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을 바꾸다 : 대중권력을 향한 아나키스트 전략 - BRRN



서문

이 문서는 우리 조직, 로사 네그라 아나키스트 연맹(BRRN)의 정치 강령이다. 본문에 담긴 글들은 약 2년에 걸친 집단적 분석, 토론, 논쟁의 결과물이며, 그 내용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지배 구조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서술한 부분. 둘째, 우리가 실현하고자 투쟁하는 세계에 대한 서술. 셋째,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설정한 전략적‧전술적 방식을 개요하는 부분이다.

오늘날 세계는 신구(新舊)를 아우르는 복잡하게 얽힌 위기들의 연속적 격변 속에 놓여 있다. 전쟁, 민족주의의 재부상, 토착민 우선주의와 백인우월주의, 가부장제적 반동, 경제적 불안정, 극단적 착취 등 다양한 위기들이 그 예이다. 이 가운데 기후변화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실존적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에 맞서 싸우고, 그것들이 기원하는 지배 체제를 공격하며 폐지하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혁명적 사회 변혁을 진전시키기 위해, 우리와 같은 조직은 공통된 분석, 통일된 목표, 단호한 행동 계획을 갖추어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1890년 에리코 말라테스타가 주장했듯이, “아나키스트 조직의 초석이자 결속 고리는 모든 이가 이해하고 받아들인 강령이어야 한다”는 점에 우리도 동의한다. 우리는 이 강령이 단지 정치적‧이론적 통일성을 촉진하기 위한 도구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 활동을 혁명적 변혁을 향한 더 큰 전략과 정렬시키는 공동의 이정표이기도 하다는 이유에서 이 확신을 공유한다.

우리는 혁명적 아나키스트 조직으로서 강령의 존재가 필수적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이 강령이 미국 내 아나키스트 운동의 역량을 고무하고 심화하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 우리나라의 많은 혁명적 좌파들과 마찬가지로, 아나키스트 운동 또한 지난 한 세기 동안 국가의 탄압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그 결과 사회로부터 고립되었고 피지배계급이 벌이고 있는 다양한 투쟁들로부터 단절되어 왔다. 21세기 초 몇몇 대중운동이 아나키즘의 사상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일상적 사회 투쟁과 아나키스트 운동 간의 연결은 여전히 미약한 상태이다.

우리 조직은 이 연결을 강화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적 갈등 속에서 조직적으로 집중된 아나키즘적 개입을 집행하기 위해 10년 전 창립하였다. 이 목표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아나키스트 연맹(FARJ)이 자국 맥락에서 “아나키즘의 사회적 벡터를 회복”하고자 한 목표와 유사하다. 우리 블랙 로즈 / 로사 네그라는 미국 내 사회운동 속에서 계급 독립성, 자율적 관리, 투쟁성, 직접 민주주의, 직접 행동 등 아나키즘의 원칙들을 육성하고자 꾸준히 노력해왔다. 본 강령은 그러한 헌신에 대한 재확인임과 동시에 그 심화된 표현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강령이 비판을 초월한 완결된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강령은 우리의 지속적이고 집단적인 실천을 반영하는 ‘살아 있는 문서’다. 따라서 그 내용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역동성과, 사회적 투쟁 속에서 축적된 경험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강령을 구축함에 있어 우리는 역사적‧현대적 자원 모두를 폭넓게 참고하였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국제적 자매 조직들로부터 받은 조언과 협력적 지지였다. 특히 브라질 아나키스트 협력체(CAB)에 소속된 현재 및 과거 조직들과의 토론을 통해 얻은 통찰과, 이들의 2017년 글 「전략 이론을 위하여」에 대한 연구는 우리의 접근 방식을 형성하는 데 핵심적이었다.

이러한 지도는 각 단락이 서로를 뒷받침하고 보완하는 응집력 있는 문서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일반적 전략은 궁극적 목표 및 지배 구조에 대한 분석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단기적 전략은 현재 정세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단락은 독립적으로 읽힐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총체를 이룬다.

앞길은 험난하며 어떤 보장도 없다. 우리는 사회 혁명을 향한 투쟁, 그리고 자유의지주의적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에 헌신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서 있는 지형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돌파할 단호한 전략을 갖추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 강령이 제공하는 바이다.


대중권력 쟁취! 자유의지주의적 사회주의 건설!

블랙 로즈 아나키스트 페더레이션 / 페데라시온 아나르키스타 로사 네그라

2023년 국제노동절.


구조적 분석

도입

우리의 세계는 소수의 지배자들과 다수의 피지배자들로 분할되어 있다. 이처럼 깊이 자리잡은 분열은 자본주의, 국가, 이성애적 가부장제, 제국주의, 정착민 식민주의, 백인우월주의 등 사회를 규정하는 핵심 구조들의 산물이다. 우리는 이러한 구조들을 개별적으로 분석할 것이지만, 각각은 보다 포괄적인 지배 체계의 상호 강화적 표현들이라고 이해한다. 이러한 구조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왔으나, 그 근본적 특징은 여전히 강인하게 지속되고 있다.

이 구조들의 본질과 지속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권력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거와 현재의 많은 아나키스트들은 권력을 국가와 동일시하며, 착취와 지배의 등가물로 보고, 제거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권력을 하나의 관계로 이해한다. 즉 권력이란 사회 내 다양한 사회세력들—특히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사이에서 전개되는 지속적 투쟁 속에서 형성되는 관계적 현상이다. 이처럼 대립하는 계급들 사이의 권력 균형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며, 그것은 어느 쪽이 상대의 저항을 극복하고 자신의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이와 더불어, 권력 이해의 핵심이자 마르크스주의의 협소한 개념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가 ‘계급(class)’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권력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계급을 하나의 관계로 간주한다. 이 관계에서 계급은 생산수단(예: 기계, 토지, 주택)에 대한 소유 혹은 통제에 더하여, 강제수단(예: 경찰, 군대, 감옥)과 행정수단(예: 법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정부기구)에 대한 소유 또는 통제와의 관계에 따라 정의된다. 생산, 강제, 행정의 수단들을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자들은 자본가, 정치 관료, 군 지도부, 경찰, 판사, 주지사 등으로 구성된 지배계급을 형성하며, 이들은 이를 소유하지 못한 이들, 즉 임금 노동자, 비임금 노동자, 불안정 노동자, 실업자, 수감자 등으로 구성된 피지배계급을 착취하고 억압하며 지배할 수 있는 구조적 위치에 있다.

피지배계급은 결코 단일하지 않다. 우리는 모두 생산, 강제, 행정 수단에 대한 소유나 통제의 결여라는 공통된 조건을 공유하지만, 인종화, 젠더화, 시민권 등의 다양한 요인에 의해 이 조건을 서로 다르게 경험하고 인식한다. 피지배계급은 전체 인구의 압도적 다수를 구성하며, 그 내부는 실로 다양한 정체성과 경험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이 체계의 가장 외곽에 위치한 이들—흑인, 원주민, LGBTQ, 미등록 이주민, 수감자 등—은 그 수에 비해 불균형적으로 많이 이 계급에 속해 있다.

계급은 다른 형태의 지배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계급을 규정하는 동일한 구조와 관계들은 인종화된 지배와 성별화된 지배 역시 형성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인종, 계급, 성별, 성적 지향, 장애 여부 등 다양한 사회적 범주는 서로 상호 구성적인 요소로 작용하며 지배 체계를 구성한다.

이러한 체계는 사회 깊숙이 내재해 있으며, 주류 문화, 피지배계급 내부의 분열, 동의와 강제, 포섭의 복합적 조합을 통해 강화된다. 하지만 이 체계의 상대적 안정성은 계급투쟁의 강도와, 어느 쪽이 더 큰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a) 권력은 사회의 모든 관계 속, 제도적 수준에서부터 일상적 관계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삶의 한 사실이라는 점, b) 권력은 본질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동원되며 어떠한 목적을 향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 c) 권력은 제거될 수는 없으나 변형될 수 있으며, 우리의 과제는 권력의 균형을 피지배계급의 편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 문서는 BRRN의 사회구조 분석을 담고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해 권력 균형과 계급투쟁의 지형을 형성하는 수많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생태적 위기의 근본 원인을 폭로하고자 한다. 이러한 구조들이 어떻게, 왜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지배 체계를 해체하고 자유롭고 사회주의적인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핵심적인 첫걸음이다.

자본주의

18세기 서유럽에서 기원한 자본주의는 전 세계로 불균등하게 확산되었으며, 그 뒤에는 불평등, 빈곤, 생태적 파괴가 따라붙었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사적으로 소유하거나 통제되고 있는 생산수단 및 재생산수단(예: 공장, 아파트 건물, 토지), 임금 및 비임금 노동, 이윤을 위한 생산과 교환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체계이다. 이 요소들은 국가의 보호와 조장 속에서 형성된 잔혹한 계급사회를 구축하며, 이는 인구 다수와 지구의 희생을 대가로 극소수에게 이득을 안겨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의 대부분은 인구의 극히 일부(자본가계급)에 의해 소유되거나 통제된다. 자본가계급은 사회의 필수적 자원과 부의 원천들을 직접적으로 장악함으로써 고용 여부, 주거비와 식료품비, 의복비, 의료비 등에 대한 결정권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적 위치를 점하게 된다. 이러한 재화와 서비스들이 '구입'과 '판매'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이 구조의 한 축이다.

