다른 연방주의적혁명가들은 혁명적 목표를 고취하기 위해 정향적인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의 필요성을 주장했다(Graham, 2015). 아나키스트들이 실천한 단일한 혁명조직의 역사적 계보는 이들이 설계한 사회민주주의 동맹의 기초적 구조로부터 출발하여 오늘날까지 붉고 검은 실로 이어지고 있다. 정향 아나키즘 조직은 일관되게 투사들이 활동을 조율하고, 이론과 실천, 기술을 발전시키며, 아나키즘 사상을 집단적으로 선전하는 공간으로 기능해왔다(Federazione dei Comunisti Anarchici, 1985).

아나키즘은 학자들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비교적 포괄적인 철학으로 여겨지지만, 그 이론적 뿌리와 역사적 추종자들의 실천은 명백히 조직 중심의 계급투쟁적 사회주의 운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역사적으로 특정한 혁명적 정치조직과 대중적 프롤레타리아 조직을 함께 건설해왔다. 반면 반란주의자나 조합주의자 같은 다른 흐름은 이를 거부하기도 했다(Corrêa, 2021).

오늘날 독자들에게 가장 익숙할 수 있는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조직 이론의 현대적 표현은 정향 아나키즘(Especifismo)’으로 알려져 있다. 정향 아나키즘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 우루과이 아나키즘 연맹(FAU), 아나키스트 조직의 프로그램화 필요성에 대해 도달한 결론을 가리키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다. FAU는 우루과이 노동자 봉기와 군사독재에 대한 저항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정향 아나키즘 모델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그리고 미주 전역으로 확산되었다(Lawson, 2022).

정향 아나키즘의 사상과, 러시아 혁명 이후 페트르 아르시노프, 아이다 메트, 네스토르 마흐노 등이 작성한 아나키스트 총동맹의 조직적 강령의 사상은 여러 측면에서 유사하다. 놀랍게도, 우루과이의 아나키스트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발전시킬 당시 강령을 접하지 못했다. 물론 이들은 1920년대 중반에 강령을 모델로 채택했던 불가리아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 연맹(FAKB)에 대한 역사적 맥락은 인지하고 있었으며, 그 영향을 받았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운동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이들과 대다수 추종자들은 조직 형태에 대해 약간의 이견이 있더라도, 일관된 전략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Corrêa & da Silva, 2022).

오늘날 강령주의’, ‘이중조직론’, ‘정향 아나키즘이라는 용어들은 역사적 배경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호환된다. 이 팸플릿에서는 아나키즘적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이러한 역사적 실천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해당 용어의 정통성에 대한 복귀를 제안하고자 한다. 동시에, 지난 세기 동안 결코 정체되지 않았던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사상을 현대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도 담고 있다.

아나키는, 사회주의와 마찬가지로, 조건의 평등을 그 기초이자 출발점으로 삼고, 연대를 그 등불로 삼으며, 자유를 그 방법으로 삼는다. 그것은 완성도, 절대적 이상도 아니다. 수평선처럼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나키는 모든 진보와 모든 개선이 모두를 위한 것이 되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 에리코 말라테스타, 『아나키』, 1891


핵심 개념

이 팸플릿의 첫 번째 절은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에게 기초가 되는 핵심 개념들에 대한 개괄적 설명을 제공한다. 이러한 개념들은 정향 아나키즘 조직의 조직 이론과 모델, 전략, 전술이 드러내는 이론적 토대를 이룬다. 여기 제시된 목록은 일반적인 아나키즘 이론 전체를 포괄하지는 않는다. 일부 개념들은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과 다른 아나키스트들이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 사이의 차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포함되었다.

아나키즘

아나키즘은 이념적 원칙들의 집합체이자, 핵심 전략들과 자유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이다. 더 나아가, 아나키즘은 내에서 혁명적이며 계급투쟁적 경향을 가진 사회주의의 한 경향이다. 아나키즘의 원칙은 반자본주의, 연방주의, 그리고 수단과 목적 사이의 가장 조화로운 관계를 추구하는 데 있다. 이러한 원칙들은 계급투쟁, 자율적 자기관리, 직접행동, 의회주의 거부를 기초로 하는 일련의 전략들을 수반한다. 그 목적은 모든 착취와 강제에서 벗어난, 노동자들이 직접 운영하는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Workers Solidarity Federation, 2018). 궁극적으로 아나키즘은 하나의 방법론이다(말라테스타, 1891). 아나키즘적 방법론은 그 원칙들과 전략으로 구성되며, 그 목적은 공산주의로 향하는 것이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에게 있어 공산주의는 곧 아나키와 동일한 것이다(카피에로, 1880).

공산주의

공산주의의 핵심은 잘 알려진 격언 능력에 따라 받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말로 요약된다(마르크스, 1875).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임금노동, 상품화, 교환가치의 철폐를 의미한다.

공산주의는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결합으로 묘사되는 새로운 사회의 구성이며, 그것은 개인성의 최대 실현을 보장하는 집단적 방식과 원칙들의 집합이기도 하다(푸엔테, 1932; 국제공산주의자 그룹, 1930).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삶에 필요한 필수적인 자원에 접근할 수 있으며,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민주적 참여와 개인으로서의 성장 가능성을 보장받게 된다. 나아가 공산주의는 착취적 관계들을 폐지함으로써 계급 구분 자체를 소멸시킨다.

계급투쟁

자본주의 사회는 궁극적으로 두 개의 기본적인 계급으로 나뉜다. 하나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들, 즉 부르주아지로 불리는 자본가 계급이다.

자본가는 산업에서의 이윤을 극대화해야 하므로, 생산비를 절감할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 상품의 가격을 높이는 방식은 시장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므로, 자본가들은 다른 대안을 모색한다. 노동자를 고용하는 대신 자동화 기계에 투자하거나, 더 저렴한 재료를 사용하거나, 임금을 삭감하는 방식이다.

반면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자신이 가진 유일한 자산, 즉 노동력을 판매해야 한다. 노동자는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제공하는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이 임금으로 노동자들은 식량과 의류를 구입하고, 집세와 공과금을 지불하며, 출퇴근 비용을 포함해 삶을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감당한다. 따라서 노동자의 임금이 높을수록 삶의 가능성과 충만함도 커진다. 이 점에서 노동자와 자본가는 본질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경제적 이해의 대립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논리는 사회 전체를 이윤 창출의 필요에 종속시킨다. 정부 정책(예컨대 자본가들에게 과도한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방기되고 있는 기후대책), 지역 개발 계획, 대중매체의 콘텐츠, 심지어 가족 구조까지 자본의 이해가 지배한다. 사회에서 생산되는 모든 것은 사회 전체의 필요가 아니라 이윤을 위해 생산된다. 인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의 삶 전체가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지배에 종속되어 있다는 뜻이다.

모든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이든 마르크스주의자들이든)에게 있어 이러한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본주의의 폐지다.

중간계급이라 불리는 계층들(농민, 자영업자, 장기 실업자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계층은 역사적 조건에 따라 자본가계급에 맞선 투쟁에 함께하기도, 그렇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의 기본적인 모순은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에 뿌리박고 있으며, 따라서 궁극적으로 주요 갈등이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갈등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노동계급이 사회 변혁에서 핵심적 존재인 이유는 단지 그들의 물질적 요구가 자본가의 이해와 충돌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혁명적 전환의 과정에서도 사회는 생존을 위해 계속 생산해야 하며, 이때 생산을 운영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기술과 지식을 가진 계급은 바로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노동계급은 사회 변혁의 가장 중요한 주체가 된다.

계급의식

계급의식이란,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자신이 처한 위치를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 자본주의가 사회적 세계를 어떻게 구성하는지, 자신들이 어떻게 착취당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 체제를 어떻게 전복하고 새로운 체제를 어떻게 구성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이를 간결하게 표현한 바 있다. 노동계급은 처음에는 즉자적으로 존재하지만, 투쟁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새로운 사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싸우는 과정에서 대자적이 된다는 것이다(마르크스, 1847). 이 문장은 다소 추상적이지만, 특정 시기의 노동자들 사이에 지배적인 정서와 정치적 의식을 파악하는 데는 유용하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개인이 사회 속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자기 자신의 능력(개인적인 능력 뿐 아니라 집단적 능력까지)을 인식할 때, 계급의식이 가장 충만하게 실현된다고 본다(Bookchin, 1975).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계급의식이 프롤레타리아의 물질적 필요와 부르주아지의 이윤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는 과정에서 유기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과 그들의 정향적 조직은, 다른 모든 노동자계급의 정치조직들과 마찬가지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갈등 속에서 나타나는 발전을 반영한다. 그러나 정향적 조직은 자신들을 혁명적 의식의 최종 산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정치적 비전과 이념을 가진 노동자들이 대중 투쟁에 기여하고, 그 속에서 자신들의 통찰을 명확히 표현하려는 시도일 뿐이다(Federazione dei Comunisti Anarchici, 2003).

자유

자유라는 이상은 아나키스트 세계관의 중심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 용어는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에게 자유는 두 가지 측면을 포함한다. 부정적 자유, ‘~로부터의 자유와 긍정적 자유, ‘~할 자유이다.

부정적 자유는 억압적인 사회관계로부터의 자유로 인식된다. 자본주의, 국가, 빈곤,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혐오 및 모든 형태의 인간관계 속 차별로부터의 해방이다. 부정적 자유 없이는 긍정적 자유도 존재할 수 없다.

긍정적 자유는 무언가를 성취하고, 인간 개인으로서의 잠재력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것에서 비롯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원, 교육, 그리고 건강하고 평등한 사회에의 접근이 필요하다. 따라서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에게 있어 자유는 개인주의적 기반 위에서가 아니라, 사회를 통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 미하일 바쿠닌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사회는 인간 존재의 기초이며 시발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개인과의 통합을 통해, 그리고 사회의 집약적 힘을 통해서만 자신의 개별적 자유 또는 개성을 실현할 수 있다. 유물론적 이론에 따르면... 사회는 개인의 자유를 축소하거나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창조한다. 사회는 뿌리와 가지이며, 자유는 그 열매다(Bakunin 1895/1973, p. 145).”

민주주의

급진주의자들, 특히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는 종종 정의를 둘러싼 의미론적 혼란으로 인해 지장을 받는다(Baker, 2022).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그러한 혼란을 자주 겪기에, 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만약 민주주의를 자본주의 국가들의 부르주아 행정체계, 즉 인민이 몇 년에 한 번씩 정당이나 정치인을 선출하는 체제로 간주한다면, 아나키스트들은 이러한 민주주의에 반대한다(Price, 2018).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위선적이며, 본질적으로는 부르주아, 자본가의 이익을 위장한 독재에 불과하다. 물론 이러한 체제는 문자 그대로의 독재보다는 나을 수 있다.

그러나 급진적이고 계급적인 민주주의를 논할 때, '민주주의'라는 단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란 몇 년에 한 번씩 노동자 후보를 선출해 노동자 의회에서 경제 운영에 관한 결정을 내리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는 그러한 노동자 민주주의 역시 반대한다. 그것이 부르주아 민주주의보다는 나을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민주주의는 공리주의 철학의 짐 또한 짊어지고 있다. , 다수를 위한 것이 모두에게도 최선이라는 사고방식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관행으로서, 표결은 50% + 1의 지지를 얻으면 승리하게 된다. 다수결은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전통에서 항상 지배적인 실천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전체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에서는 언제나 자유의지주의적측면이 강조되어 왔다.

