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인류 역사는 착취에 기반한 사회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개인과 집단의 반란은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는 역할을 해왔다. 모든 시대의 사상가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새로운 사상에 도달하곤 했다. 특히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등장과 함께, 사회가 두 개의 근본적이고 대립적인 계급으로 분열되어 있다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났다. 이러한 계급 간의 투쟁은 자본주의 사회 진화의 추동력으로 작용하며, 반란이 의식화된 혁명으로 나아가는 길을 만들어냈다.
오늘날 계급 투쟁의 형태가 변화했다는 이유로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는 노동계급이 부르주아화되어 체제에 통합되었거나, 새로운 노동계급이 등장하여 자본주의 사회의 의사결정 구조에 자연스럽게 편입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기존의 사회적 계층이 점차 해체되는 가운데, 두 개의 근본적 계급으로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동시에 세계 곳곳에서 계급 전쟁은 끊임없이 재점화되고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은 어떤 이데올로기적 형태를 취하든 전 세계적으로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는 특징을 가진다. 자본주의는 자유주의에 기반한 형태에서 출발해 국가 독점 자본주의로 발전하거나, 국가 관료 자본주의의 형태를 취하더라도, 본질적으로 노동 착취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이는 자본주의가 내재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결과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량 학살, 전반적인 생활 조건의 붕괴, 그리고 여성, 청년, 인종 및 성소수자와 같은 특정 집단에 대한 착취와 소외는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사회가 근본적으로 두 계급으로 분열된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계급은 부와 노동자의 삶을 지배하며 관습, 도덕적 가치, 법, 문화 등 사회적 상부구조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반면, 다른 계급은 부를 생산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오늘날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다음과 같이 폭넓게 정의할 수 있다. 그들은 어느 수준에서든 잉여 가치를 창출하거나 실현하는 데 기여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목표에 동참하는 비프롤레타리아 계층의 사람들(예: 지식인과 학생들)도 포함된다.
II
계급 투쟁과 혁명은 객관적인 과정이 아니며, 착취당하는 이들의 활동과 무관하게 기계적인 필연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결과도 아니다. 계급 투쟁은 단순히 관찰의 대상이 되는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상황과 사실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다. 혁명은 그 투쟁의 결말이며, 이는 착취당하는 이들이 생산과 교환의 수단을, 무기와 국가 권력의 중심과 수단을 손에 넣고 파괴하는 과정이다.
물론, 계급 투쟁의 과정은 어려움과 실패, 피로 얼룩진 패배들로 점철되어 있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의 행동은 주기적으로 더욱 강력하고 광범위하게 재등장한다.
계급 투쟁은 가장 먼저 직장에서의 직접적인 대립을 통해 나타난다. 또한 일상생활의 문제들, 여성, 청년, 소수자들에 대한 억압에 맞서는 투쟁, 교육과 문화, 예술, 가치관에 대한 의문 제기 등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투쟁은 결코 계급 투쟁과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와 상부구조를 공격하는 것은 곧 자본주의 지배를 공격하는 것이며, 더 나은 노동 조건이나 임금 인상을 위한 투쟁 역시 동일한 계급 투쟁의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단순히 임금 수준의 문제를 넘어, 삶의 방식 자체를 문제로 제기하는 것은 투쟁에 더욱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성격을 부여한다. 삶의 질 향상이라는 단순한 양적 개선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삶의 개념을 요구하는 대중 운동의 발전으로 이어질 때, 이 투쟁은 더욱 깊은 혁명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노동자들이 자본과 국가에 맞서 벌이는 직접 투쟁의 역사를 분석해보면, 거기에서는 항상 자기 조직화를 향한 깊은 경향이 드러난다. 무계급 사회의 초기적 구조는 혁명적 행동이 취하는 형태 속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자율적 행동의 경향은 일상적인 투쟁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자발적 파업, 수용, 관료적 지도부에 대항하는 다양한 직접 행동, 행동 위원회, 현장 위원회 등에서 이러한 경향이 구체화된다. 특히 노동자 총회에서 권력을 요구하고, 대표자의 소환 가능성을 강조하는 것은 진정한 자기 관리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
우리에게 있어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과 그 권력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 사이에는 역사적 단절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과정은 계급 투쟁에서 시작해 프롤레타리아의 승리와 무계급 사회 수립으로 이어지는 자기 관리 기술의 지속적이고 변증법적인 발전으로 이해해야 한다.