생산수단을 소유하거나 통제하지 못하는 이들(노동계급)은 인구의 압도적 다수를 구성한다. 우리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기에, 생존에 필요한 자원에 접근하기 위해 우리의 노동력, 신체, 시간, 정신을 임금과 교환하여 판매할 수밖에 없다(혹은 그렇게 하는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자본가계급을 위해 정신과 육체를 동원함으로써 가치를 창출하고, 부를 생산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하에서 자본가계급은 이 가치의 막대한 부분을 탈취하여 사적으로 축적하고, 그것을 실제로 만들어낸 인민들에게는 거의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우리는 집을 짓고, 환자를 돌보며, 교육하고, 음식을 조리하고, 청소하며, 소포를 배송한다. 하지만 이 모든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은 우리가 받는 임금보다 훨씬 높다. 우리가 창출하는 가치와 우리가 받는 임금 사이의 차이, 그것이 자본가의 이윤이며, 바로 우리의 노동이 착취당하는 방식이다. 임금은 우리가 만들어낸 가치의 일부에 불과하며, 종종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수준조차 충족하지 못한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임금을 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다수—임금 노동자뿐 아니라 실업자, 병든 자, 고령자 등—와 그 노동을 고용하고 지휘하는 소수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이러한 관계는 직장 내 노동자, 관리자, 고용주 간의 관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다양한 층위에서 반복적으로 재생산된다.

임금노동은 자본주의의 핵심 구성 요소이지만, 우리가 직장에 출근하고 노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대개 임금을 받지 않는 수많은 시간의 노동 덕분이다. 사람을 만들어내고 다시 구성하는 모든 노동—출산, 요리, 청소, 건강관리, 육아와 노인돌봄, 교육 등—은 재생산노동으로 불리며, 대부분 여성에 의해 수행되고, 여성의 당연한 과업으로 여겨진다. 재생산노동의 일부는 상품화되어 판매 가능한 서비스로 전환되었으나, 여전히 대부분 무급이며, 과소평가되고, 가시화되지 않으며, 이윤 생산 과정을 위한 종속적 요소로 취급된다. 이윤을 위한 생산은 순응적 노동자와 시민의 재생산을 필요로 하며, 재생산노동은 그 조건을 뒷받침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생산노동의 분업은 언제나 인종화되어 왔다. 예를 들어, 흑인 여성들은 노예제 시기부터 플랜테이션 가정의 가사노동을 담당했으며, 해방 이후에도 유사한 노동을 제공해왔고, 오늘날에는 가정 내 건강돌봄 서비스 직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노동을 팔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계급을 만들고 그것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동시에 일정한 인민들을 아예 노동시장 밖으로 배제해 왔다. 특히 흑인, 비흑인 라틴계,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높은 비율로 만성적 실업 상태에 놓이거나, 형벌체계에 의해 흡수된다. 공식 경제 옆에는 주변화된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회색 경제(gray economy)’가 존재하며, 이곳에서는 다양한 약물과 기타 상품들이 비공식적인 시장을 통해 사고팔린다. 이 영역은 종종 국가의 감시와 폭력의 대상이 된다. 미국에는 자본주의의 이윤과 지배에 대한 탐욕으로 인해 구조적으로 폐기된, 세대를 걸쳐 실업이 지속되는 공동체들조차 존재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적 위계는 이전의 지배 체제들로부터 출현하였고, 그에 의해 형성되었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가부장적 체제로 등장하였으며, 이는 봉건 유럽의 가부장적 지배 구조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이후 수 세기 동안 지배계급은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가부장제 체제를 형성하고 재편해왔다. 예컨대 노예제 기반의 자본주의가 번성하던 남부 전쟁 이전 시기, 흑인 여성들은 상류 백인 여성에 비해 ‘고통에 무감한 강인한 존재’로 묘사되었다. 이는 이들을 농장에서의 노동뿐 아니라 가정 내 노동까지 수행하게 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장치였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지배계급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억압 체계에 의존하며, 억압 체계는 자본주의 지배계급의 권력 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주요 동력은 이윤 동기다. 자본가는 이윤을 얻기 위해 자본을 투자하고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한 뒤 이를 다시 판매한다. 이 자본 축적의 과정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왜 작동하는지를 설명하는 핵심이다. 자본가는 끝없는 이윤에 대한 갈망 속에서 시장—노동시장, 금융시장, 재화 및 서비스 시장—에서 서로 경쟁에 내몰린다. 이 무자비한 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해, 자본가는 생산 비용을 절감할 다양한 방법을 모색한다. 이는 노동자를 기계로 대체하거나, 임금이 낮은 지역으로 생산지를 이전하거나, 작업장 내 안전 설비를 무시하거나, 환경 규제를 회피하는 등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무엇보다, 우리의 삶 자체를 상품화함으로써 가장 많은 이윤을 얻는다. 우리가 마시는 물부터 교육 제도까지, 그 무엇도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악업의 씨앗은 정착민 식민주의의 물결 속에서 세계에 뿌려졌다. 이 시기 식민제국들은 토지, 노동, 자원을 원주민 공동체로부터 강탈하여 자본주의적 생산 회로에 통합하였다. 이 과정이 지속된다면, 생태계의 생명 유지 능력은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될 것이다. 즉 자본주의는 그 본성상 지속 불가능하며, 그대로 두면 생태계를 끊임없이 황폐화시킬 것이다. 오늘날 지구의 거의 모든 영역은 투자, 채굴, 생산, 상품 교환이라는 글로벌 네트워크의 일부로 편입되었으며, 그 부산물로는 광범위한 오염, 삼림 파괴, 기록적인 폭염, 그리고 전 지구적 대멸종 사태가 있다.

우리가 직면한 기후 재앙은 탐욕이나 인간 본성처럼 어떠한 특성 때문에 발생한 것도, 각 개인의 소비 습관 때문에 발생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지구 전역을 침투하고 약탈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하나의 체계—즉 자본주의—에 의해 야기된 것이다. 단기적 이윤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는 생태적 다양성, 생존을 위한 장기적 계획, 그리고 삶 그 자체를 평가절하하고 파괴한다.

자본주의는 그 역사 내내 군주제에서 사회민주주의까지 다양한 형태의 국가들과 공존해왔다. 그러나 그 형태를 막론하고, 국가는 자본주의가 번영할 수 있는 적절한 조건을 보장하는 것을 주요 기능으로 삼아왔다. 국가는 자본주의의 총괄 관리자로 기능하며, 사유재산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법률을 제정하고, 경찰이나 군대를 동원하여 파업과 대중 시위를 진압하며, 자본 흐름을 규제하고, 특정 기업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자본가계급의 이윤 추구를 촉진하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자본가들이 노동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국가 권력을 확대하려는 과정은 기업과 국가기관 내에 여러 층위의 관리자 계층과 엘리트 전문가 집단을 탄생시켰다. 관리는 직장 내 억압과 통제의 도구로 기능하며, 노동 속도를 높이고, 소유주의 이익이 작업의 중심 동력이 되도록 만든다. 사회 제도들 속에서 지배적 위치를 점하는 엘리트 전문가들은 지배계급 헤게모니의 실행자들이다. 노동계급이 자본가와 관료에게 종속됨으로써 우리는 삶에 대한 통제권을 박탈당하며, 생명은 이윤이라는 무의미한 추동력에 종속된다.

자본주의에서 모든 사람이 자신의 계급 위치를 자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자신의 노동, 계급에 대해 종종 모순적인 생각을 가지며, 이는 개인이 자신이 계급체계 내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오해하게 만든다. “거의 모두가 중산층이다” 또는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식의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지배계급의 관념들—이를테면 아메리칸 드림—은 사회 깊숙이 내면화되어 있다. 노동자들은 학교 교육과정, 소셜 미디어 해시태그, 수많은 TV 프로그램을 통해 이러한 신화를 ‘판매’받는다.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만의 이데올로기를 창출하며, 특히 미국에서는 대안적 사유를 철저히 제거해온 탓에 많은 사람들이 계급에 대한 자본주의적 관념을 ‘상식’으로 수용하고, 자기 자신의 계급적 위치와 이해관계에 대한 자각 없이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집단적 투쟁의 경험은 지배계급의 사유로부터 벗어나는 새로운 관념을 형성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든다. 계급의식은 저절로 발생하지 않는다. 그것은 투쟁과 이데올로기적 대결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제국주의

제국주의란 특정 국가의 국가 권력과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우월한 경제적‧군사적 힘을 이용하여 타국의 인민과 자원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체계이다. 제국주의 강대국들은 부채, 기업 투자, 불평등한 무역 관계, 군사 개입 등을 통해 권력이 약한 국가들로부터 부를 흡수한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완전히 직접적이고 전면적으로 지배하는 체계인 *식민주의(colonialism)*는 지난 한 세기 동안의 대중 투쟁에 의해 상당 부분 약화되었지만, 제국주의적 지배와 착취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예컨대 미국은 푸에르토리코, 괌, 사모아, 버진아일랜드에 대해 여전히 식민지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제는 직접적인 외국의 통치가 아니라, 해당 국가의 국내 지배계급이 외국 제국주의 국가와 세계 자본주의 경제를 대신하여 착취를 관리하는 형태가 일반화되어 있다. 외견상으로는 독립과 자치가 실현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동일한 권력 관계가 유지된다.