다수가 항상 소수에게 지시할 권리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소수가 다수에게 지시하는 것은 더욱 잘못된 일이다(Malatesta, 1926).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는 인민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강제 없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논리를 따라간다면,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가 긍정적으로 정의하는 민주주의란 그것의 가장 급진적인 실현을 의미한다. 모든 인민은 일터와 지역사회에서의 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다수의 의견은 존중되지만, 그것이 소수의 권리를 침해할 경우에는 예외이다. 이러한 개념의 적용은 전적으로 실천적인 것이며, 경우에 따라 다수의 결정이 존중되어야 할 때도 있다(Price, 2000). 예컨대 특정 지역에 철도 노선을 건설할지를 결정할 때에는 실질적으로 다수의 지지가 필요할 것이다. 반면, 어떤 단체에서 다수가 엄격한 복장 규정을 강제하려는 경우는 터무니없을 것이다.

인민 다수가 직접 참여하기 어려운 경우, 아나키스트들은 특유의 위임실천 방식을 제안한다. 결정될 사안들은 사전에 지역 조직들에 의해 토론되며, 그들의 결정과 견해가 대의원에게 전달된다. 대의원은 자신이 대표하는 견해에 따라 발언하고 투표할 것이 기대되며,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자율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진다. 모든 위임 회의 이후, 대의원은 그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을 경우 소환되고 교체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의 민주주의는 독특하며, 소수자나 개인을 불필요하게 제한하지 않으면서도 사회 생활 속에서 대중참여를 실현하는 체계라 할 수 있다.

수단과 목적

표면적으로는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수단과 목적의 연결성은 아나키즘의 핵심이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자유로운 사회의 비전을 궁극적 목표로 삼으며, 이런 사회에 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 역시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적합해야 한다고 본다. 투쟁 속에서 채택되는 수단은 추구되는 목적에 영향을 미치기에, 이는 단지 의도가 아니라 실제로 나타나는 결과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Malatesta, 1920)

모든 철학적 논의와 마찬가지로, 수단과 목적이라는 개념을 논할 때 적절한 추상적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예컨대, 수단과 목적의 일관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전쟁없는 세상을 원한다면 반드시 평화주의에 헌신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전쟁없는 세계를 열망함에도 불구하고, 이는 아나키스트들의 입장인 것은 아니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에게 있어 피억압자가 억압자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인류 해방에 기여하는 한 정당화될 수 있다. 동시에 군국주의 위에 세워진 사회는 평등하고 자유의지주의적인 사회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기에, 억압자에 맞선 무장투쟁의 실천은 아나키즘에 의해 일정한 일관성을 요구받는다.

수단과 목적의 연결성을 통해,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수단이 투쟁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자주관리와 조직화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Price, 2020). 이런 기본 입장으로부터 연방주의와 직접행동의 논리가 파생된다. 따라서 조직의 모든 구성원이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하며, 위임된 대표자들은 엄격한 통제 속에서 선출되어야 하며, 권력은 지도적 지위에 있는 이들에게만 제한적으로 부여되어야 함과 동시에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투쟁이 강조되어야만 한다. 사회주의적 가치의 본질과 미래사회에 대한 상은 추상적일 뿐 아니라 다양한 경향에 의해 논쟁대상이 되기에, 아나키스트들이 지지하는 투쟁의 형태는 노동자계급이 혁명적 수단과 목적을 스스로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보장하는 데에 기여할 수 밖에 없다(Kinna, 2016).

사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은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과 마르크스주의자들 모두가 공유하는 철학적 개념이다. 이 이론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에서 처음으로 명확히 정식화되었으며, 이후 미하일 바쿠닌에 의해 초기 아나키즘 이론으로 통합되었다(Morris, 1993, #78). 사적 유물론은 완결된 사고 도구는 아니지만, 구체적 조건들을 사유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Organização Socialista Libertária, 2007). 이 이론은 사회에 존재하는 사상들이 단지 공허한 추상물로서, 사람들의 인식만을 기다리는 유령처럼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그것들은 특정한 역사적 시기,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맺는 실천적이고 물질적인 상호작용의 직접적 결과다(엥겔스, 1880).

사적 유물론에 따르면, 인류 역사의 각 단계는 생산양식, 즉 인간이 자신을 재생산하고 환경을 변화시키며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환경과 맺는 관계의 형태에 의해 규정된다. 인간은 생산하고, 소비하고, 자신들의 삶을 재생산하며, 그 속에서 세계를 구성하고 종국에는 인류 종 자체를 재생산한다. 각 단계는 고유한 계급 관계들을 포함하며, 따라서 다양한 모순들을 내포하고, 이 모순들은 갈등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추동한다(Federazione dei Comunisti Anarchici, 2003).

이러한 모순들로부터 새로운 생산 형태들이 등장하게 된다. 인류 역사는 계급 간 충돌의 연속이었다. 예컨대 고대 로마의 노예 반란, 중세의 농민 반란, 자본주의의 출현 이후 벌어진 러시아 혁명과 스페인 혁명 같은 노동자 봉기가 그 예다.

물론 이것이 역사가 예정된 경로를 따른다는 뜻은 아니다. 역사에는 우연한 사건들이 존재하며, 인간의 행위는 언제든 그 흐름을 바꿀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 기술의 발전과 과학적 혁신이 그러하듯, 계급투쟁은 인류사의 방향성과 형성을 규정하는 일반 원리로 작동해왔다.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통찰을 일종의 발전 법칙으로 해석하여, 모든 사회가 공산주의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일련의 단계들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러한 환원주의적 해석은 역사적 유물론의 혁명적 함의를 제거해버린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부 아나키스트들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론 자체를 거부해왔으며, 이 또한 중대한 오류다. 다니엘 게랭은 이렇게 말한다. “역사적 유물론은 단순한 결정론으로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자유의지와 대중의 혁명적 자발성에 대해 문은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Guérin, 1981).

아나키즘은 마르크스의 사상에 경직되게 복종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이념적 목적을 위해 모든 올바른 과학적·철학적 이해를 활용하려 한다.

사회경제적 의미에서 불의의 원인은 인간의 의식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충돌하는 계급으로 구성된 사회의 비인간적 본질에 있으며, 역사 전반에 걸쳐 그것을 영속시키는 국가에 있다.”

 — Guillén, 1993

변증법

변증법은 오랜 철학적 기원을 지닌 개념이다. 아나키즘과의 관련성은 사회주의 철학 일부 경향이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헤겔과 결별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마르크스, 엥겔스, 바쿠닌, 그리고 당시의 급진적 청년 집단 전체는 헤겔의 영향을 받았으며, 헤겔은 변증법을 정명제(thesis), 반명제(antithesis), 합명제(synthesis)’의 형식으로 개념화했다.

변증법을 추상적인 개념으로 단순화하여 설명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이 개념은 급진주의 문헌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수준에서 설명할 필요는 있다. 정명제는 이미 존재하는 사물이나 관계이고, 반명제는 그것의 부정 또는 반대다. 이 둘은 충돌하며, 서로를 파괴하거나 흡수하는 과정을 거쳐 합명제가 발생한다. 헤겔은 이러한 사고를 정신 같은 추상적 영역에 적용했고, 마르크스는 이를 사회 계급에 적용했다. 자본주의 사회관계를 규정하는 계급이 부르주아지라면, 프롤레타리아는 그에 대응하는 반명이며, 양자는 충돌을 통해 소멸되고, 그 대립은 공산주의라는 합명 속에서 해소된다.

이러한 추상적 사유 방식은 때때로 유용한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마르크스를 계승한 엥겔스는 변증법을 철학과 사회과학을 넘어 자연과학 등의 분야에도 적용하려 했고, 이는 여러 측면에서 의문을 남긴다.

그럼에도 물질주의 철학에 변증법을 적용하는 것은 사물과 사회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복수의 힘들이 충돌하는 역학적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점을 설명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이론 속에서 때때로 변증법 개념을 활용하지만, 이 개념이 모든 아나키스트들에게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미하일 바쿠닌이나 엘리제 르끌뤼와 같은 고전적 사상가들은 각각 나름의 변증법적 사고를 갖고 있었지만, 표트르 크로포트킨은 변증법이 자연의 법칙과 현실을 오도할 수 있다고 보며 이 개념 자체를 거부했다(McLaughlin, 2002; Clark, 1997; Kropotkin, 1913; Organização Socialista Libertária, 2007).

이론과 이데올로기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에게 있어 이론과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요소 사이에는 명확한 구분이 존재한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기보다는, 그것이 이론의 생산과 나란히 나아가는 고유한 위치를 가진다고 본다.

이론은 현실을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지적 도구와 개념의 산물이다. 그것은 가능한 한 객관적이기를 지향하며, 논리, 사실과 자료의 수집, 검증 가능한 가설에 기초한다. 반면, 이데올로기는 대중을 행동으로 이끄는 추상적 원칙들의 집합이다. 아나키스트들에게 이데올로기는 본질적으로 정치적 행동의 추진력이다(Mechoso & Corrêa, 2009).

아나키스트들은 사회주의가 필연이라 믿지 않기에,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의식적 열망은 노동자계급 내부에서 형성되어야 함과 동시에 계급투쟁 그 자체에서 비롯된 통찰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고 본다. 혁명가로서의 실천은 역사적 특정 시점에서 우리가 보유한 제한적 과학적 지식에 기반한 수 밖에 없지만, 우리가 목표를 달성하려는 노력을 멈출 이유는 아니다. 나아가 이론의 발전은 이데올로기적 가치들에 의해 자극을 받는다(Organização Socialista Libertária, 2007).

아나키스트들은 사회주의가 필연적이라 믿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의식적인 열망은 노동자 계급 내부에서 형성되어야 하며, 이는 계급투쟁 그 자체에서 비롯된 통찰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혁명가로서의 실천은 역사적 특정 시점에서 우리가 보유한 제한된 과학적 지식에 기반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노력을 멈출 수는 없다. 나아가, 이론의 발전은 이데올로기적 가치들에 의해 자극을 받는다

국가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에게 국가는 강제력을 갖춘 중앙집중적 제도이자 사회 내 계급관계의 표현이다. 미하일 바쿠닌은 국가는 언제나 특정한 특권 계급의 유산이었다. 그것은 사제 계급일 수도, 귀족 계급일 수도, 부르주아 계급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Bakunin, 1950). 표트르 크로포트킨은 자본과 국가는 서로를 필요로 하며 병렬적으로 성장해온 존재들로, 어느 한 쪽도 상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고 보았다(Kropotkin, 2014, #498). 에리코 말라테스타는, “대다수 인민이 소수의 소유 계급에 의해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는 사회에서는 반드시 하나의 특수 계급(정부)이 등장하며, 이 계급은 소유 계급을 합법화하고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서술했다(Malatesta, 1920). 웨인 프라이스는 국가를 자본주의 경제의 맥락에서 이해하려는 이론들 가운데, 아나키즘과 마르크스주의가 두드러진다고 분석한다(Price, 2018).

아나키즘과 마르크스주의 모두에서 국가는 계급투쟁의 표현으로 이해되지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아나키스트들보다 부르주아 국가의 일부 요소들을 역사적으로 더 진보적으로 간주한 바 있다(van der Walt & Schmidt, 2009, p. 96). 그러나 아나키스트들은 마르크스주의보다 더 나아가, 국가가 위계적이고 중앙집중적인 구조이며, 불평등을 방어하기 위해 강제적 수단을 사용하는 제도라고 본다(Baker, 2019).