혁명적 시기 동안에는 평의회 권력이라는 프롤레타리아 고유의 조직 형태가 등장한다. 역사적으로 이를 목격할 수 있는 중요한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 파리 코뮌 (1871)
- 마흐노주의 우크라이나 (1918~1921)
- 이탈리아 노동자 평의회 (1918~1922)
- 바이에른 평의회 공화국 (1918~1919)
- 부다페스트 코뮌 (1919)
- 크론슈타트 코뮌 (1921)
- 스페인 혁명 (1936~1937)
- 헝가리 봉기 (1956)
- 체코 봉기 (1968)
- 1968년 5월 프랑스 혁명
이러한 평의회 권력은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일반화된 자기 관리를 실현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역사적 실천을 통해서만 정의될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정의 시도는 언제나 접근, 제안, 탐구의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세계는 실천을 통해서만 실현되고 정의될 수 있다.
노동자 권력의 직접적인 형태가 등장하고 일반화된다는 것은 혁명 과정이 이미 상당히 진전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도 부르주아 권력이 완전히 청산된 것은 아니라고 전제해야 한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임시적인 이중 권력 체제가 형성되는데, 이는 노동 계급이 세운 혁명적·사회주의적 구조와 이에 맞서는 반혁명 세력 사이의 권력 투쟁을 의미한다.
이 시기 계급 투쟁은 약화되기는커녕 절정에 이르게 되며, 바로 이 지점에서 계급 전쟁이라는 표현이 가장 날카롭게 와닿는다. 혁명의 미래는 이 전쟁의 결과에 달려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을 일률적이고 고정된 기준에 따라 바라보는 것은 위험하다. 반혁명적 권력(즉, 국가 권력)이 평의회 권력에 맞서 싸우는 방식은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평의회 권력이 모든 국가 권력에 적대적이라는 점이다. 평의회 권력은 사회 내부에서 총회를 통해 직접적으로 표현되며, 각 조직에 파견된 대표자는 총회의 표현일 뿐이고 언제든지 소환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국가 권력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 단계에 이르면 권위와 사회는 더 이상 분리되지 않으며, 개인과 사회 집단의 필요, 경향, 열망이 최대한 실현되는 조건이 마련된다. 인간은 더 이상 객체로서 취급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주체로서 자리 잡게 된다.
따라서 혁명은 대리인을 통해 이루어질 수 없으며, 대중의 자발적 운동의 산물이 되어야 한다. 혁명은 일부 전문가 집단이나 이른바 선도 집단에 의해 계획되고 지휘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 스스로의 행동과 의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여기서 말하는 “자발적”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본능적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혁명 의식과의 결합이 필수적이다. 혁명 의식은 단순한 자발성을 초월하며 이를 보완한다.
달리 말해, 자발성이라는 개념을 단순히 “무질서하고 본능적인 활동”으로 간주하는 것은 분명한 오류이다. 카우츠키는,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레닌은 자발적 행동이 혁명 의식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잘못된 견해이다. 자발적 운동과 혁명 의식은 상호 보완적이며 필수적 요소로 함께 작용한다.
혁명이 단순히 기존 사회의 정치적·경제적 구조를 재편하는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혁명은 자본주의 생산 관계와 국가를 타파함으로써 모든 영역을 동시에 전복하는 과정이며, 이는 단지 정치적·경제적 변화를 넘어 문화적 차원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창출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 맥락에서 “총체적 혁명”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수 있다. 혁명은 특정 분야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의 모든 관계와 가치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전면적 변혁 과정이기 때문이다.