제국주의는 세계 자본주의 속에서 서로 경쟁하는 국가 체계의 내재적 특징이다. 국제 자본주의 체제는 국가들 사이에 경쟁을 야기하며, 이들은 영향력과 통제력을 얻기 위해 영토와 지정학적 위치를 둘러싸고 다툰다. 이와 마찬가지로, 각국 자본가계급은 자국 정부에 새로운 시장과 자원에 대한 독점적 혹은 준독점적 접근을 보장하라고 압력을 가한다.

국가들은 그 경제력과 군사력에 따라 대체로 중심부, 반주변부, 주변부의 세 범주로 분류될 수 있다. 이들 범주 각각 내부에도 추가적인 위계가 존재하며, 어떤 국가는 같은 범주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더 지배적이거나 종속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또한 국가들 간의 위치와 상호 관계는 매우 복잡하며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중심부 국가들은 매우 부유하고 고도로 산업화되어 있으며,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다. 이로 인해 반주변부 및 주변부 국가들의 값싼 노동력, 원자재, 수출시장, 상품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 서유럽 및 북유럽 대부분,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이 이러한 세계 체계의 중심부에 위치한 국가들이다.

주변부 국가들은 고도로 산업화된 경제를 갖추지 못했으며,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국가 체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 국가는 주로 중심국, 그리고 일정 부분 반주변국들에 의해 값싼 노동력과 자원에 대한 착취적 접근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아프리카 대륙의 대부분 국가, 중동, 동남아시아, 동유럽, 중남미의 다수 국가는 이 주변부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반주변부 국가들은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중간 위치를 차지한다. 이들 국가는 부분적으로 산업화된 경제를 보유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강한 국가 구조와 군사 능력을 갖추고 있다. 여전히 중심국의 제국주의적 지배를 받지만, 반주변국들 역시 자본 투자, 수출시장 접근, 일정 수준의 군사력을 통해 주변국들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중심국들은 반주변국들을 자국의 지역 관리자나 하위 대리자로 활용하기도 한다.

인도, 러시아, 이란, 터키,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스라엘 등은 일반적으로 반주변국으로 간주된다. 중국은 여전히 일반적으로 반주변국으로 분류되지만, 군사적‧경제적 고속 성장 덕분에 전 지구적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게 되었으며, 따라서 우리는 중국을 부상하는 중심국으로 간주할 수 있다.

각 국가의 지정학적 위치는 우연히 형성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 과정과 구체적 조건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예를 들어, 서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에 대해 식민지 지배를 가하고, 착취하며, 자원을 수탈했던 역사는 이들 서유럽 국가들이 오늘날의 경제적‧정치적 강국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으며, 그 대가는 식민지 국가들이 치러야 했다. 이와 같은 지배와 수탈의 과정은 인종이라는 유사과학에 기반한 이데올로기적 정당화 또한 함께 낳았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아프리카인들, 아메리카 원주민들, 인도 아대륙의 인민들 및 기타 피지배 집단들은 자신들이 당한 지배와 착취를 ‘당할 만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식민 강대국들이 수행한 ‘문명화(civilizing)’ 프로젝트의 ‘수혜자’들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 용광로 속에서 현대적인 ‘인종’ 개념과 ‘백인우월주의’가 형성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지배적인 제국주의 국가로 자리잡았다. 미국의 국가 기구는 수백 개의 해외 군사기지, NATO와 같은 군사 동맹, IMF와 세계은행 같은 금융 기구, 직접적 군사 개입과 점령, 세계 최대의 군사 예산, 그리고 전 지구적 자본주의 질서 유지를 위한 은밀한 작전 등을 통해 제국을 유지하고 재생산한다. 미국은 또한 ‘소프트 파워(soft power)’를 활용하는데, 여기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헐리우드 영화와 대중 오락, 개발 원조, 자유주의적 비정부기구 활동 등이 포함된다.

세계 자본주의 체계와 국가 간 경쟁 체계는 중심국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만, 그 혜택은 불균등하게 분배된다. 중심부 제국주의 국가의 노동계급은 피지배 주변부 국가로부터 추출된 부로부터 일정 부분 혜택을 받기도 하지만, 그 이익은 자본가계급이 누리는 것에 비하면 미미하다. 더욱이 이러한 상호 연결된 체계는 세계화와 같은 과정을 통해 중심국의 노동자 삶마저도 불안정하게 만든다. 자본가계급은 더 값싼 노동력과 높은 이윤을 찾아 생산시설을 반주변 및 주변국으로 이전하면서 중심국 내 일자리를 축소시키고 노동조건을 악화시킨다.

민족주의는 세계 곳곳의 피지배계급이 자신들의 공통된 계급적 처지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핵심 이데올로기적 장치 중 하나이다. 우리는 전 지구적 피지배계급의 일원으로 인식되기보다, 자국 국가에 대한 동일시를 학습하도록 훈련받는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동일시는 대개 국가 건국 신화의 형성과 그것을 반복적으로 각인시키는 상징, 노래, 의식 등을 통해 작동한다. 일부 식민지 국가들에서는 혁명적 또는 대중적 진보 세력이 제국주의 지배에 맞선 피지배계급을 동원하기 위해 대안적 민족주의를 활용하기도 했다. 이들 투쟁 중 다수는 직접적인 식민 착취를 종식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그 대부분은 단지 외국 지배자를 자국 지배자로 교체한 것에 불과했으며, 이들은 세계 시장의 압력과 자신들의 직접적 이익을 위해 자국 국가를 세계 자본주의 체계와 국가 간 경쟁 체계에 통합시켰다.

일부는 세계를 제국주의 진영과 반제국주의 진영이라는 두 블록으로 쉽게 이분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입장을 거부한다. 각국의 지배계급이 설정한 ‘국가 이익’이 설령 제국주의 중심국의 이익과 충돌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동적으로 반제국주의 노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일부 반주변 및 주변 국가들은 중심국의 패권에 맞서면서도, 자국 내 대중운동을 억압하고 근절하기 위해 극단적 조치를 취한다. 진정한 반제국주의는 본질적으로 국제주의에 기반하며, 국가가 아니라 세계의 피지배계급 편에 서야 한다.

국가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 국가는 서유럽에서 자본주의와 함께 공동으로 발달하였으며, 오늘날에는 전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 불균등하게 확산되었다. 국가는 그 등장 이후 자유민주주의에서 군부 독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취해왔지만, 그 규모나 외형과 무관하게, 국가는 특정 영토 내에서 입법 및 사법 기구들로 구성된 관료-군사적 조직이며, 소수의 지배계급이 다수를 통치하는 권력을 집중시키는 구조이다.

모든 국가는 ‘폭력의 독점’을 가진다는 불명예스러운 특징을 공유하며, 국경 내에서는 폭력의 유일한 정당한 행사 주체를 자처하고, 국경 밖에서도 ‘정당한’ 무력 사용을 주장한다. 국가는 경찰, 법원, 구금시설, 감옥 등을 통해 국내의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며, 이를 통해 지배계급의 이익에 부합하는 지배 질서를 보호하고 유지한다. 국외에서는 원자재 접근이나 특정 자본계급의 값싼 노동력 확보, 또는 지정학적 입지 등을 위해, 국가는 군사력 및 기타 폭력 수단을 동원할 권한을 갖는다.

미국 국가는 북미 대륙에서 원주민 인민을 폭력적으로 추방하고 학살한 과정을 통해 창설된 정착민 식민국가이다. 이 사실은 미국 국가의 형성과 그 이후의 전체 궤적을 근본적으로 규정해왔다.

그러나 국가는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정당성을 피통치자들의 눈에 확보할 필요가 있다. 순전히 억압적 수단에만 의존하는 국가는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의 강제적 역할은 ‘동의’와 ‘포섭’이라는 방식으로 보완되고 은폐된다. 교육 제도, 정당, 대중매체, 기타 이데올로기적 기제를 통해 국가는 하나의 ‘국민적 합의’를 구축하려 한다. 이 합의는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이들이 국가와, 더 나아가 지배 체제 전체를 ‘상식’이자 ‘자연스러운 질서’로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권위의 논리를 내면화할 때, 우리는 일상적으로 지배 관계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

국가의 정당성은 또한 교육, 보건의료와 같은 필수적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유지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서비스는 대체로 계급투쟁의 산물이나, 국가의 자비로 보이도록 연출된다. 이렇게 국가의 신뢰도는 계급투쟁에서 중립적 위치에 있다는 환상을 조성함으로써 유지된다. 국가는 또한 도전적인 사회운동을 흡수하고 포섭하는 데 능숙하다. 대중운동의 구호(예: “¡Sí se puede!”, “1% 대 99%”, “Black Lives Matter”)를 차용하거나, 대중의 불만을 선거정치라는 개량주의의 영역으로 유도하며, 사회운동의 지도자들을 매수하여 “내부로부터의 변화”를 약속하게 하는 등의 전술이 그 예이다.