국가는 경찰, 군대, 법률 체계와 사법부, 감옥, 그리고 이 모든 억압적 기능 위에 군림하는 관료제를 포함한 여러 기관들을 통해 지배를 강제한다. 국가는 또한 의료, 대중교통, 기반시설 같은 서비스를 조직하지만, 이는 자본주의 사회가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들이다. 국가가 제공하는 일부 긍정적서비스들은, 노동계급의 투쟁을 통해 쟁취된 양보의 산물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국 국가는 자본주의 사회를 재생산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는다.

아나키스트들은 국가를 분석할 때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국가는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적 지배를 영속시키기 위해 존재하지만, 그와 동시에 특정 사회 내 다양한 자본가들과 분리된 독자적 이해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따라서 국가의 모든 활동을 항상 자본가들의 이해에 단순히 종속된 것으로 환원하는 것은 오류이다. 부르주아지 내부의 이해관계는 때로 충돌하며, 이는 개별 자본가들 간의 대립, 국제 자본의 이해, 그리고 특정 사회의 정치 계급 간의 긴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조건에도 불구하고, 국가라는 장치와 사회적 지배 형식 자체는 철폐되어야 한다. 집행 권력을 가진 소수에 의해 사회가 중앙집중화되는 방식은 불평등을 재생산한다. 어떤 형태로든 국가를 유지한 채 자본주의 사회를 전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아나키스트들은 무장한 사회주의 국가가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체제를 원하지 않는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계급사회를 규율하는 법률적, 군사적, 행정적 제도의 폐지를 지향하며, 이를 대신해 공산주의적 생산 방식에 기반한 자율적이고 연방화된 프롤레타리아 조직들을 수립하려 한다(Federazione dei Comunisti Anarchici, 2008).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국가의 역할을 무시한 채 자본주의를 폐지할 수 없다고 보지만, 동시에 국가를 파괴한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자동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

억압적 사회관계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자본주의와 국가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인종주의, 성차별, 동성애혐오, 트랜스젠더 혐오 등 모든 형태의 억압에 반대한다. 일관된 역사적 유물론적 분석은, 특정 사회에서 이러한 억압이 구체적으로 형성되는 방식이 그 사회의 역사적·생산적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예컨대, 미국에서 흑인 노동자와 백인 노동자 사이의 인종적 분열을 조장하는 구조가 그 예다(Rashid, 2021). 계급 구조는 비계급적 억압들이 형성되는 데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억압은 단순히 자본주의 기능으로만 환원될 수 없다. 각각의 억압 형태는 그것의 구체성 속에서 분석되어야 한다(Price, 2007). 그러나 계급, 인종, 젠더가 중첩되는억압이라고 보는 자유주의적 교차성 이론은 현실을 정확히 포착하지 못하며, 실천적으로도 유의미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Volcano & Rouge, 2013).

계급은 모든 노동자를 하나의 공동 기반 위에 놓는 착취의 구조이며, 저항 속에서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연대는 오직 억압적 관계들이 개인적 차원과 집단적 차원 모두에서 도전받을 때에만 실현 가능하다. 더 나아가, 젠더와 같은 정체성과 억압에 관한 이론적 발전은 계급투쟁의 틀 속에 통합되어야 분석과 실천이 유의미하게 유지될 수 있다(Akemi & Busk, 2016).

식민주의

호주에서의 그 어떤 혁명적 정치이론에 대한 논의들에서도 식민화의 문제는 반드시 다루어야 한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에게 식민화는 토착인민이 그들의 땅에서 축출당하는 과정이다. 식민화 과정은 자본주의적 사회관계가 전세계에 퍼지기 이전에 이미 시작됐지만, 초기자본의 이해관계에 의해 그 형태가 형성되고 추동됐다. 식민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고유한 과정이자 제국주의와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기도 하다. 자본의 축적을 위한 정치적 이해관계는 중앙집권화를 요구하며,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국가 이외의 어떤 사회체제도 용인하지 않는다. 따라서 식민화라는 물질적 과정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도 결코 끝나지 않는다(Bonanno et al., 2019).

오늘날 자본주의는 자원착취, 이윤추구, 부르주아 국민국가 건설이라는 기획 속에서 여전히 토착 공동체를 파괴하고 그들을 축출하고 있다. 현재진행형인 식민화 계획은 강제동화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는 부르주아 국가기획 외부에 존재하는 토착인민의 자율성과 정체성을 부정하는 데 기초한다(Melbourne Anarchist-Communist Group, 2008).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는 토착 공동체의 실질적 자율성이든, 어떤 의미의 탈식민화든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식민화를 끝낼 유일한 길은 국가와 자본의 실질적 폐지 뿐이다.

연방주의(개념)

연방주의는 아나키스트 정치사상에서 가장 뚜렷하게 구별되는 특징 중 하나이다. 그것은 동시에 아나키스트 조직이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론이자, 혁명적 사회조직의 모델이다.

연방주의는, 조직이 항상 아래로부터 위로, 주변에서 중심으로자발적으로 동의되고 구성되어야 하며, 상위 기구는 하위의 기층 조직들이 결정한 과업을 위임받아 수행하는 구조를 지향한다. 연방을 구성하는 각 단위는 자율적으로 운영되며, 상위 조정 기구는 하위 기구에 대해 집행 권한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조직들이 서로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Rashid, 2020). 사회적이든 정치적이든 일정한 원칙을 기반으로 연방에 참여한 개인이나 지부는, 그 연방의 합의된 원칙에 대한 실천 여부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서로와 공동체에 대해 책임지는 구조는 자본주의 사회와 정반대다. 자본주의에서는 노동자는 서로가 아니라 사장에게만 책임을 지며, 소규모 자영업자는 노동자가 아니라 국가에 책임을 지고, 국가는 인민이 아니라 강력한 자본권력에게 복무한다. 물론 자본주의 국가들 중에도 연방주의적구조를 가진 사례들이 존재하지만, 진정한 혁명적 내용을 연방주의에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회주의뿐이다(Guérin, 1970). , 프롤레타리아 연방주의는 부르주아적 연방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연방주의는 노동자들이 자기 문제를 스스로 통제하는 것을 의미하며, 노동자 통제를 토대로 한 진정한 사회주의를 수립하고, 변혁적 실천을 위한 공간을 형성한다. 그러므로 연방주의는 말 그대로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역사적으로도, 다수의 대규모 노동조합 조직들이 연방주의적 실천에 기초해 형성되었다.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자들의 국제노동자협회(IWA)는 전성기에는 수백만 명의 조합원을 거느리면서도 연방주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었다.

연방주의는 일반적으로 중앙집권주의와 대조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공동의 활동이나 결정이 중앙 수준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핵심은, 사회조직의 중앙기구가 그 하위 단위들 위에 집행 권력을 가진 소수를 형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앙집권주의는 대개 효율성을 이유로 정당화되지만, 실상은 자율성과 주체성을 억압하고, 소수에게 특권을 집중시킴으로써 조직 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경제 영역에서도 중앙집권주의는 만능 해결책이 아니다. 어떤 산업은 대규모 작업장과 공장이 더 적합할 수 있지만, 다른 경우는 지역 기반 생산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연방주의는 이러한 유연성을 가능케 하며, 사전 규정된 중앙집중 혹은 분산의 도그마에 얽매이지 않는다. 둘 중 어느 하나에 대한 교조주의도 결국은 기존 자본주의 사회 구조에서 비롯된 관성일 뿐이다.

사회적 힘

사회적 힘이라는 용어는 아나키스트 문헌들에서 집합적 힘이라는 표현과 혼용된다. 이는 본질적으로 집합적 행위 능력, , 함께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는 누군가 자신의 노력을 결합함으로써 혼자서 이뤄낼 수 없는 것들을 이뤄낼 수 있다는 상식적 전제를 담고 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보자면, 이는 자유주의로부터 이탈이다. 예를 들어, 자본가들이 자신이 개인적으로사업의 성취를 이루었다고 주장하는 것을 생각해보라. 그러나 아나키스트들에게 있어 모든 노동, 모든 생산은 집합적 노력이다. 개인이 노동을 수행할 때조차, 그는 과거에 기술을 발전시키고 과학적 발견을 이루고 사회적 삶의 재 생산 기반을 마련한 사람들의 노동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Rashid, 2020).

이런 집합적 행위능력으로서의 사회적 힘 개념은,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 피억압 사회집단들이 함께 연대하여 싸워야 한다는 필요성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 발전했다. 바쿠닌은 이 개념을 조직의 전술적 필요성과 결부시켜 다음과 같이 확장했다.

인민에게는 위력적인 원초적 힘이 존재하며, 이는 정부나 지배계급 전체의 힘을 초월하는 것이나, 조직 없이 이런 원초적 힘은 진정한 힘이 아니다. 조직된 힘이 인민의 원초적 힘보다 가지는 부정할 수 없는 우월성 위에 국가권력이 세워져 있다. 그러므로, 핵심은 인민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지가 아니라, 인민이 성공적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내는 조직을 건설할 수 있는지에 있다.” — 미하일 바쿠닌(Corrêa, 2009)

따라서 아나키스트들의 과제는 노동자계급과 피억압자들이 자신의 사회적 힘을 인식하고, 이를 조직을 통해 증폭시키며, 국가와 자본에 맞서 이를 행사하도록 추동하는 데에 있다.

따라서 아나키스트들의 과제는 노동자들과 억압받는 자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힘을 인식하고, 그것을 조직을 통해 증폭시키며, 국가와 자본가 계급에 맞서 그것을 행사하도록 고무하는 데 있다.

직접행동

사회적 힘을 활용하고 추동하는 한가지 방식은 직접행동이다. 아나키스트들이 자주 사용하는 이 표현은 본질적으로 전략적이며 전술적인 개념이다. 이는 자본주의나 국가 없이 노동자가 스스로 통치하는 사회란 목적과 투쟁의 수단을 연결하려는 시도이다. 직접행동은 노동자계급이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부르주아적 대의제나 법적 수단을 우회하고, 스스로 행동에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Sparrow, 1997). 이는 사회적 힘의 집합적 실천이다.

직접행동이라는 용어는 프랑스의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자 에밀 푸제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 푸제에게 이 개념은 계급투쟁 속에서 탄생한 것으로, 노동자들이 자신들만의 투쟁수단을 창출하는 데서 비롯됐다. 직접행동에 나서는 노동자들은 자신과 자신의 힘을 자유주의 국가의 시민으로 인식하는 대신 사회의 생산자로서 인식하게 된다.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수행하는 직접행동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직접적 공격이다(Pouget, 1910).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소규모 혹은 개인적 행위를 직접행동으로 숭배하는 경향을 경계한다. 이는 억압적 상황에 맞서 싸우는 개인의 행동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직접행동은 그 본래의 의미, 즉 대중적이며 집합적이고 계급에 기초한 변혁적 실천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천

아나키스트 정치의 근본에는 실천, 즉 이론을 실천 속에 구현하는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실천은 단지 아나키스트들 뿐 아니라 모든 사회저의적 이론에 있어 핵심적인 철학적 개념이다. 본질적으로 이는 과정을 의미하며, 지식이 어떻게 생성되고 이것이 어떻게 실천으로 전환되는지를 다룬다.

특히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에게 실천이란 개인 혹은 집단이 이론과 실천 사이에 양방향적 관계를 설정하고,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반드시 수행해야 할 행동에 중점을 두는 것을 의미한다(Miami Autonomy and Solidarity, 2010). 이는 마르크스가 철학적 분석에서 특히 중시한 문제이기도 했다. 마르크스는 이론 내 모순은 실천 속에서만 해결될 수 있고, 이는 혁명적 정치 이론과 부르주아 철학을 구분 짓는 핵심이라 말했다. 바쿠닌 역시 유사한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사회주의가 대중의 행동이 아닌 과학자나 지식인에게 맡겨질 경우, 그것은 단지 또 다른 폭정으로 전락할 것이다 보았다(Bakunin, 1871).