III
진정한 전위는 스스로를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의식이라고 자처하는 특정 집단이 아니다. 실제로 진정한 전위는 공격적 투쟁의 최전선에 있는 전투적 노동자들이며, 후퇴하는 시기에도 일정한 의식을 유지하는 이들이다.
혁명 조직은 만남과 교류, 정보 제공과 성찰의 공간이다. 이러한 활동들은 혁명 이론과 실천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데, 이 두 요소는 하나의 운동의 두 측면일 뿐이다. 혁명 조직은 동일한 수준의 성찰, 활동, 결속을 공유하는 전투적 활동가들을 모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혁명 조직이 프롤레타리아 운동 자체를 대체하거나, 운동에 지도부를 강요하거나, 운동의 완성된 의식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반면, 혁명 조직은 투쟁 경험을 종합하고, 이를 통해 최대한의 혁명 의식과 최대한의 일관성을 획득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이때 혁명 의식은 추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과정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요약하자면, 혁명 조직의 역할은 프롤레타리아 전위를 지원하고, 프롤레타리아의 자기 조직화를 돕는 것이다. 이는 조직이 집단적으로 또는 개별 활동가들의 개입을 통해 선전자, 촉매제, 그리고 진실을 드러내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또한 혁명 조직은 정보 제공, 선전, 모범적 행동에 대한 지원 분야에서 조율되고 통합된 개입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혁명 조직의 개념에서 도출되는 필연적 결론은, 이 조직이 기계적으로 해산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그 존재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자연스럽게 소멸한다는 점이다. 그 시점에 혁명 조직은 무계급 사회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혁명적 실천은 대중 속에서 이루어지며, 이론적 논의는 언제나 프롤레타리아 투쟁과 연결될 때만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혁명 이론은, 실제로는 프롤레타리아 실천이 전혀 없는 상태를 감추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수사와는 정반대에 위치한다.
이는 혁명 조직의 목적이 마르크스주의, 아나키즘, 평의회주의, 자유의지주의적 공산주의와 같은 이념의 이름에 얽매이지 않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엘리트주의적 전위론을 거부하는 전투적 활동가들을 하나로 모으는 데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엘리트주의적 전위 개념은 레닌주의자들에게서 흔히 발견되지만, 자칭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혁명 조직은 특정 이론가나 기존 조직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다만, 대중 운동으로부터 도출된 아이디어를 체계화하고 발전시켜 확산시킨 이들의 긍정적 기여를 인정한다. 혁명 조직은 자신을 제1인터내셔널의 반권위주의적 노동자 운동의 계승자로 자리매김한다. 이 운동은 역사적으로 공산주의적 아나키즘 또는 자유의지주의적 공산주의로 알려져 있으며, 안타깝게도 많은 자칭 아나키스트 경향이 이를 심각하게 왜곡해왔다.
혁명 조직은 자기 관리 원칙을 따른다. 조직의 구조와 운영 방식은 명령하는 자와 명령받는 자의 구분이 사라진 비관료적 사회를 미리 구현해야 한다. 이 사회에서는 기술적 과업을 위한 대표자 위임만이 허용되며, 그마저도 항상 소환 가능한 구조로 이루어져야 한다.
기술적 지식과 다양한 역량은 가능한 한 모든 구성원에게 광범위하게 공유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업무의 효과적인 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토론과 아이디어의 발전은 모든 전투적 활동가의 과제가 되어야 하며, 이는 필수적인 조직 규범보다 더욱 중요하다. 조직 규범은 언제든 수정될 수 있지만, 모든 구성원이 도달한 일관된 의식 수준과 책임감이야말로 관료적 일탈을 막는 최고의 해독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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