국가가 이러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경제의 건강성에 의존한다. 그리고 국가는 이를 위하여 조세 수입을 확보한다. 따라서 국가는 자본주의 체제를 발전시키고, 보호하며, 촉진하는 것을 핵심적 기능으로 삼는다. 이를 위해 국가는 경찰력과 법제도를 활용해 사유재산을 보호하고 계급 갈등을 억압하며, 기업에 세금 혜택을 제공하고, 다른 국가들과의 무역 협정을 체결하며, 학교를 통해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킨다. 자본가들은 대개 노동자, 다른 자본가, 환경, 또는 전체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희생하면서 단기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국가는 자본주의 전체의 장기적 이익을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오늘날 국가는 경제 내에서 가장 큰 행위자 중 하나이며, 자본주의 사회의 한 기둥으로서, 국가란 노동과 자본 간의 착취 관계를 보호하고 지도하는 존재이며, 배후에 강제력이라는 잠재적 폭력을 배치함으로써 명백히 다수 인민의 이익이 아닌 자본가계급의 편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단순히 자본가계급의 도구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다국적 기업을 통해 자본가들은 다른 어떤 행위자들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국가는 일정 수준의 자율성을 유지한다. 예컨대 정치 엘리트들은 종종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혹은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따라 자본의 이해와 항상 일치하지 않는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국가는 그것을 장악한 자들의 이해관계를 표현하지만, 이것이 곧 지배계급이 항상 같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국가의 통제권을 잡은 다양한 인물들과 집단들은 자국의 특정 경제 부문을 발전시키거나 변형하기 위해, 그리고 타국과 경쟁하기 위해 국가를 하나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지배계급 내부의 권력 투쟁,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끊임없는 개량주의적 포섭의 필요성은 국가를 유동적인 권력투쟁의 장으로 만든다.

국가는 또한 지배 체제를 제도화하고 집행하는 데 있어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시대적 조건과 대중적 반발에 따라 기존의 통제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될 때, 국가는 사회적 위계질서를 재구성하고 재정립하는 중심 기구가 되어왔다.

역사적으로 헌법이 어떻게 노예제를 보호하여 왔는지, 미 육군과 법원과 의회가 정착민 식민주의를 확장하는 데 있어 얼마나 큰 역할을 해 왔는지, 짐 크로우 법이 어떻게 제도화되었는지 등을 보라. 그 예시로 제시될 수 있다. 비록 대중은 투쟁을 통해 이러한 백인우월주의의 기둥들 가운데 일부를 훼손하거나 철폐하는 데 성공했지만, 국가는 인종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기제들을 발전시켜 왔다. 예컨대 오늘날에도 국경의 군사기지화, 대규모 투옥, 경찰 폭력, 제국주의적 침공 등은 모두 유색 인종 인민에게 더욱 가혹하게 작용하고 있다.

국가와 이성애적가부장제 간의 상호 강화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국가는 여성의 정치적‧경제적 기본권을 체계적으로 부정해왔으며, 낙태권을 확대하거나 공격했고, 동성결혼을 금지하거나 허용하기도 하였으며, 반동성애 법을 시행하고 트랜스젠더 노동자와 학생에 대한 보호를 거부해왔다. 강간 재판에서 국가는 대체로 가해자의 편에 섰으며, 군대, 경찰, 의회, 대통령직 등 가장 강력한 국가 제도들의 권력 정점에는 여전히 압도적으로 이성애 백인 남성들이 자리잡고 있다.

결국 국가는 소수 계급의 지배를 제도화한 장치이며, 이 지배 관계는 사회 전반에 걸쳐—우리의 가정, 직장, 학교, 그리고 삶의 모든 핵심 제도 속에서—하나의 사회적 관계로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국가는 지배 체제의 한 축이기에, 누가 그 권력을 쥐느냐에 따라 선하게도 악하게도 사용할 수 있는 ‘중립적 도구’가 아니다. 국가는 선거로든 무장 투쟁으로든, 들고 있는 깃발의 색깔과 상징이 무엇이든, 장악하거나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함으로써 자유롭고 사회주의적인 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백인 우월주의

백인우월주의는 유럽 식민주의가 15세기와 16세기에 착취적‧수탈적 실천을 합리화하고 제도화하며 보호하기 위해 발전시킨 인종적 지배 체계이다. “인종”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러한 과정의 산물이며, 이는 사회 통제를 위한 장치이자 사람들을 “과학적으로” 분류하여 사회적 위계질서에 배치하려는 시도의 일부로서 등장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각 인종 범주에는 외형적 특징에 따라 특정한 본질적 특성, 기질, 행위 양식 등이 부여되었다. 이러한 범주들은 오늘날에도 우리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삶을 규정하는 틀로 작용하고 있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다시 말해, 인종은 생물학적 허구인 것이다.

인종과 인종 범주화는 아프리카인들의 노예화와 원주민 학살이라는 식민주의적 맥락 속에서 태어났으며, 이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왔다. 하지만 언제, 어디에서든 인종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일부를 ‘백인’이라는 공동 정체성으로 결속시키는 계급 간 동맹의 접착제 역할을 해왔다. 이는 계급 간 갈등을 억제하기 위한 방식이었다.

이러한 계급 간 동맹은 미국에서의 인종과 백인우월주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600년대 후반, 영국령 버지니아 식민지의 엘리트들은 정착민 식민 체제를 위협하는 현실적‧공상적 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소위 ‘백인 인종’을 발명하고 제도화하였다. 당시 인구 다수를 구성하던 계약 하인들이 자유 흑인 및 노예 흑인들과 연대하여 부유한 플랜테이션 소수 지배층에 맞설 가능성을 두려워한 식민지 엘리트들은 언제나의 분할통치 전략을 추진하였다. 이들은 일련의 법률과 조치를 통해 유럽계 빈민들에게만 배타적 권리와 특혜를 부여하고, 아프리카인과 원주민에게는 이를 철저히 박탈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백인”과 비백인 사이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구분이 형성되었고, 이는 시간이 흘러간 뒤에도 형태만 달리하여 유지되었다.

“백인”들이 지배적 위치에 놓이긴 했지만, ‘백인성’은 결코 고정된 범주가 아니다. 백인성 자체, 그리고 보다 일반적인 “인종” 개념 전체는 생물학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이는 어떤 사람이 ‘백인’으로 분류되는지가 멜라닌의 양이나 유전자 지표가 아니라, 복잡한 사회적 조건과 배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누가 이 범주 안에 포함되거나 배제되는지를 추적하면, 이 점은 분명해진다. 예컨대 19세기 내내 미국에 대거 유입된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은 당시에는 ‘백인’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토착민 우선주의를 표방한 앵글로계 미국인들은 백인 정체성과, 이를 통해 인종화된 ‘타자’들을 착취하고 지배함으로써 얻게 된 특권을 철저히 방어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일랜드계, 이탈리아계, 기타 유럽계 이민자 노동자들은 이 계급 간 동맹의 범주에 편입되었고, 사회적‧물질적 이익을 고려할 때 이들은 자발적으로 백인 범주에의 포섭을 추구하였다. 백인 엘리트들 입장에서도 백인의 정의를 확장하는 것은 다인종 노동자들의 연대를 사전에 차단하거나 약화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이는 자본주의 경제가 확장되던 시기의 농장과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공통의 지배와 착취에 맞서 단결할 가능성을 억제하는 데 기여했다.

백인성의 경계는 역사적 조건에 따라 확장되거나 축소되어 왔지만, 그 범주에 속하는 것 자체는 언제나 다양한 특권과 이익을 수반했다. 지배 집단 내에 속한 자들이 갖는 전반적인 우월감과 당연시된 권리는, 유색인 노동계급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낮은 실업률, 더 많은 부의 축적, 질 높은 의료, 주거, 교육에 대한 접근, 더 낮은 투옥률과 안전한 지역사회 환경 등에 의해 끊임없이 강화되어 왔다. 물론 이러한 이익이 모든 ‘백인’들에게 동등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백인 엘리트들은 이러한 상대적 특권을 통해 ‘백인 인종’에 속한 노동계급 대중의 이해관계를 인종적 자본주의 프로젝트에 결속시키려 시도해왔다. 이는 과거와 현재 모두에서 목격된다: 노예제와 원주민 학살, 짐 크로우 체제의 옹호, 이민자에 대한 반복적인 토착주의적 공격,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지지 등이 그것이다. 반면 이 계급 동맹의 최상층부에 위치한 소수 엘리트들은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주요 제도를 소유하고 통제하며, 분열된 노동계급 위에서 계속해서 이익을 취하고 있다.

국내에서의 인종 구조와 백인우월주의의 형성은 언제나 국외에서의 제국주의적 정복에 의해 촉진되어왔다. 북미 대륙의 식민화에서부터 중동 지역에 대한 최근의 침공과 점령에 이르기까지, 미제국주의는 언제나 외부의 ‘타자’를 구성하는 작업에 기반을 두고 성장해왔으며, 이 과정에서 비백인 대중과 비백인 국가들은 열등하거나 제국에 위협이 되는 존재로 규정되었다. 이는 아메리카 원주민 기숙학교 시스템,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에 대한 대규모 강제수용,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 기간 동안 아랍, 남아시아인, 무슬림으로 인식된 모든 이들에 대한 인종 프로파일링과 폭력에서 드러난다.