혁명이론의 출발은 사회에 대한 유물론적 분석이어야 하며, 이 분석은 실천을 통해 모순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한다(Marx, 1845).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개인과 집단은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수행할 행동을 결정하게 된다. 이 행동은 단지 의도 뿐이 아닌 결과에 따라 분석되며, 이는 향후 실천에 정보를 제공한다. 이러한 기본 개념들은 아나키스트 정치 전반을 관통하는 것으로, 맹목적 행동이 무의미한 것처럼 실천 없는 이론 또한 무의미하다(Federación Anarquista Uruguaya, 1972).

실천은 단지 사회에 대한 의식적이고 능동적 개입을 통해 세상을 변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으며, 그 수행주체 또한 변화시킨다. 이런 이유로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경향이나 권위주의적 전위주의 마르크스주의 경향과 달리,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항상 대중 노동대중의 동원을 일관되게 추구한다. 실천은 혁명가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기 땜누이다.

따라서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이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추동하고자 한다. 대중적 실천을 통해 개인의 의식은 변화하며, 인민은 세계를 바꿀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집합적 욕망에 따라 재구성할 수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혁명가에게 있어 의미있는 행동이란 대중의 자신감, 자율성, 자발성, 참여, 연대, 평등주의적 경향, 자기활동성을 추동하고 그들의 신비화를 벗겨내는 데 기여하는 모든 것이다. 해로운 행동이란 대중의 수동성, 무관심, 냉소주의, 위계를 통한 분리, 소외, 타자에 대한 의존 강화, 타인에 의해 조종되기 쉬운 상태로 만드는 등의 모든 것이다.”

 – 모리스 브린턴(Maurice Brinton, 1967)

자주경영

사회적 힘, 직접행동, 실천의 개념을 토대로, 경제와 반자본주의 투쟁 조직 모두에 적용할 수 있는 자주관리 개념을 설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주관리는 모든 수준에서 인민이 자신의 삶, 공동체, 일터에 대해 직접적이고 민주적인 통제를 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즉 아나키즘을 상향식 조직형식을 정당화하는 다른 혁명적 사회주의 모델들과 구별하기 위해 대중화되었다(Keefer, 2018). 자주적으로 운영되는 운동을 통해 계급투쟁의 내용은 위임된 대의원과 대중 총회 같은 민주적 형식과 연결된다.

아나키스트들이 투쟁의 형식을 그 내용보다 절대시한다는 오해가 종종 존재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아나키스트들은 형식과 내용이 상호 강화하는 변증법적 관계에 있다고 본다. 예컨대 노동계급 출신으로 구성된 지도위원회가 선출되었다고 해서 그 운동이 반드시 노동계급적 요구를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다. 책임을 지지 않는 소수 집단이 등장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하거나, 다른 계급 세력과의 동맹을 자의적으로 결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주적 형식은 운동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노동자들이 직접 자신들의 계급적 요구를 제기하고, 투쟁의 내용을 통제할 수 있게 보장하는 수단이다.

경제 영역에서 자주관리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과 자신이 소속된 생산 단위를 직접 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Pannekoek, 1947). 이를 통해 노동자들은 소외를 극복하고, 기술 관료적 관리자 계급의 형성을 방지할 수 있다. 각각의 자주적 일터에서는 대의원을 선출하여 산업과 지역 공동체를 대표하는 회의체에 결합시킨다. 이를 통해 아래로부터 생산과 소비를 계획할 수 있다. 자주관리 체계는 소수 지도부가 경제를 계획하고 생산자들에게 지시하는 전통적 레닌주의 모델의 문제를 피할 수 있게 한다. 아나키스트들은 생산에서 중앙집중이 항상 최선이라는 '철칙'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Fabbri, 1922). 문제는 조정이라는 의미에서의 중앙집중과 자율성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에 있다(Price, 2014).

자주관리가 반드시 사회주의적 내용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정당하다. 아나키스트들 또한 이 점을 명확히 지적해왔다. 예컨대 협동조합들은 경영자가 없는 자본주의적 기업처럼 기능할 수 있다. 협동조합은 특정 시기에 사회적 필요를 충족할 수 있지만, 아나키스트 전략의 핵심은 아니다. 아나키스트들은 자본주의와의 혁명적 단절을 지향한다. 혁명 이후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점거한 상황에서는 문제의 성격이 변한다. 이른바 공장 사회주의가 실제로 문제로 나타날 수 있다.

예컨대 스페인 혁명기 동안, 많은 공장들은 자체 노동자 집단의 이익만을 우선하는 별개의 단위로 기능했으며, 이는 노동계급 내부에서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Hill, 2020). 반면 일부 생디칼리스트 조합들은 생산을 완전히 사회화하며 급속히 공산주의적 구조로 이행했다(Guillamón, 2020).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혁명적 이행기 동안 노동자 경제조직들이 자유롭게 보다 사회화된 생산 모델로 이행하도록 독려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가능주의(개량주의)

가능주의는 사회 개혁과 그 잠재력에 대한 태도를 의미한다. 불가능주의자들은 자본주의 하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개혁도 부차적이거나 무의미하며, 오직 혁명의 날을 지연시키기 때문에 싸울 가치가 없다고 본다. 반면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보다 세밀한 입장을 취한다. 노동자들과 억압받는 이들이 자본주의 하에서 자신의 삶을 보다 견딜 만하게 만들기 위해 싸우는 것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

가능주의적 관점을 취하는 아나키스트들에게 있어 핵심 문제는 개량을 어떻게 쟁취하는가이다. 개량을 추구하는 혁명가들과 실제 개량주의자(예컨대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구분 짓는 것은, 개량을 위한 투쟁 그 자체가 아니라, 개량을 달성하기 위해 채택하는 전략과 목표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특정 당에 로비하는 것 등의 방법으로 개량을 추구하지 않는다. 애초에 이런 방식들은 실질적으로 훨씬 비효율적이다(Malatesta, n.d.).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이 개량 투쟁에서 사용하는 전략은 직접행동에 기반해 노동자 권력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노동자들과 억압받는 이들은 집단적 사회적 힘을 통해 스스로 삶을 개선할 수 있음을 체득하게 된다.

아나키스트들의 개입은, 투쟁의 형식을 가능한 한 직접 민주적이고 비타협적인 형태로 유지하며, 개혁 운동 내부에서 사회주의와 혁명 사상을 고취시키는 데 있다. 운동이 강력해지고, 노동계급이 자본가들과 국가와의 갈등의 본질과 한계를 더 깊이 인식할수록, 혁명적 순간이 도래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이중권력

이중권력은 노동자들과 억압받는 사회집단들이 조직된 권력을 통해 부르주아지의 권력과 경쟁하는 특정한 상황, 하나의 순간을 가리킨다(Lenin, 1917). 볼셰비키 지도자 레닌은 러시아에서 소비에트의 권력이 입헌의회(러시아 의회)와 병존하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이중권력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지속될 수 없었으며, 지속되어서도 안 되었다. 결국 아나키스트였던 아나톨리 젤레즈냐코프가 부르주아지 입헌의회의 해산을 명령했다(Heath, 2005). 이로써 노동자들의 조직된 권력은, 비록 일시적이었지만, 소비에트를 통해 표현되었고,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이중권력 상태 자체를 목표로 삼지 않는다. 그들은 노동자 권력의 수립을 지향한다. 레닌이 내린 정의는 정확하며, 이중권력이라는 용어를 다른 의미로 확장하거나 혼동해서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노동자 권력(또는 반권력, 대중 권력)의 구축, 즉 노동자들과 억압받는 인민이 부르주아지와 국가에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은 하나의 전략이지, 단순한 상황이 아니다(Crossin, 2022).

노동자 권력

노동자 권력(문헌에 따라 대중권력 또는 반권력이라고도 불린다)은 앞서 설명한 계급투쟁, 직접행동, 자주관리의 개념과 긴밀히 연결된다. 노동자 권력은 본질적으로 노동자들과 억압받는 집단들이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하여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Corrêa, 2009). 이는 운동, 노동조합, 혁명적 정치조직 안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쌓아올린 사회적 힘이자 자율적 권력이다. 노동자 권력은 '탈취'하는 것이 아니라 '창출'하는 것이다. 노동자 권력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은, 이 힘들이 조직되어 자본주의적 생산과 국가를 전복하고, 자주관리에 기반한 사회주의를 수립하는 때이다.

노동자 권력이 실질적으로 형성되기 위해서는 계급 내 집단과 개인이 주체로서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권력이란 본질적으로 행동하고 사태를 변혁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만약 노동자들이 계급 전체로서뿐만 아니라 개인으로서, 그리고 광범위한 노동계급의 다양한 부문으로서도 자신들이 존재하는 사회를 변화시킬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노동자 권력'이라는 개념은 추상적 수사에 불과하게 된다.

혁명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이 혁명을 지지한다는 것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혁명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가이다.

혁명은 인민 대중이 지배계급의 권력을 타격하고 전복하는 봉기적 순간이다. 대중문화에서는 독재 체제를 무너뜨리고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대체하는 과정을 혁명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들에게 이는 정치혁명에 불과하다. 한 지배 집단이 다른 지배 집단으로 교체될 뿐이며, 생산 체제와 국가는 여전히 존속한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사회혁명을 지향한다.

사회혁명이란, 착취를 기반으로 한 사회, 다시 말해 자본주의 사회를 자주관리 사회주의로 철저히 변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나키스트 혁명은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의 폐지와 함께, 정부 자체의 폐지를 목표로 삼는다. 여기에는 군대, 의회, 경찰, 사법부가 모두 포함된다(Malatesta, 1920).

사회혁명은 결코 하나의 국가에 국한된 사건이 아니다. 아나키스트들은 노동자들이 혁명을 국경 너머로 확장시키고, 아래로부터 조직된 자주관리 공동체들과 공산주의적 생산의 새로운 국제연방을 재구성하도록 독려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모든 형태의 지배는 도전받고 전복될 것이며, 사회적 삶은 새롭게 재구성될 것이다. 혁명은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점거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분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혁명이란 대중 인민의 동원이며, 법과 정부의 구속을 넘어선 자유의 실천이다(Fabbri, 1921).

국제주의

국제주의는 아나키즘에 있어 단순한 윤리적 가치가 아니라, 투쟁에 있어서 필수적인 개념이다. 자본주의가 국제적 체제인 이상, 자본주의에 맞서는 투쟁 또한 필연적으로 국제적이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국경에 따라 분열할할수록 해방은 궁극적으로 훼손된다. 특정 제국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이 얻는 이익은 종종 다른 나라 노동자들의 희생을 대가로 이루어진다. 국가 간 분열이 심화될수록 노동운동 또한 분열되고, 결국 제국주의 국가 노동자들조차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자신들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약화된다(Rocker, 1938). 따라서 아나키스트들은 노동자 투쟁에서 국제주의의 중요성을 명확히 하는 것을 필수 과제로 삼아야 한다.