백인우월주의는 국가와 자본주의 양자의 뒷받침에 의해 지속가능하다. 노동시장에서는 유색인 노동계급, 특히 흑인 노동자들이 가장 낮은 임금, 가장 적은 복지, 가장 불안정한 고용 조건의 직종으로 집중 배치되었으며, 이로 인해 만성적인 실업과 국가 폭력 및 투옥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이러한 인종화된 계급적 억압을 떠받치기 위해 미국 정치인들과 국가 관리자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정교한 감금 체계를 구축하였으며, 이는 인구 대비 세계 최대 수감자 비율로 드러나고 있다. 동시에 토착민 우선주의와 백인우월주의 이데올로기 및 그 추종세력은 이민자에 대한 공포를 명분 삼아 내외부 국경을 군사기지화하는 한편, 이민자에 대한 극단적 착취 위에 미국 경제의 번영을 지속시키고 있다.

백인우월주의가 여전히 존속하고 있기는 하지만, 오늘날의 지배계급은 점점 더 다양해지는 인종적‧젠더적 구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 구성은 백인우월주의에 맞선 수십 년간의 투쟁의 결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대다수 인민은 여전히 심각하게 인종화된 계급 체제 속에 갇혀 있다. 이는 인종별 소득 격차, 감옥 수감 통계, 기타 백인우월주의 질서의 지속을 보여주는 지표들로 분명히 드러난다. 이러한 사실들은 억압의 중심을 오직 ‘정체성’이나 ‘계급’ 하나에만 환원시키는 단선적인 분석의 함정을 경계하게 한다. 우리는 인종, 계급, 그 외 다양한 지배 형태들이 미국에서 본질적으로 상호 얽혀 있으며, 시간과 장소에 따라 서로 다른 집단에게 서로 다르게 작용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성애중심주의적 가부장제

이성애중심주의적 가부장제는 젠더와 섹슈얼리티가 지배의 구조, 관계, 이데올로기에 의해 형성되며, 그 결과 일반적으로는 남성에게, 특히 이성애자 시스젠더 남성에게 여성과 LGBTQ 인민을 착취하고 억압하며 지배할 수 있는 위치가 부여되는 체계이다.

출생 직후부터 우리는 가정, 학교, 직장, 그리고 삶 전반에 걸친 모든 사회 제도 속에서 젠더 사회화를 겪게 된다. 이러한 제도들은 성별과 젠더를 둘러싼 이성애규범적 신념, 가치, 규범, 실천, 기대 등을 각인시키며, “남성”, “여성”, “이성애자”, “동성애자”란 무엇인가에 대해 지배적 관념으로 이해시키고,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인 것을 협소하게 정의하게끔 한다. 이와 같은 젠더와 섹슈얼리티 관련 범주들은 자연적이거나 영원불변의 객관적 사실이 아니다. 젠더와 섹슈얼리티는 모두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며, 시간, 장소, 맥락, 사회적 투쟁에 따라 그 정의는 변화한다. 또한 그 의미는 조건에 따라 생명 긍정적인 것으로도, 생명 위협적인 것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이성애중심주의적 가부장제라는 사회 구조는 이성애 시스젠더 남성을 지배적인 위치에 놓는다. 이 체제 하에서, 이성애는 ‘정상적’ 성적 지향으로 간주되며, 남성과 여성, 그리고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은 표준적인 가족 형태로 여겨지고, 남성과 여성이라는 젠더는 상호 배타적이고 이분법적이며, 출생 시의 생물학적 “성(sex)”에 의해 고정된 것으로 간주된다.

이성애중심주의적 가부장제는 다른 지배 형태들과 공생 관계를 맺는다. 예컨대 노예제와 정착민 식민주의의 유산 속에서 오늘날 미국에서는 백인 남성들이 최고임금 직종을 지배하고 있으며, 반면 흑인 및 원주민 여성들은 저임금과 거의 또는 전혀 복지 혜택이 없는 직종에 과대표집되어 있다. 국가는 자본과 함께 노동시장의 이러한 인종화되고 젠더화된 분리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이는 저비용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구조적 전략으로 작동한다.

국가의 강제적 기능과 관련하여, 특히 유색인 퀴어 및 트랜스 인민들은 과도하게 감시당하고, 체포되며, 수감된다. 한편,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및 점령과 같은 제국주의적 개입은, 종종 ‘여성 해방’을 명분으로 내세움으로써, 제국 건설에 봉사하는 방식으로 정당화되곤 한다.

이성애중심주의적 가부장제의 핵심 축 중 하나는 젠더화된 사회적 재생산 노동의 분업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은 일반적으로 “생산적인” 육체노동이나 지적 노동을 수행하도록 장려되는 반면, 여성은 사회적 재생산의 필요를 충족하는 쪽으로 밀려난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재생산이란, 임금 노동을 지속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의지, 역량, 성향을 지닌 노동계급을 형성하고 돌보며 사회화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이성애적 가족 내에서 여성은 여전히 대부분의 무급 가사노동을 담당하고 있으며, 자본가에게 이윤을 창출하는 유급 노동에 종사한 뒤에도 귀가하여 요리, 청소, 육아, 노인 돌봄, 심지어 배우자 돌봄까지 수행하는 이중노동을 감당한다. 이 모든 노동은 노동자가 다음 날 다시 일터로 나아가기 위한 조건을 마련하고, 다음 세대를 노동계급으로 편입시키는 데 필수적이다. 노동시장에서도 여성은 돌봄과 서비스와 같은, 타인을 위한 직종—예컨대 교육, 보건의료, 기타 서비스 노동—으로 진입하도록 유도되며, 이 직종들은 전통적인 남성 직업보다 과소평가되며 덜 안정적이다. 사회적 재생산 노동은 단지 임금 노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능에 그치지 않고, 이성애중심주의적 가부장제를 떠받치는 젠더 규범과 역할을 주입하는 핵심 수단이기도 하다.

이성애중심주의적 가부장제는 여성과 LGBTQ 인민에게 자행되는 폭력을 통해 가장 노골적이고 잔혹한 형태로 드러난다. 젠더 폭력은 가정 내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직장 내 성희롱, 거리에서의 여성살해, 전쟁터에서의 강간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젠더 폭력은 위계적 권력 관계에 의해 가능해진다. 우리의 직장, 가정, 학교, 그리고 사회의 다양한 제도들에서 시스젠더 남성은 대개 고용주, 집주인, 경찰, 교도관 등으로서 구조적 권력을 가진 위치에 있으며, 이는 노동, 주거, 안전 등 생존을 위해 이들에게 의존해야 하는 이들을 착취하고 위협할 수 있는 권력을 의미한다.

문화적 규범, 자본주의 기업의 관리자들, 그리고 국가의 “사법 시스템”은 이러한 폭력을 저지르는 시스 남성들을 보호하고, 부끄러움, 배척, 불신, 침묵 강요 등의 방식으로 피해자 및 생존자들을 억압한다. 위기 상황이 도래하거나 페미니즘 운동이 전진할 때, 젠더 폭력은 종종 증폭되며, 자신의 남성성과 지배권이 위협받는다고 느낀 남성들에 의해 무기로 사용된다. 하지만 젠더 폭력은 시스 남성만이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젠더 정체성을 가진 이들 또한 이성애중심주의적 가부장제가 규정한 규범과 역할을 강제하기 위해 폭력이나 다른 지배 형태를 사용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젠더 폭력은 지배 체계 전반에 내재된 폭력의 연장이며, 그 구성 요소 중 하나이다.

이성애중심주의적 가부장제는 남성에게도 심대한 해악을 끼친다. 남성은 성장 과정에서 감정을 억누르고 도움을 구하지 않도록 사회화되며, 강해 보이는 것이 요구된다. 이러한 기대는 우울증, 약물 남용, 폭력, 자살률 증가 등으로 이어진다. 소년과 남성은 지속적으로 협소한 남성성 개념을 내면화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동성애 혐오와 여성혐오는 남성들을 통제하는 데 사용되는 무기이기도 하다. 이들은 “남자답게 굴어라”, “계집애처럼 굴지 마”, “호모 아냐?”, “남자는 울지 않아” 같은 말을 듣는다. 이러한 규범은 도달 불가능하거나 애초에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이 규범에서 벗어나려는 것으로 인식된 남성들—특히 게이 및 트랜스 남성—은 종종 폭력의 대상이 된다. 이성애중심주의적 가부장제는 사회적 구조 속에서 남성에게 지배적 위치를 부여함으로써 일정한 이익을 제공하지만, 결국 인간으로서의 잠재력을 실현하지 못하게 만드는 체계이기도 하다.

이성애중심주의적 가부장제는 고정된 형태가 아니다. 오늘날의 지배계급은 여전히 이성애 시스 남성이 중심이지만, 그 내부는 점점 더 여성과 퀴어 인물로 구성되어 가고 있다. 자유주의적 동화주의 정치와 정체성 기반 투쟁의 진전에 따라, 이성애중심주의적 가부장제의 단단했던 사회적 경계는 보다 유동적으로 변하고 있다. 억압받는 집단의 일부는 이제 지배계급의 일원, 혹은 하위 파트너로 포섭되기도 한다. 이 사실은 우리가 자유주의적 정체성 정치 너머의 분석을 심화시킬 필요성을 제기하면서도, 여성과 퀴어 인민이 여전히 점유하고 있는 특수한 사회적 위치를 간과하지 않도록 경계하게 한다.

지배계급은 이성애중심주의적 가부장제의 기본 구조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지만, 이는 우리 모두가—이 지배적이고 독성적이며 회피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에 둘러싸인 채 성장한 우리 모두가—일상적으로 재생산하고 강화하는 체계이기도 하다. 따라서 성차별, 트랜스혐오, 동성애혐오 등의 문제는 노동계급 조직 내에서, 심지어 우리의 정치조직 내부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인식하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노동계급의 권력 자체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정착민 식민주의

미합중국은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집단학살을 기반으로 건설된 국가이다. 15세기 말부터 유럽 왕실들은 상인, 군인, 선교사들을 동원하고 이들을 장려하여, 오늘날 우리가 아메리카 대륙이라 부르는 지역에서 원주민 인구를 폭력적으로 제거하고, 그 땅을 탈취 및 점유하며, 원주민의 영토 위에 영구적인 정착민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이러한 정착민 식민주의는 전통적인 식민주의의 형태들과는 구별된다. 후자는 주로 원자재의 수탈과 원주민 인구의 착취를 통해 직접적인 물질적 이익이나 시장 확장을 추구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대개는 본국과 식민지 간을 오가는 일시적 인구가 수행한다. 반면 정착민 식민주의에서는 이러한 기능들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목적은 영구적 인구를 도입하여 원주민의 삶의 양식을 뿌리째 뽑고, 새로운 사회적, 정치적, 법적, 경제적, 종교적 구조로 대체하는 데있다. 궁극적으로 정착민 식민지는 집단학살과 동화의 결합을 통해 기존 원주민 인구를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정착민 식민 사회의 수립에는 토지 약탈이 필수적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온 정착민들은 폭력적으로 원주민을 그들의 땅에서 축출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다양한 논리를 동원하였다. 여기에는 원주민을 인종적 또는 문화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간주하는 익숙한 담론뿐 아니라, 무주지 원칙과 같은 법적-정치적 개념의 도구화도 포함된다. 무주지 원칙은 "비어 있는 땅"은 이를 “정당하게” 사용할 의사가 있는 자들에게 귀속될 수 있다는 개념으로, 정착민들은 이를 바탕으로 토지를 분할하고, 개별 개인이나 집단이 독점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사유재산 체제를 도입하였다.

이러한 무한한 영토 확장의 탐욕은 북미의 정착민들이 영국 왕실에 반기를 들게 한 원인이 되었다. 독립을 쟁취한 이후, 새로 수립된 미국은 내부 영토 확장에 대한 기존의 모든 제한을 철폐하고자 하였다. 독립전쟁 이후 이어진 급격한 서부 확장은 신생 연방정부로 하여금 군사력과 치안 역량을 급속도로 확장하도록 만들었다. 이 독립전쟁과 영토 팽창이라는 이중의 도가니 속에서 현대 미국 정착민 식민국가의 초기 형태가 형성되었다.

19세기 동안 미국은 타국과의 전쟁, 합병, 협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영토를 확장하였다. 이 시기 내내 연방정부와 자경단 정착민들 모두는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원주민 인구의 말살을 시도하였다. 폭력적 침입은 여전히 핵심 수단이었지만, 새로운 방식들도 등장하였다. 인디언 이주법과 인디언 할당법의 도입은 강제 이주의 체계화와 현대적 보호구역 시스템의 형성을 초래하였다. 19세기 후반부터는 원주민들을 정착민 사회에 완전히 동화시키기 위한 노력—토지, 언어, 영성, 문화 실천, 공동체적 관계로부터의 분리—가 가속화되었다. 이에는 가족과 공동체로부터 분리된 원주민 아동들을 수용하기 위한 수백 개의 민간 및 공공 기숙학교의 설립도 포함되었다. 이 학교들의 기획자 중 하나는 그 목적을 “인디언을 죽이고, 인간을 구한다”고 표현한 바 있다. 국가가 주도한 이러한 강제적 동화 정책은 20세기 중반 이후에도 계속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연방정부는 원주민의 정체성과 문화를 완전히 해체하기 위한 더욱 정교한 정책들을 생산해냈다.

그러나 원주민 인민들은 그들의 삶의 방식과 존재 자체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왔다. 1622년의 포우하탄 봉기부터 최근의 다코타 액세스 파이프라인(DAPL)반대 투쟁에 이르기까지, 정착민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지배는 원주민의 토지, 수자원, 조약, 자치권을 둘러싼 갈등, 대중매체에서의 폄하와 지워짐, 일부 부족 및 권리에 대한 국가의 인지 거부, 보호구역 내 삶에 대한 체계적 자원 박탈과 비관리등 다양한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


궁극적 목표

도입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양을 규정하는 일반적 구조, 지배관계, 지배기제에 대해 분석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이 구조를 바꾸기 위해 필요하다고 바라보는 것(사회혁명)에 대해 설명하고, 우리가 건설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사회주의 조직(자유의지주의적 사회주의)에 대하여여 개괄하도록 하겠다.

사회혁명과 자유의지주의적 사회주의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는 이라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근본적으로, 긴급하게 바뀌어야 함은 자명하게 알 수 있다. 팬데믹과 생태적 파괴에서부터 끝없는 전쟁과 만연한 사회적·정치적·경제적 불평등에 이르기까지, 중첩된 위기의 무게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이러한 조건들은 깊이 뿌리박힌 지배 체제의 산물이며, 이 체제는 자본주의, 국가, 백인우월주의, 정착 식민주의, 이성애중심주의적 가부장제, 제국주의 등 다양한 얼굴을 지닌 복합적 체계다.

이 체계는 청원이나 투표, 로비와 같은 평화로운 방식으로 제거할 수 없다. 이 체제의 주요 수혜자들인 지배 계급은 그 안정과 확대재생산을 보장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왔다. 그리고 그들은 앞으로도 자신들의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폭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사회 질서로부터 이익을 얻고 있는 자들이 가로막고 있는 한, 사회의 극적인 재편성은 결코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지배하는 계급과 지배받는 계급 사이에는 이 체제를 파괴하고 새로운 세상을 위한 길을 여는 폭력적 충돌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즉, 우리는 사회 혁명이 필요하다.

국가 권력을 장악하여 위로부터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정치 혁명과는 달리, 사회 혁명은 아래로부터의 전면적인 사회 변혁을 의미한다. 이 총체적 변혁은 파괴와 창조를 모두 수반한다. 착취받고 억압받아온 인민이 조직된 힘으로 반동의 세력을 꺾고 현 상태와의 폭력적 단절을 이룰 때, 이것이 사회 혁명의 파괴적 국면이며, 기존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구조뿐 아니라 이를 유지하는 지배의 관계와 메커니즘을 집단적으로 뿌리 뽑는 과정이다.

특히 사회 혁명은 국가의 즉각적인 폐지를 포함한다. 여기에는 입법과 법 집행을 수행하는 모든 제도들(경찰, 법원, 군대, 감옥, 정부 등)의 폐지가 포함되며, 자본가 계급이 축적해온 모든 부의 몰수, 사유 재산의 폐지, 문화 규범과 가치관의 급진적 변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사회 계급 자체와 백인우월주의, 식민주의, 가부장제, 트랜스혐오 등 모든 형태의 지배를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자본주의적 지배의 낡은 세계에서 자유지상적 사회주의의 새로운 세계로의 변혁은, 대중이 행동에 돌입하고 우리를 정체시켜온 사슬을 끊어내는 급속한 혁명적 단절의 시기로 특징지어질 것이다. 그러나 흔히 낭만화되는 혁명적 격변의 상상과는 달리, 역사는 우리에게 그것이 단일하고 깔끔하게 수렴되는 사건이거나 예측 가능한 순서로 전개되는 일이 아님을 가르쳐준다.

그럼에도 혁명적 단절은 폭동, 파업, 봉기와 같은 한정된 공개적 충돌들과는 질적으로 구별된다. 이러한 충돌은 우리 사회의 심층에 자리한 근본적 적대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며, 지배와 착취의 구조를 드러내고, 전략과 전술을 발전시키며, 때로는 단기적 성과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인내심 있는 준비, 조직화, 잘 고안된 전략 없이는 이 같은 충돌은 제한적이고 불균등한 결과만을 낳기 쉽고, 결국 현 상태와의 완전한 단절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진정한 혁명적 단절은, 피지배계급이 전체 지배 체제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을 축적했을 때 비로소 실현 가능해진다. 이러한 힘의 축적, 곧 우리가 '대중권력'이라 부르는 것은, 아래로부터의 독립적인 사회운동들을 정향 아나키즘 조직직들과 함께 장기적으로 구축하고 통합하여 현재의 사회관계를 전복하려는 광범위한 전선을 형성하는 과정에 달려 있다.