나아가, 민족주의는 노동자들을 서로 경쟁하는 자본가들의 전쟁 노력에 희생시키게 만든다. 노동자들이 이윤을 위해 희생되는 현실에 반대하는 것에서 아나키스트 반군국주의는 중요한 선동 지점이 된다. 이는 우리 자신의 목표를 향한 폭력적 실천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군대와 자본가 계급을 위한 전쟁에 반대한다는 의미이다(Tiggjan, 2022). 제국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에게 이 가치는 혁명적 패배주의를 의미한다. 혁명적 패배주의란, 제국주의 부르주아지가 벌이는 전쟁 중에 그 나라의 노동자들이 자국의 제국주의 정복이 실패하도록 싸우는 것을 뜻한다. 노동자들은 타국을 억압하고 점령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하는 것에 맞서 선동하며, 제국주의 전쟁을 계급 전쟁으로 전환하려 한다(Nilsen, 2022).

반제국주의 문제에 있어서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다른 아나키스트 경향들이 범하는 극좌파적 오류를 경계한다. 일부 아나키스트들과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모든 민족 해방 투쟁을 부르주아 민족주의와 동일시하는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물론, 민족 해방 투쟁에는 필연적으로 부르주아 및 소부르주아적 요소가 포함되며, 그 투쟁은 몰계급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억압받는 민족에 속한 노동자들이 단지 '민족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민족 해방 투쟁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나키스트들에게 있어 범죄에 해당한다(Bonanno et al., 2019).

진정한 문제는 전략적 개입의 문제이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억압받는 민족 내 대다수를 구성하는 노동자들이 독자적 기반에서 투쟁을 전개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부르주아 국가 건설 프로젝트에 빠지는 것을 필연적으로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제국주의 국가 내 혁명적 패전주의적 노동자들과의 동맹 가능성도 열어둔다. 오히려 아나키스트들과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민족 해방 운동에 불참하는 것은, 그러한 운동이 부르주아적 내용으로 고착되는 것을 더욱 불가피하게 만든다. 아나키스트들은 반드시 민족 해방 투쟁에 참여하여, 인민들을 자신의 강령으로 끌어들이고, 민족 해방을 국제주의적이며 사회주의적인 혁명으로 한층 더 심화시켜야 한다(Price, 2017).

끝으로, 국제주의의 중요성은 혁명기에도 결정적이다. 어느 지역에서든 혁명적 과정이 시작되면, 필연적으로 부르주아 세력에 의해 고립되고 공격당하게 된다. 혁명가들의 이상이 아무리 순수하더라도, 물질적 조건이 성취 가능한 범위를 결정짓는다. 장기적 고립은 필연적으로 혁명의 타락을 초래한다. 잠재적 혁명 상황을 방어하고 보호하며 확장하는 데에는 국제 혁명운동의 힘이 결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혁명적 단절이 발생하기 이전에 국제주의적 조직이 얼마나 강력하게 구축되어 있는가가, 혁명의 국제주의적 내용을 보장할 수 있는 핵심 요소가 된다.

이행기와 아나키즘적 점진주의

국제 혁명의 개념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기에 대한 아나키스트들의 이해와 반드시 마주해야 한다. 아나키스트들이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에서 공산주의로의 전환을 마치 하루아침에, 어떤 마법처럼 이뤄질 수 있다고 믿는다는 통속적인 오해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기는 두 가지 근본적인 조건 위에 성립한다. 하나는 부르주아지와 그 국가의 패배와 억제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 사회의 재구성이다(Federazione dei Comunisti Anarchici, 1985). 이 둘 중 어느 하나도 단순한 과제가 아니며, 완수까지는 수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존속하는 부르주아 군대는 반드시 제압되고 해체되어야 한다. 각 국가는 반동적 군사 세력에 직면하는 조건이 서로 다르며, 그에 따라 과제도 달라진다. 어떤 국가는 징병제로 구성된 대규모 군대를 보유하며, 이들은 대중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조건은 노동자들과 병사 간의 접촉, 혹은 반란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 반면 규모는 작지만 훈련되고 전문화된 군대를 보유한 국가는 그러한 연계의 기회를 갖기 어렵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군의 경제적 고립과 신속한 무력화를 이루는 것이 핵심이다. 대부분의 인민이 무장되지 않았고, 전투훈련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이는 더욱 중요하다.

새로운 인민적 사회조직 형식은 민병대를 조직해야 하며, 이는 경제 조직과 유사한 원칙 아래 구성되어야 한다. 민주적 구조, 위임된 역할, 지휘관과 병사 사이의 위계 철폐, 민간 기구에 대한 책임성, 그리고 상황이 허락하는 한 최소한의 영속성을 지향해야 한다. 부르주아지를 군사적으로 패배시키는 데 있어 핵심은 지형이나 무기보다도, 인민의 능동적 의지에 있다(Guillén, 1969/1973, p. 242). 더불어, 혁명 지역 내 세력들과 국제적으로 혁명을 위해 싸우는 세력들을 연결하는 기구도 구성되어야 한다.

경제 재구성의 측면에서 보면, 노동자들은 즉시 생산을 재개해야 한다. 굶주리는 인민이 혁명을 완수한 적은 없다. 생산 산업의 대표자들은 지역, 국가, 국제적 연방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야 하며, 노동자들의 주도 아래 가장 즉각적이고 실천적인 해결책들을 도출해야 한다. 산업 부문과 농업 부문 사이에도 상호 공급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협약이 체결되어야 한다. 마을에서 도시, 학교에서 철도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재구성될 수 있다. 혁명은 자본의 제약으로부터 해방된 노동자들의 창조적 역량을 해방할 것이며, 그 해결책들은 지역적이고 분산된 형태부터 경제적으로 연방화되고 국제적인 형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중간적 경제 형태들이 정확히 어떤 모습일지는 지금으로선 단정할 수 없다. 그것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창조해내야 할 대상이다. 이것이 아나키즘적 점진주의다(Malatesta, 1925). 아나키스트들은 공산주의 사회가 단번에 출현하리라 기대하지 않으며, 자본주의적 생산을 대체하는 다양한 실험들을 통해 사회를 점차적으로 전면적 공산주의 실천으로 재조직하려 한다(Kropotkin, 2015, p. 29–39).

자유로운 결사와 아래로부터의 구성에 대한 이러한 헌신은 아나키즘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권위주의적 수단을 통해 자유의지주의적 목적이 실현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아나키즘은, 가능한 한 불필요한 충돌을 유발하지 않고, 비착취 계급들 사이의 불필요한 적대 없이, 동시에 수백만 인민의 삶을 계획하도록 위임된 소수 권력집단의 출현을 허용하지 않는 점진적 해결을 모색한다. 실천적 해결책은 단지 경제적으로 실행 가능한 것에 그쳐서는 안 되며, 사회적으로도 가장 평등하고, 정의롭고, 자유로운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이어야 한다(Malatesta, 1925).

우리는 강제보다 합의를, 강압보다 이해를, 권위보다 자유를 더 신뢰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자유의지주의자인 이유다.”

 — 헤라르도 가띠(Gerardo Gatti)

 

조직적 개념과 조직의 형태

다음에 이어질 '조직적 개념'에 관한 부분은 정향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조직의 구체적 형태와 실천을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소책자의 '핵심 개념' 부분이 아닌 이 섹션에 포함된 몇몇 개념들은, 특정한 실천과 조직 모델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다. 조직적 개념의 이론적 토대를 이해하는 것은, 마지막 장에서 다루게 될 특정 전략들이 왜 채택되는지를 설명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사회적 벡터

사회적 벡터는 아나키즘이 대중운동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아나키즘이 대중운동 속에서 영향력을 획득하거나 확대하려는 관계를 개념화한 것이다(Federação Anarquista do Rio de Janeiro, 2008). 이 관계는 변증법적이다. 아나키즘이 인민 대중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대중투쟁과의 관계 속에서 아나키즘 역시 더욱 구체화되고 발전한다. 역사적으로 아나키즘의 핵심 사회적 벡터는 노동운동이었다. 이는 아나키즘 이데올로기 자체에 일정한 특징들을 부여했다. 러시아 혁명, 스페인 내전, 그리고 파시즘에 맞선 투쟁 이후, 아나키즘은 한때 강력했던 사회적 벡터를 광범위하게 상실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나키즘의 사회적 벡터를 회복하려는 투쟁은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조직 실천과 분석의 핵심 요소를 이룬다.

사회적 개입

사회적 개입은 아나키즘의 사회적 벡터를 회복하려는 투쟁을 의미한다. 본질적으로, 아나키스트들은 억압받는 인민들과 노동계급의 일상적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는 정당이나 로비 단체, 시민 단체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나키스트들은 피억압 사회계층에 기반한 투쟁적 운동에 초점을 맞춘다(Weaver, 2007).

정향 아나키스트 조직의 과제는 사회 안에서 작동하는 다양한 힘을 분석하고, 개입할 적절한 공간을 계산하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들 속에서 아나키스트들이 수행해야 할 임무는 아나키스트 사상을 전파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아나키즘과 노동계급 해방에 연관된 대중적 원칙과 방법들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과 방법에는 반자본주의, 직접행동, 대중적 민주 절차, 자주적 조직화, 정치적 독립성이 포함된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이 계급투쟁에서 태어나는 대중조직을 통해 자신들의 권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믿는다. 정향 아나키스트 조직이 분명한 강령과 방향성을 지니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사회주의를 실천하고 구축하는 과제는 노동계급 대중조직의 몫이다. 정향 아나키스트 조직은 자신의 사상을 통해 대중의 투쟁을 연결하고 고무하는 방식으로 전진을 이끈다. 그러나 특정한 노선이나 강령을 대중에게 강제하지는 않는다.

사회적, 정치적 층위

아나키스트들은 과거 아나키스트 이론에서 발생한 혼란과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사회적 층위''정치적 층위'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전까지의 아나키스트들은, 특히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자들은 둘을 혼동했다. 그 결과, 이론적 오류뿐 아니라 조직적 오류까지 만들어진 바 있다.

사회적 수준은 기본적인 계급투쟁이 벌어지는 영역이다. 이 수준에서의 투쟁은 대중적이고 광범위하며,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주변계급과 중간계급까지도 즉각적인 요구를 중심으로 대규모로 동원한다. 사회적 수준의 투쟁은 주로 자본주의 체제 내에 한정된 자유주의적 요구를 반영하며,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강하게 규정된다. 이러한 투쟁은 금융 위기, 전쟁, 기후 재난 등 물질적 사건과 구조에 의해 촉발되고, 고조되거나 침체된다(Collective Action, n.d.).

반면, 정치적 수준은 개인, 조직, 정당이 특정한 이론적 틀과 이데올로기에 기반하여 구체적 목표를 추구하는 영역이다. 정치적 수준은 보수주의, 사회민주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 등 다양한 성격을 가질 수 있다. 정향 아나키스트 조직은 정치적 수준에서 활동하는 것을, 자유의지주의적 공산주의, 즉 아나키를 실현하기 위한 이념적 목표를 추구하는 실천으로 이해한다.

대중조직

대중조직은 계급의 조직이지, 정향적 정치조직이 아니다. 대중조직은 즉각적이고 객관적인 물질적 요구의 충족과 실현을 목적으로 형성된다. 다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대중조직의 강령이 특정 조직의 강령에 접근할 수도 있다. 아나키스트들은 대중조직의 강령과 정치조직의 구체적 혁명 강령을 혼동하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대중조직의 강령은 억압받는 인민 집단이 자신들의 투쟁을 스스로 표현하며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은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과 레닌주의자들의 대중운동에 대한 인식 차이를 드러낸다(Gutiérrez, 2021).

정향 아나키스트 조직은 대중조직 내에서 정치적 사상을 명확히 하려 노력하지만, 그 조직을 지배하거나 행로를 강제하지 않는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계급조직에 대해 집행권력을 행사하는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다. 오직 민주적 과정을 통해 구체적으로 위임된 경우에만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이는 아나키스트들이 지도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자본주의 내 모순을 드러내고, 계급투쟁 속에서 직접행동을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노동자들이 스스로 혁명적 결론에 이르도록 격려한다. 혁명적 상황이 전개될 경우, 대중조직은 자주관리와 사회주의 경제를 수립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적절한 상황이 마련된다면, 노동자들은 대중조직을 통해 혁명적 변혁을 분출시킬 수 있다(Federazione dei Comunisti Anarchici, 1985).

오늘날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과거 다수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이 저질렀던 역사적 오류를 스스로 경계한다. 우리는 혁명적 자발성만으로 혁명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또한 특정한 조직 형태가 자동으로 혁명적 내용을 보장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디칼리스트 노동조합, 공장위원회, 소비에트 등 다양한 노동자 조직들은, 결국 더 넓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혁명적으로 발전할 수도 있고 협조주의적으로 타락할 수도 있다. 끝으로 우리는 '적색노조주의' 원칙이라는 근본적 오류를 경계한다. , 별도로 혁명적 노조를 세우는 것을 원칙으로 삼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직들은 종종 계급을 분열시키고, 새로운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들의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 그 결과, 기존 대중적 노조에서 지도부는 덜 혁명적이거나 심지어 반동적인 세력에게 자동적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론적 통일성

일관된 정치조직이 갖추어야 할 절대적 토대는 이론적 통일성이다. 여기서 이론적 통일성이란, 세계를 해석하고 이에 기초하여 행동하는 데 있어 공동의 틀을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론적 통일성이 없는 정치조직은 마치 출발 신호와 함께 각 다리가 제멋대로 다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하는 경주마처럼 전혀 효과적이지 않다. 그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이자 가장 분명한 이유는, 혁명적 정치조직은 노동조합과 같은 사회투쟁 조직과는 다른 층위에서 활동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은 공통된 이해관계에 의해 결속되지만, 서로 다른 철학을 지닌 사람들도 기능적으로 함께할 수 있다. 반면 혁명적 정치조직은 직장, 지역사회, 노동조합, 사회운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 구체적인 목표를 주장하고 실현하기 위해 활동한다.

둘째 이유는, 공동의 분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이론이 부족하면, 활동가들과 조직은 매번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과도한 검토와 연구, 토론을 거쳐야 하고, 문제를 이해하는 방식조차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이론적 통일성이라는 견고한 토대 위에서 출발하면, 이러한 복잡성이 과잉되거나 즉흥적이고 주관적인 반응을 피할 수 있다(Federación Anarquista Uruguaya, 1972).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조직들은 발전 과정 속에서 다양한 쟁점에 대한 공동 입장을 형성해나간다. 이론과 실천의 발전은 항상 함께 간다. 모든 쟁점에 대해 이론적 결론을 내리고 나서야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활동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조직은 스스로의 실천을 성찰하고, 견고한 이론적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이론적 성찰은 저널 기사, 선전물, 입장문 등을 통해 구체화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정향 아나키스트 조직은 스스로 설정한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높은 수준의 이론적 통일성을 요구한다. 과거에 보다 느슨한 아나키스트 조직들이 낮은 수준의 이론적 통일성으로 활동을 시도한 사례들이 있었지만, 모두 실패하거나 사실상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전략적 통일성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이 높은 수준의 이론적 통일성을 주장하는 만큼, 전략과 전술에서도 통일성이 요구된다는 점은 자명하다. 경제, 정치 상황, 투쟁, 사회운동을 분석할 때, 정향 아나키스트 조직은 견고한 이론적 토대를 기반으로 명확하고 집단적인 대응을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전술적 통일성은 아나키스트 조직의 사회적 힘을 증폭시킨다. 전술적 통일성은 조직 주위에 있는 광범위한 사회적 층위를 자유의지주의적 사회주의라는 목표를 향해 응집시키고 이끈다. 또한 상충하는 전술과 행동이 뒤섞여 대중운동 전체를 혼란시키는 사태를 방지한다(Dielo Truda(Workers Cause), 1926).

정향 아나키스트 조직은 가능한 한 높은 수준의 전술 통일을 자발적으로 이루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동시에 즉각적인 지역적 필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도 유지해야 한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조직들은 특정 전략의 범위를 결정하기 위해 다양한 분석 틀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사회 상황에 대한 정세 분석, 일반적 또는 포괄적 정치·조직 전략, 단기 전략, 그리고 가장 즉각적이고 유연한 수준에서의 일반 전술 등이 있다(Coordenação Anarquista Brasileira, 2017).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조직들은 종종 내부 활동을 '전선'으로 구분하여 운영한다. 각 전선은 조직이 활동하는 사회적 맥락에 따라 형성된다. 예를 들어 모든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조직은 '노동조합 전선'을 둘 것이다. 여기서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일터에서 활동하고, 성찰하고, 이론을 발전시키며, 투쟁을 조직한다. 이 외에도 환경 투쟁, 주거 투쟁, 학생 운동, 성소수자 권리 운동, 원주민 권리 운동, 반파시즘 운동 등 다양한 전선이 존재할 수 있다. 어떤 전선이 필요한지는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활동가들은 조직에 대한 일반적인 책무를 수행하는 것 외에도, 제한된 시간을 고려하여 특정 전선을 선택해 집중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결국, 이론적 통일성과 전술적 통일성을 올바르게 적용하면, 단순히 집단적이고 반성적인 투쟁을 넘어서, 혁명 강령을 창출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 혁명 강령은 모든 진지한 정치조직의 중추를 이룬다.

집단책임

혁명조직의 기본 개념을 더욱 심화하는 원칙 가운데 하나는 집단책임의 개념이다. 이 원칙은 조직의 일관성과 통합을 더욱 확고히 한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조직은 자유주의적 개인적 책임 개념을 거부한다. 그러나 이는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개인은 집단 전체에 대해 책임을 지며, 동시에 모든 개인이 서로를, 그리고 조직 전체를 상호적으로 책임지는 체계를 형성한다. 『아나키스트 총동맹의 조직적 강령은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조직 전체는 조합 각 구성원의 혁명적·정치적 활동에 대해 책임을 지며, 동시에 각 구성원은 조직 전체의 혁명적·정치적 활동에 대해 책임을 진다"(Dielo Truda(Workers Cause), 1926).

실천적으로 이는, 개인과 각 지부가 조직 전체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한다. 부적절한 행동을 하거나, 조직이 집단적으로 합의한 행동 방침을 저해하는 행위를 한 경우, 개인이나 지부는 징계 혹은 제명될 수 있다. 동시에 조직은 구성원 각자의 성장을 지원할 의무도 가진다. 이는 교육 제공, 자원 접근 보장, 도덕적·물질적 지원, 부모나 장애를 가진 사람이 투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여건을 개선하는 노력 등을 포함한다. 결국 아나키스트들에게 자유란 단순히 개인에 대한 규칙이나 제약의 부재가 아니라, 집단적으로 수립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자유의지주의적 조직은 형제애적 규율이라는 원칙 위에 세워진다(Makhno, 1996, #68).

결론적으로, 아나키스트 조직은 아무런 구속 없이 각자 마음대로 활동하는 정치 집단이 아니다. 오히려 긴밀하게 결속되어 상호 지원하는 집단적 조직이다.

(조직적) 연방주의

아나키스트 조직에서 연방주의는 조직 내 지배관계의 형성과, 대중 구성원과 분리된 지도 집단의 탄생을 방지하려는 원칙이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조직화 과정에서 '영구적 관리자 계급'이 생겨날 위험이 어느 정도 내재한다고 인식한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공식적 구조와 책임 체계를 통해 퇴행을 방지할 수 있다고 본다. 혁명적 행동과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위해서는 조직화가 사회적·정치적으로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아나키스트들은 연방주의적 조직 원칙을 따른다. 앞서 개념 설명 부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원칙에는 다음이 포함된다.

자유로운 합의: 구성원들은 조직의 사상과 실천에 동의하여 스스로 가입한다. 조직은 구성원에게 가입이나 잔류를 강요하거나 강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성원들은 서로에게, 조직 전체에 대해 책임을 진다. 또한 조직 역시 모든 구성원에게 책임을 진다. 사회적 또는 정치적 토대 위에서 연방에 가입한 개인과 지부는, 연방의 합의된 원칙을 준수할 의무를 진다. 이는 임금 규율에 의해 노동시장에서 강제되고, 사용자의 요구에 종속되는 자본주의 구조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아래로부터, 주변에서 중심으로: 모든 자격 있는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민주적 총회가 조직의 최고 의사결정권을 가진다. 총회는 위원회를 설치하거나 해산할 실질적 권한을 행사한다.

공직자: 조직은 상시적인 역할이 필요한 경우, 구성원들이 고정된 임기를 가진 공직자를 직접 선출한다. 선출된 공직자는 조직 전체에 자신의 활동을 보고해야 하며, 정기적으로 교체되고, 필요할 경우 언제든 소환할 수 있다. 상위 조정기구 구성원 역시 마찬가지로, 하위 조직에 대해 집행권을 행사할 수 없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조직들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형태의 연방주의를 실천한다.

첫 번째 모델에서는, 독립적인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그룹들이 이론적·전략적·전술적 합의에 기초하여 연방을 결성한다. 각 그룹은 내부 실천, 규약, 활동 영역에서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공동의 실천과 정치 분석을 통해 통일된 행동과 집단적 책임을 공유한다. 1919-1920년 이탈리아 아나키스트 연합이나 오늘날 브라질 아나키스트 협력체가 이 모델을 따른다.

두 번째 모델에서는, 기존 그룹들이 독립적 조직을 해산하고 연방 안으로 통합되며, 지부(branch) 형태로 기능적 독립성을 유지한다. 또는 단일 조직이 여러 지역과 일터로 확장할 수도 있다. 우루과이 아나키스트 연맹(FAU), 프랑스 자유의지주의 공산주의자 연합(UCL), 미국 흑장미/로사 네그라 아나키스트 연맹(Black Rose/Rosa Negra)이 이러한 단일화된 연방 모델의 예시다.

어떤 모델을 따르건, 권한은 항상 지부와 풀뿌리 조직에 귀속된다. 지부들은 합의된 정치 노선의 범위 안에서 자율적으로 행동한다. 관리기구는 활동가들과 지부들의 활동을 감독하지만, 선출된 소수가 집행권을 쥐지는 못한다. 정치적 결정은 소수로 구성된 집행위원회가 아닌 대의원 대회에서 내려진다.

동심원

동심원 모델은 일부 정향 아나키스트 조직들이 채택하는 조직 모델이다. 이 모델은 활동가들의 통합 수준과 책임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에서 비롯한다(Federação Anarquista do Rio de Janeiro, 2010).

동심원 모델에서 중심층은 정치 조직 자체를 구성한다. 이 중심층은 활동에 전념하는 활동가들로 이루어져 있다. 중심 활동가들은 조직의 이론적·전략적 노선을 결정하고, 기관지 발행, 신규 활동가 교육, 대중교육, 다양한 전선에서의 정치 활동 등 조직의 주요 활동을 수행한다.