혁명적 단절의 혼란 속에서, 여러 정치 정당과 조직들이 “인민을 위하여”라는 명목으로 투쟁을 가로채려 들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아나키스트들은 투쟁을 주도하는 사회운동 내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가져야 하며, 우리의 가치, 원칙, 실천을 확산시키는 동시에 기회주의적·개혁주의적 세력이 혁명을 자신들의 협소한 목적을 위해 조작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앞으로 벌어질 혁명적 단절의 구체적 사건들은 예측할 수 없지만, 하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지배 계급은 자신들의 지배 체제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혁명 운동을 폭력적으로 탄압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사회 혁명을 방어하기 위해, 인민의 자기방어 조직이 형성되어야 한다. 이들은 반드시 민주적으로 조직되어야 하며, 노동자 평의회나 지역 공동체 총회와 같은 연합된 대중 조직으로부터 나와야 하며, 그들에게 책임을 지고 통제받아야 한다.

이러한 방어 조직의 역사적 사례는 여러 혁명적 상황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파리 코뮌을 방어한 급진화된 국민방위대, 우크라이나의 혁명 반란군, 스페인 CNT-FAI의 노동자 민병대,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로자바의 인민 및 여성 방위부대 등이 그러하다. 우리의 투쟁을 방어하기 위해 폭력이 요구될 수 있으나, 그 어떤 힘의 사용도 지배 체제와 그것의 구체적 양태들을 끝장내기 위한 것이어야지, 단지 다른 지배자를 세워 그 구조를 재생산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배 체제를 뿌리뽑기 위한 일반적인 수단들을 상정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탈리아의 아나키스트 에리코 말라테스타가 지적했듯, “우리가 ‘헌병’과 모든 유해한 사회 제도를 철폐하고자 한다면, 그것들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만들자마자, 아니 철폐를 시작하는 그 날부터 무엇으로 그 역할을 대신할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낡은 질서를 파괴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는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질서를 건설해야 한다.

현재의 지배 체제를 대신하여, 우리는 인류 사회가 그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하고 지구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보장할 수 있도록, 자유의지주의적 사회주의 체제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자유의지주의적 사회주의 사회란, 국가와 사회 계급, 시장과 화폐의 필요를 제거한 사회이다. 그 모든 면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자유의지주의의적 사회주의 사회가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포함하리라 본다:

사회가 자신을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하는 데 사용되는 토지, 기계, 도구의 집단적 민주적 소유. 이는 현재의 사유재산 체제를 대체할 것이다.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기반으로 하며,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원칙에 따라 생산·소비·분배가 이루어지는 경제.

일터와 지역사회의 자율적 관리. 이는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들에 대해, 그 영향을 받는 정도에 비례하여 의견을 낼 수 있는 체계를 의미한다. 작업장과 지역의 총회는 아래로부터 상향식으로 지역, 광역, 대륙 단위의 연합체를 구성하며, 이는 국가의 위로부터의 통치 구조를 직접민주주의로 대체할 것이다.

무분별하고 낭비적인 이윤 중심 시장 경쟁을 대체하기 위한 집단적 경제 계획. 이는 생산자 평의회와 소비자 평의회가 직접 민주적이고 협력적인 방식으로 어떤 상품과 서비스를 얼마나, 어떻게 생산하고 분배할지를 함께 결정하는 체계다.

제국주의적 지배, 민족주의, 국가 간 경쟁의 현재 글로벌 질서를 대체할 지역 연합 간의 국제적 연대와 협력.

성적·젠더 해방. 이는 성별과 성적 지향의 표현의 완전한 자유, 그리고 사회적 재생산 노동의 공평한 분배가 이성애중심주의적 가부장제를 대체하는 규범이 되는 것을 뜻한다.

흑인과 모든 유색 인민의 해방. 이는 백인우월주의의 철폐를 통해 인종이 더 이상 사회적 위계를 만드는 도구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탈식민화. 이는 모든 원주민 영토와 자원을 회복하여 그들의 문화적, 영적, 물질적 안녕을 보장하고, 원주민 공동체와 실천, 언어, 지식 체계를 재구성하는 것을 포함한다.

사회적 갈등과 피해를 처벌이나 감금이 아닌 회복과 전환, 그리고 필요에 기반하여 해결하는 체계.

마케팅, 은행업, 과도한 중간관리층 등 사회에 아무런 유용한 기여도 하지 않는 수많은 일자리를 폐지하고, 이윤이 아닌 인간의 필요를 위해 기술을 활용하여 가능한 많은 노동을 자동화하고, 퇴거의 불안 대신 주거를 사회화하고, 경직된 성 역할이나 인종차별로 인한 일상적 압박에서 벗어남으로써 스트레스가 감소하게 되면, 자유의지주의적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삶은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삶과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우리는 삶에 대한 더 많은 통제권을 가지게 될 것이며, 자신의 열정을 추구할 수 있는 더 많은 자유 시간,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노동을 수행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지금은 상상조차 못할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피지배계급이 자유의지주의적 사회주의를 어떻게, 언제, 혹은 과연 실현할 수 있을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그것이 하나의 지역에서 시작되어 확산될지, 불균등하게 여러 지역망에서 동시에 나타날지, 아니면 기존 질서의 대규모 붕괴를 통해 등장할지는 불확실하다. 우리가 직면한 위기들을 고려할 때 자유의지주의의적 사회주의 사회의 창조는 필연이지만, 그것이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 그 성공과 생존 가능성은 전 세계적인 사회 혁명을 통해 이 목표를 달성하려는 투철한 대중 사회운동들과 정향 아나키즘 정치조직들의 결합된 힘과 결의에 달려 있다.


일반 전략

우리의 궁극적 목표인 사회혁명과 자유의지주의적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투쟁의 고비마다, 우리에게는 북극성처럼 방향을 안내해 줄 나침반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우리는 체제를 해체함과 동시에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지속 가능한 혁명적 방향성을 갖춘 일반 전략이 필요하다.

전략이란 넓은 의미에서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을 의미한다. 이는 단기, 중기, 장기 전략으로 구성될 수 있다. 이런 전략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전술이 요구된다. 전술은 수단과 목적 사이를 논리적으로 연결해주는 구체적 단계이다.

단기 전략이란 특정 장소, 시간 속에서 조건에 의해 규정된다. 반면 전략 일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전략 일반은 사회에 대한 구조적 분석, 지향하는 미래, 구체제에서 새로운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의 인식을 토대로 형성된다. 전략 일반은 우리의 정치조직과 이에 소속된 활동가들을 지도하는 포괄적 틀이며, 단기와 장기 사이의 연결다리이자 수단과 목적을 결속시키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브라질의 히우지자네이루 아나키스트 연방 (Federação Anarquista do Rio de Janeiro, 이하 FARJ)은, “정향 아나키스트 조직은 전략을 갖고 활동하는 것이 필수적이다”라고 했다. 이는 그 구성원들이 “같은 방향으로 노를 젓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집단적 토론, 의사결정을 통해 형성된 일반 전략은 조직이 제한된 자원을 공통되고 응집력 있는 방향으로 동원할 수 있도록 하며, 이로써 활동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한다.

일반 전략을 채택하는 것은 조직 내 개인, 집단이 상충되는 활동을 할 때 발생하는 혼란, 갈등, 비효율성을 줄이는 데에도 기여한다. FARJ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각 활동가나 집단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일, 혹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그것이 공동 전체에 기여한다고 믿는 방식만으로는 조직 내에서 활동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들에서 일반 전략은 필요하다.

우리의 일반 전략은 대중 권력을 구축하려는 아나키스트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는 우루과이 아나키스트 연방 (Federación Anarquista Uruguaya, 이하 FAU)과 1960~70년대 남아메리카의 사회·정치적 투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FAU가 정향 아나키즘 전략 일환으로 제시한 대중 권력 구축 방식은 “강력한 인민의 형성”으로 집약되었으며, 이는 남미 남부 지역은 물론 그 밖 지역의 자매조직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끼쳐 왔다. 이 전략에는 사회운동의 주도적 역할이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사회운동은 다음과 같이 이해될 수 있다. “공동의 목표를 방어하거나 증진시키는 데 있어 공통의 이해관계를 지닌 인민 또는 집단의 결사체… 이러한 운동은 사회의 매우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투쟁의 기치를 걸고 존재하며, 이는 운동을 둘러싼 이들의 필요, 즉 공통의 대의를 반영한다.”

미국에는 시대를 걸쳐 걸쳐 다양한 “투쟁의 깃발”을 내건 수많은 사회운동들이 존재해 왔다. 노예제 폐지 운동에서 노동자, 세입자, 농민, 여성, 성소수자, 원주민, 학생, 이민자 권리, 치카노/치카나, 환경, 반전, 민권, 흑인 해방 운동까지, 매우 넓은 범위의 운동들이 있다. 이러한 사회운동들을 통해 짐 크로 분리 정책의 해체에서부터 아동 노동의 종식까지, 우리 사회는 가장 극적인 변화들을 경험해왔다.

우리의 일반 전략은 오직 사회운동만이 혁명적 변혁의 잠재력을 지니며, 새로운 사회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사회운동의 혁명적 잠재력은 과거와 현재, 국제적으로 다양한 사례를 통해 엿볼 수 있다.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초반, 만주에서 자치 지역을 형성했던 신민회, 스페인 혁명 당시 사회화된 수천 개의 농장들과 공장들, 멕시코 혁명기의 모렐로스와 그 외 해방된 영토들, 1960~70년대 우루과이의 대중운동, 러시아 혁명 초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소비에트와 코뮌들, 그리고 오늘날 로자바의 해방 투쟁 속에서 그 가능성은 살아 숨쉰다.