그 바깥층, 흔히 '후원 회원'이라 불리는 수준에는 조직에 지지하거나 동조하지만, 완전한 구성원이 되기 위한 시간이나 에너지를 투자하기 어려운 활동가들이 포함된다. 후원 회원은 중심 활동가와 동일한 의사결정 권한을 갖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들은 기관지의 편집위원회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대회에서 완전한 투표권을 가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지역 지부에서는 투표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후원 회원들도 가능한 한 저널 기고나 일상 활동에 기여한다. 정향 아나키스트 조직은 누구나 기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려고 노력한다.

동심원 모델 내 구체적인 층위 구분과 운영 방식은 각 조직이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조정한다. 어떤 조직은 층위를 더 많이 둘 수도 있고, 새로운 활동가를 교육하고 훈련시키기 위해 별도의 학교 같은 기관을 세우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층위가 위계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들은 이 구분이 합리적이고 필연적이라고 본다. 행동의 책임을 지지 않는 이들이 결정권을 행사하면, 오히려 민주주의를 훼손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들은 권리와 의무를 항상 함께 다룬다.

층위 간 이동은 전적으로 자발적이다. 예를 들어 중심층과 후원층으로 구성된 조직을 가정하면, 두 층위 모두 일정한 수준의 교육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반적으로 이 과정은 몇 개월에 걸친 교육 커리큘럼 학습과 기존 활동가들과 함께 특정 전선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예비 구성원이 조직의 기본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고 헌신을 증명하면, 조직은 이들을 정식 구성원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어떤 조직이든 외부 지지자들은 존재한다. 혁명적 아나키스트 조직은 이들을 대중조직을 통한 관계로 다룬다.

앞서 언급했듯, 조직은 일정 수준의 구분을 통해 통일성과 효율성을 보장한다. 그러나 연방주의 항목에서 다룬 바와 같이, 혁명조직은 가능한 한 수평적 구조를 실천한다. 비서, 교육 담당자(또는 교육위원회), 국제 연락 담당자 같은 공식 직책은 가능한 한 자주 교체한다. 이는 아나키스트 조직의 표준적 관행이다. 모든 활동가가 조직 운영 능력을 갖추도록 함으로써, 내부 위계와 불필요한 분열을 방지하고, 활동가들의 역량을 강화하며, 인원 손실에도 조직이 지속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때로는 역할 교체가 특정 업무에 능숙한 활동가를 배제해 조직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혁명조직은 가장 약한 고리가 곧 전체의 강도라는 인식을 가진다. 레닌주의 조직과 달리, 아나키스트 조직에서는 비서 같은 공식 직책을 맡은 활동가가 대중 위에 집행권을 행사하지 않는다. 활동가는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위임되고, 그 활동에 대해 전체에게 책임을 진다. 직책의 공식화는 활동가를 책임에 묶되, 조직 내 위계가 형성되는 것을 방지한다. 정치적 리더십은 집단적으로 형성되며, 개인에게 집중되지 않는다.

물론 모든 정향 아나키스트 조직이 동심원 모델을 채택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조직은 '활동가/비회원이라는 보다 단순한한' 방식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모델을 택하든, 내부 조직 운영의 기본 원칙 권리와 책임, 교육적 통합, 공식적 책임성, 역할 교체 은 대체로 동일하게 유지된다.

교육

교육이 정향 아나키스트 조직의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교육은 개인의 성장뿐 아니라, 조직 전체의 발전에도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교육 과정에서 활동가들은 정치, 역사, 철학, 심지어 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지식을 나누고 발전시킬 기회를 얻는다. 이러한 교육 과정은 조직의 명료성과 발전을 추구하는 데 기여한다. 정향 아나키스트 조직에서 교육은 집단적 프로젝트로 이루어지며, 조직 전체의 연대와 이론적 성장을 촉진한다(Stroud, 2022).

대부분의 조직은 일상적인 지부 활동 안에 교육을 통합한다. 예를 들어, 각 지부 모임에서는 특정 주제를 정해 논의한다. 각 개인이나 소규모 그룹이 자료를 선정하고, 발표와 토론 진행을 맡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하면 교육을 지속적 실천으로 유지할 수 있고, 동지 집단이 현재 정치 상황과 관련된 주제에 꾸준히 집중할 수 있다.

또한 조직은 내부 및 외부 독서 모임을 운영하기도 한다. 특정 책이나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토론을 조직한다. 이를 통해 성명서 작성을 위한 이론적 입장을 형성하거나 전략 개발에 기여할 수 있다. 이론 잡지, 신문, 팟캐스트, 유튜브 채널 등도 내부 및 외부 교육 활동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역사적으로 아나키스트들은 교육을 매우 중시해왔다. 소위 아테네오나 부르스 드 트라바일 같은 기관들은 아나키스트들이 설립한 노동자 교육 공간이었다. 이들은 부르주아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자유로운 교육을 장려했다. 아나키스트들은 실천과 자기 발전을 중시하는 만큼, 자율적 자기교육을 강력히 지지한다. 오늘날에도 충분한 자원을 갖춘 아나키스트 조직들은 급진적 대중교육을 유지하는 데 상당한 자원을 투입한다.

혁명적 강령

정치 조직은 그 철학, 역사, 실천을 하나로 집약해 혁명적 강령을 작성한다. 강령은 조직의 통찰, 원칙, 목표를 동시에 반영하는 문서다. 강령은 조직이 궁극적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이끈다. 이를 통해 활동가들은 계급투쟁의 흥망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개별적 개혁투쟁과 최종 목표를 연결할 수 있다(Price, 2009). 강령은 '선구적 실천'에만 의존하는 방식을 넘어서 전략 수립의 토대를 제공하고, 특정 시간과 장소에 맞는 전략 선택과 실천을 공식화한다(Coordenação Anarquista Brasileira, 2017).

따라서 강령은 불변하는 문서가 아니다. 조직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강령을 검토하고, 새로운 통찰, 경험, 미래 사회에 대한 비전을 통합하여 수정한다. 강령은 계급투쟁의 경험 속에서 시험받으며, 혁명가로서의 노동자들의 역사적 경험을 반영한다(Fédération Communiste Libertaire, 1953). 정향 아나키스트 강령은 조직과 활동가들이 아나키즘의 방법론에 따라 공산주의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인도한다.

"이론 없는 혁명은 진보할 수 없다. '두루티의 동지들' 조직은 사회 대변혁에 따라 수정할 수 있겠지만, 결코 피할 수 없는 두 가지 핵심 사항을 중심으로 우리의 생각을 정리했다. 바로 강령과 소총이다."

—— 1937720일자 인민의 친구5, 두루티 친구들


핵심전략

다음 절은 앞선 절들보다 짧다. 정향 아나키스트 조직의 개념과 조직 실천이 어느 정도 명확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략은 결코 영원하거나 모든 시간과 장소에 항상 적합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절에서 제시하는 전략들은 대체로 정향 아나키스트 실천의 기본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노동조합 안에서, 관료주의에 반대한다.

아나키스트 경향 안에서는 노동조합을 다루는 방식에 여러 차이가 있다.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운동과 계급투쟁을 혁명 전략의 핵심으로 본다. 그러나 정향 아나키스트들은 노동조합에 대한 나름의 명확한 이해와 전략을 가지고 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사용자에 맞서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결합한 조직이다. 아나키스트들은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조직이자 동시에 관료적이고 법적 틀을 가진 기관이라는 점을 인식한다(Eko, 2019). 어떤 형태이든 노동조합은 일상적인 개선을 쟁취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예를 들면, 임금 인상, 8시간 노동제, 주말 휴무, 공휴일, 초과근무 수당, 병가 등의 권리는 모두 노동조합이 과거에 쟁취했고 지금도 투쟁을 통해 지키고 있는 것들이다.

노동조합은 공식 기관으로서 선출된 지도부를 가진다. 이 지도부는 노동과 자본 간의 협상을 담당한다. 지도부는 때로 파업이나 노동자 행동을 지지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이해관계도 가진다. 예컨대 호주에서는, 노동조합 지도부가 퇴직연금 펀드를 공동운영하면서, 자본주의 기업의 성공에 이해관계를 가지게 된다. 또한 사용자들과 체결한 계약을 존중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산업 평화'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도 느낀다(Walmsley, 2020). 이러한 모든 요인은, 계급의식이 고양되고 투쟁이 격화될 때, 노동자들의 요구와 충돌할 수 있다.

아나키스트들은 이러한 모순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전략을 발전시켜 왔다. 대개 반란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은 노동조합 활동을 기피한다. 이들은 노동조합이 개혁불가능하며 반혁명적이라고 보고, 노동조합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현실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다. 조직된 노동자 대중과 관계를 맺지 않는 반란주의자들은 누구에게도 자신들의 사상을 전파하지 못하고, 혁명적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장소인 생산 현장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또 다른 일부 아나키스트들, 즉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자들은 '아나키스트적' 또는 '혁명적' 노동조합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가장 급진적인 노동조합조차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과 노동 사이를 중재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는 문제를 피할 수 없다. 혁명적 노동조합이라 해도 언제나 끊임없이 산업투쟁을 지속할 수는 없다. 또한 '아나키스트' 또는 '혁명적'이라는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울 경우, 다수의 비아나키스트 노동자들을 배제해 버리는 문제를 낳는다. 이런 혁명적 노동조합은 명확한 정치조직으로서의 선명성 없이 혼란스러운 혁명적 노동자 집단으로 머물거나, 결국 기존 노동조합처럼 전통적 기능에 매몰되어 혁명성을 잃는다.

정향 아나키스트들이 주장하는 세 번째 길은 다르다. 우리는 기존 노동조합의 기층에서 활동가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주장한다. 노동자 대중 속에서 선동하고 조직함으로써, 아나키스트들은 대중을 자신의 사상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동시에 우리는 관료들의 개량주의적 본능에 맞서 싸운다. 만약 아나키스트들이 노동조합 활동을 포기한다면, 결국 조직된 노동자들의 공간을 사회민주주의자나 더 나쁜 세력들에게 내주게 될 것이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조합 내부 활동을 통해, 계급투쟁이 심화될수록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을 급진적 입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믿는다.

호주의 뉴사우스웨일스주 건설노동조합(NSW BLF)이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BLF는 한때 매우 보수적인 노동조합이었다. 그러나 구 공산당, 노동당 좌파, 독립적 활동가들이 수년간 기층에서 인내심 있게, 치밀하게 활동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전투적 소수(militant minority)'라 불렀다. 그 결과 조합 기층은 점차 급진화되었고, 더욱 강력한 정치적 기반을 가진 활동가들이 지도부로 선출되었다. (중요한 것은, 지도부가 강력해진 것이 아니라 기층이 강력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BLF는 연방주의적 실천을 대담하게 적용했다. 지도부는 노동자들과 동일한 임금을 받았고, 임기는 제한되었다. 기층에서는 직접행동이 장려되었으며, 조직활동가는 노동자들의 행동을 지지하는 역할을 할 뿐, 방향을 지시하지 않았다. 민주적 의사결정은 대중 총회에서 이루어졌다(Rashid, 2021).

NSW BLF는 결국 국가와 자본에 의해 탄압받고 해체되었지만, 노동조합 내에 잠재된 급진적 가능성을 실증했다. 특히 '그린 밴스'처럼, 환경을 해치는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 노동자들이 건설을 거부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혁명적 실천이었다.

통일전선과 경향 그룹

혁명은 아나키스트들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회개혁을 위한 투쟁 또한 아나키스트들만의 일이 아니다. 이러한 단순한 사실은 정향 아나키스트들이 다른 정치·사회 조직과 어떤 방식으로 동맹을 맺고, 어떤 기준으로 연합할지를 이론적으로 정립해야 함을 의미한다.

아나키스트들은 동맹을 구축할 때 여러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개입 가능한 공간, 목표의 중간성, 사회적·정치적 맥락에 따라 정치적 실천을 구성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이런 다양한 상황에 대응하여, 아나키스트 경향들은 여러 접근 방식을 발전시켜 왔다. 이탈리아 아나키스트 연합의 '통일 프롤레타리아 전선''단일 혁명 전선', 아나코생디칼리스트 CNT'노동자 동맹', 우루과이 아나키스트 연맹(FAU)'전투적 경향', 그리고 현대의 '경향 그룹화' 전략 등이 그 예다(Lawson, 2021).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되는 두 가지 기본적 틀은 '통일전선'경향 그룹화'.

'통일전선'은 최소한 사회민주주의적 정치 입장을 가진 노동자 계급 조직들과 동맹을 맺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는 방어적 전략으로, 정향 아나키스트 조직이 통일전선 안에서도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을 때에만 채택할 수 있다.

'경향 그룹화' 개념은 보다 넓은 적용 범위를 가진다. 이는 특정 목표를 위해 결성된 다양한 세력들의 연합을 포함할 수 있다. 통일전선과 달리, 경향 그룹화는 진보적 부르주아 세력과 함께하는 캠페인 활동까지 포괄할 수 있다. 이 틀 안에서 정향 아나키스트들은 공동의 실천 기준과 이념적 유사성을 기반으로 중간 형태의 조직을 구축하려고 시도한다. 예를 들어, 아나키스트들은 노동자 정치, 직접민주주의, 직접행동에 헌신하는 다른 아나키스트들이나 트로츠키스트들과 협력할 수 있다.

이 모든 모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향 아나키스트 조직이 상황별로 '누구와', '어떤 맥락에서', '' 동맹을 맺을지를 숙고하고 전략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통일전선과 경향 그룹화는 모든 상황에 무조건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외부 세력과 완전히 고립되는 것 또한 아나키스트 조직을 무력하고 무의미하게 만든다.

또한, 정치적 조직화가 불가피하다는 사실과 그 기능에 대한 이론화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되, 언제나 우선순위는 정치적 소속을 넘어선 기층에서의 계급적 단결에 둬야 한다. 통일전선이건 경향 그룹화건, 그것이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서 맺은 합의에 불과하고 노동자 대중의 실천에 뿌리내리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의회주의 거부

정향 아나키스트들은 의회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며,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이는 아나키스트들이 공통으로 견지해 온 기본 입장이다. 아나키스트들은 몇 가지 이유로 의회에 출마하거나 의회 정당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

첫째, 의회는 노동자와 피억압 대중이 해방을 위해 벌이는 일상적 투쟁과 단절되어 있다. 사회 변화는 아래로부터, 곧 노동자와 빈민이 직접행동과 조직화를 통해 만들어 낸다. 아나키스트들은 바로 이 지점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는 노동자들이 직접행동을 통해 자신들의 목표를 쟁취하도록 돕는다. 직접행동은 노동자들에게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힘을 자각시키고,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선거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Lawson, 2022).

누군가가 설령 혁명적 사회주의자라 해도, 의회에 입성하면 온갖 제약에 부딪힌다. 이는 법적 압력일 수도 있고, 국가 권력 구조 내에서 얻는 특권일 수도 있다. 혁명정당이 의회에 진출하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점차 자신들의 정치 노선을 희석시키게 된다. 처음에는 의회를 이용해 자본주의를 고발하겠다고 했던 정당조차 시간이 지나면서 '의회 의석'을 중시하는 세력과 '의회를 전술로만 여기는' 세력 사이에 분열된다. 아나키스트들이 의회 참여를 거부하는 이유는 혁명적 정치성을 지키기 위함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열거한 부정적 이유들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직접행동과 자주조직화의 긍정적 실천이다. 정향 아나키스트들은, 권력은 선거가 아니라 독립적 사회운동을 통해 구축된다고 주장한다(Ascaso , 2018).

반의회주의는 아나키즘 실천의 근본 원칙 중 하나다. 의회 정당에서 활동하거나 선거에 출마하거나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혁명적 사회주의자일 수는 있지만, 아나키스트는 아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오늘날 정향 아나키스트들은 과거 일부 아나키스트들처럼 '투표는 절대 악이다'라고 교조적으로 주장하지는 않는다. 반투표주의는 과거 특정한 자본주의 발전 단계에서는 일정한 의미를 가졌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무의미해졌다(Black Flag Sydney, 2022).

때로는 우파 후보보다 좌파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분명히 더 나은 경우도 있다. 작은 개혁이 누군가에게는 삶과 죽음을 가를 만큼 중요할 수도 있고, 우익 권위주의를 막는 데 필수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향 아나키스트들은 무엇보다 사람들이 '구원은 위로부터 온다'는 환상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아나키스트들은 어떤 후보도 지지하지 않는다. 다만 정치적 현실을 회피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뿐이다.

대중봉기

정향 아나키스트들은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과정에서 국가와 자본가 계급과의 폭력적 충돌을 피할 수 없다고 본다. 이는 아나키스트들이 폭력을 원해서가 아니다. 자본가들은 결코 스스로 권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혁명에 이르기까지 피억압계급들은 오랜 시간 동안 사회적 힘을 축적하며 투쟁 속에서 자신을 변혁시켜야 한다. 노동자들은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허락하는 법적 개혁이나 혁명적 소수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의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오랜 투쟁 끝에 노동자들과 자본가들 사이에 최종 대결의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혁명의 순간에는 노동자 다수가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대중 조직이 앞장서서 투쟁을 이끌어야 한다. 봉기는 소수의 행동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다만, 노동자와 빈민 계급 안에서 보다 선진적인 일부 집단이 혁명의 도화선 역할을 할 수는 있다(Federación Anarquista Uruguaya, 1972). 이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띨지는 그때그때의 맥락에 달려 있다.

아나키스트들은 수많은 혁명적 순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해 왔다. 러시아 ‘10월 혁명당시에는 아나키스트-공산주의자들이 군사혁명 소비에트에서 활동했다. 불가리아 아나키스트-공산주의자 연맹은 1923년 봉기 당시 불가리아 공산당과 함께 행동했다(Maximov, 1948). 스페인에서는 1936719일 파시스트 쿠데타에 맞선 저항을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자인 노동자들이 주도했으며, 이는 사회혁명으로 이어졌고 역사상 가장 거대한 노동자 자주관리 실험이 시작되었다(Leval, 1975).

물론 그 이후 아쉬운 오류들도 있었지만, 노동대중계급이 국가와 자본주의를 대규모 봉기로 타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확실히 증명되었다(Richards, 1953). 특히 '두루티의 동지들 그룹'은 당시의 오류를 바로잡으려 했고, 이들의 강령은 아나키스트 운동의 전통적 가치와 전략을 충실히 반영했다(Evans, 2020, #67-100; Guillamòn, 2001).

보다 현대적인 사례로는, 우루과이 아나키스트 연맹(FAU)이 나라의 노동조합 운동 안에서 전략적으로 개입하고, 1974년 군사 쿠데타에 맞서 총파업과 공장 점거를 주도한 경험을 들 수 있다(Sharkley, 2009; Lawson, 2022).

자본주의를 타도하려면 사회를 지탱하는 모든 착취적 제도를 철저히 폐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회, 기업, 경찰, 군대 등 지배기구를 폭력적으로 해체해야 한다. 이후 노동자들의 조직은 아래로부터 사회를 재구성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역사적 교훈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러한 과정이 권위주의적 행위라고 비판하지만, 아나키스트들은 이것이 권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본다. 자본가 계급을 패퇴시키는 그 순간,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연합이 비로소 실현되기 때문이다.

생디칼이냐, 소비에트냐, 아니면 다른 무언가냐

정향 아나키스트들에게 사회주의 사회가 어떤 형태를 취할지에 대한 '절대적'이거나 '미리 정해진' 틀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혁명적 사회가 투쟁하는 노동계급으로부터 직접 출현해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 노동자 혁명들을 연구하면 그러한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어렴풋이 가늠해볼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단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Mechoso & Corrêa, 2009).

물론 혁명적 순간마다 등장했던 여러 공장위원회, 생디칼, 소비에트의 성공과 실패에서 우리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는 어떤 형태가 보다 바람직한지를 가늠하는 데 참고할 수 있다.

미래 사회주의 혁명의 구체적 형태는 혁명이 시작되는 특정 지역의 맥락에 따라 유기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발전은 해당 지역의 생산양식, 계급 구성, 정치적 전통 등에 의해 규정될 것이다.

분명히,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기관들은 노동자와 빈민이 대표로 참여하는 대중 민주주의 기구가 될 것이다. 이 기구들은 작업장, 산업, 지역을 기반으로 조직되며, 부르주아지와 자본주의 국가의 기관을 제외한 모두의 이익을 대변하려고 할 것이다. 이러한 기구들은 가장 지역적인 수준에서 출발하여, 점차 지역 연합, 국가 연합, 그리고 결국 국제 연합으로 확장될 것이다. 생산과 분배는 평등주의적이고, 국제주의적이며, 자유지상주의적 원칙에 따라 재편될 것이다(Leval, 1959).

아나키스트들의 임무는 자신들의 원칙과 이론을 실천하는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은 노동자와 피억압 대중중이 스스로 투쟁을 자주관리하도록 격려하고, 새로운 사회가 공산주의적인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힘써야 한다.

"노동자 평의회는 단순히 세부사항만 다듬으면 되는 고정된 조직 형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원칙을 뜻한다. , 기업과 생산을 노동자들이 스스로 관리하는 원칙이다. '노동자 평의회'라는 구호는 사람들이 우애적으로 모여 협력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계급투쟁을 뜻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우애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대중이 국가 권력에 맞서 벌이는 혁명적 행동을 뜻한다." – 안톤 판네쿡(Pannekoek, 1952)


결론

다양한 혁명적 노동계급 이데올로기들은 약 2세기에 걸친 투쟁 속에서 예상하지 못한 현실에 부딪혀 산산조각났다. 그러나 정향 아나키즘은 단지 살아남은 것에 그치지 않고, 여러 역사적 경험을 통해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것은 오늘날까지 진정한 자유 사회의 비전을 이정표로 삼고 있는 일관된 이론과 전략으로 존재한다. 정향 아나키즘은 노동자들의 해방을 위한 투쟁과 깊은 연관을 지닌 정치 이데올로기이다.

정향 아나키스트들과 아나키스트 정치 조직의 실천은 경험을 통해 다듬어졌다. 그리고 이는 우리 경향의 실수와 성공으로부터 배우고, 마르크스주의와 생디칼리즘의 실패와 성공에서 교훈을 흡수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정향 아나키즘의 조직 이론은 자유, 민주주의, 집단적 책임을 균형 있게 유지하면서도 유연하고, 정세에 민감하며, 일관성을 가질 수 있도록 시도한다. 오늘날 세계는 기후 변화와 팬데믹과 같은 전례 없는 글로벌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정향 아나키즘의 전망과 아나키스트 정치 조직의 전략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졌다.

이 소책자는 정향 아나키스트 조직의 개념을 명확하고 쉽게 전달하려고 시도하고, 자유의지주의 이념의 중요성이 더욱 커져가는 현실에 기여하고자 했다. 이 책을 읽은 이들이 아나키스트 조직에 참여하거나 자신의 조직을 만들거나, 아니면 자신의 여정에서 유용한 이론적 개념과 반성을 얻길 바란다. 혁명은 단 하나의 이상이나 라벨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투쟁이 계속되고,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자유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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