그러나 사회운동의 혁명적 잠재력이 결코 당연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회운동은 체제 자체가 아니라 그 일부만을 변화시키려는 개량주의로 이끌린다. 이런 운동들은, 혹은 방향을 규정하는 지도부는 개량을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여긴다.

개량주의에 경도된 운동 조직들은 체제의 가치, 신념, 실천들을 스스로에게 투영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국한되지는 않지만, 다음과 같은 것들이 투영된다. 위계적 관리구조와 상명하복식 의사결정 구조, 두꺼운 관료제, 개량주의 정치인을 선출하고 그들과 협력해 국가를 통해 변화를 실현하려는 접근방식, 그리고 운동의 지도자들의 위상을 끌어올리기 위해 급여를 증대시키는 방식으로 개인주의와 경쟁을 조장하려는 태도가 대표적이다.

개량주의 정치의 전술과 전략은 사회 중심세력의 피룡와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노동조합 관료, 비영리단체의 전무 이사, 진보적 정치인 등이 이에 포함된다. 이들 세력에게 있어 조직 자체, 즉 노동조합이나 비영리단체, 정당은 곧 생계의 기반이자 삶의 방식이다. 이는 대체적 후한 급여에서부터 사회적·정치적 네트워크까지 포괄된다. 그렇기에 이들은 불법 파업, 대중적 교란행동과 같은 조직을 위태롭게 할 전술, 전략을 추구할 가능성이 낮다. 대신 운동 내 개량주의 경향은 공적 경로를 통한 변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더 크다. 로비, 선거운동, 상징적 시위, 기자회견 등이 개량주의의 전형적 도구들이다.

우리는 개량주의를 거부하지만, 그럼에도 개량을 위한 투쟁은 필수적이다. 그 개량이 지주, 자본가, 정치인을 통해 시혜적으로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쟁취될 때에 한하여 말이다. 삶과 노동 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율적이고 집단적 행동을 통해 개량을 쟁취하는 것은, 우리의 역량과 연대, 주도성, 투쟁 의지를 강화시킨다. 개량을 위한 투쟁은 대중 권력을 구축하는 데 있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자유의지주의적 사회주의 지평에서 영감을 받은 우리의 일반 전략은 지배계급으로부터 개량을 쟁취할 뿐 아니라, 새로운 사회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는 자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사회운동을 통해 대중 권력을 구축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운동들은 고유한 조직 형태와 투쟁 방식을 통해 특징된다.

자유의지주의적 사회주의의 지평에서 영감을 받은 우리의 일반 전략은, 지배계급으로부터 개량을 쟁취할 뿐 아니라 새로운 사회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는 자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사회운동을 통해 대중 권력을 구축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운동들은 고유한 조직 형태와 투쟁 방식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1. 공통된 필요에 따른 조직 : 도덕적 분노에 따라 이슈에서 이슈로 옮겨다니며 사회적 기반을 형성하지 못하는 행동주의와 달리, 우리는 인민의 공통된 물질적 필요와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투쟁하는 운동을 지향한다. 착취받고 억압받는 인민의 공통된 필요, 예컨대 임금 인상이나 임대료 규제, 보육, 경찰 없는 학교와 같은 것에 뿌리를 둔 조직은 우리의 삶과 노동 조건을 개선할 뿐이 아니라. 혁명적 변화를 가능케 하는 지렛대가 될 폭넓은 사회적 기반을 형성할 잠재력을 지닌다.

2. 계급투쟁과 자주성 : 우리는 지배 세력과의 계급 협력에 반대하며, 국가, 정당, 비영리단체 등 계급투쟁을 가로막는 기타 장애물로부터 자주성을 유지하는 운동을 지지한다. 이런 자주성은 운동이 포섭, 해체, 그리고 체제에 길들여지는 위험을 회피할 수 있도록 해준다.

3. 직접 민주주의 : 소수의 상층부에 의사결정 권한이 집중된 상명하복식 조직이나 대의민주주의와는 달리, 대중권력을 구축하려는 운동은 직접 민주주의를 실천한다. 이는 모든 구성원의 실질적인 참여와 민주적 통제를 보장하며, 모든 구성원이 투표, 합의 등의 집단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동등히 발언권을 가질 수 있게 한다.

4. 자주경영과 연방주의 : 엄격한 구조와 지시하는 자, 따르는 자 사이의 위계를 지닌 조직들 대신 우리는 자율적으로 운영되며 현장 구성원들에 의해 민주적으로 조직되고 통제되는 운동을 지지한다. 이런 운동에서는 구성원들이 자신에게 영향이 가는 결정에 대해 발언권을 가지고, 아래로부터 연방주의적 구조를 통해 확대되고 상호 연결된다.

5. 전투성 : 우리를 수동적 존재로 만들고 기존 체제를 재생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체제내적 제도에 스스로를 가두는 대신, 우리는 직접행동에 중점을 두며, 불법 파업, 연좌 농성, 점거, 그 외의 여타 체제 교란 전술 등 대규모 시민 불복종을 기꺼이 감행할 수 있는 전투적 운동이 필요하다. 이는 일상적 정치와 자본 운영 방식에 실질적 위협을 가하는 운동이다.

6. 연대와 상호부조 : 특정 투쟁에만 국한된 운동이 아닌, 연대와 상호부조에 뿌리내린 사회운동이 필요하다. 우리는 착취받고 억압받는 모든 인민과 함꼐, 체제 전체에 맞서는 투쟁을 해나가야 한다. 우리는 서로를 지키고,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

7. 국제주의 : 우리가 우연히 살고 있는 국가에 투쟁을 한정짓는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를 거부하며, 국내외에서 모든 착취받고 억압받는 인민과 연대하는 국제주의 운동을 지향해야 한다. 이러한 운동은 국제 자본주의, 제국주의, 민족국가 체제에 맞서 싸운다.

8. 혁명적 문화 : 우리는 지배적 문화의 가치, 즉 개인주의와 경쟁, 이성애중심주의, 인종주의 등에 맞서야 한다. 대신 우리는 협동, 연대, 국제주의, 반인종주의, 페미니즘 등을 중심으로 한 혁명적 문화를 우리 운동과 조직 내에 형성해야 한다. 그리고 조직의 구조와 인간관계는 물론, 예술, 교육 및 여러 수단을 통해 이를 길러내야 한다.

우리가 마주하게 될 사회운동들에는 이러한 요소들 중 많은 부분이 결여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우리가 기존의 투쟁에 참여하든, 바닥부터 새로운 투쟁을 건설하든, 아나키스트 혁명가로서, 그리고 정치조직으로서. 우리의 역할은 이런 요소들을 실천하고 제안하며, 방어하는 것이다. 이는 피지배계급의 일상적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런 특성들이 사회운동 속에 더 많이 자리잡을수록, 우리는 대중 권력 구축이라는 전략을 더욱 전진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일반 전략의 핵심 축인 이중조직의 문제에 도달하게 된다. 19세기 말에 기원을 두고 있는 아나키즘은 혁명적 변혁을 위한 핵심 요소로서 서로 구분되지만 상호 공생적인 두 가지 유형의 조직. 즉, 대중조직과 정치조직 (아나키스트 정치조직) 의 필요성을 주장해 온 이중조직 경향을 꾸준히 유지해 왔다.

주로 강령주의와 정향 아나키즘의 계보에 서 있는 정치조직들은 이종조직 이론과 그 실천에 있어 대중조직과 정치조직의 필요성 모두를 강조할 뿐만이 아니라, 각각 수행하는 고유한 역할과 상호관계를 분명히 한다.

우리는 일반 전략의 일환으로서, 아나키스트 활동가들이 두 유형의 조직 모두를 구축하고 강화하며 그 안에서 활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각 조직의 핵심적 특성들을 살펴보자.

대중조직은 피지배계급의 특정 주체들, 즉 노동자, 세입자, 학생, 이민자, 원주민 등이 필요로 하는 즉각적 조건을 방어하거나 개선하기 위해 결집시키는 조직이다. 상기했듯, 이런 조직은 직장의 노동조합에서부터 토지를 방어하기 위한 원주민 조직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대중조직은 가능한 한 많은 인민을 물질적 필요를 중심으로 통합하려 하기에, 대체로 혁명보다는 개량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남아프리카의 자발라자 아나키스트 공산주의 전선이 말하듯, “대중조직은 계급투쟁에 대한 총체적 비전을 요구할 필요가 없고, 자본에 맞서 싸우려는 실천적 역량과 의지만 있으면 된다.

공동의 요구를 바탕으로 많은 인민을 결집시키는 대중조직은 특정 이념이 아닌 필요에 따라 구성되기 때문에 그 내부에는 매우 다양한 관점이 공존할 수 있다. 이 관점들은 때로는 중첩, 충돌, 모순, 경쟁한다. 대중조직의 구성원들 가운데에는 민주당이나 공화당을 지지하는 인민, 음모론자, 명확한 정치적 정체성을 지니지 않은 이들, 다양한 종류의 마르크스주의자, 여성혐오자, 종교적 반동주의자, 자유주의자 등, 매우 많은 경향이 포함될 수 있다. 대중조직 내부의 이러한 이념적 다양성은 우리가 “사상의 전장”에 적극개입해야 함을 의미한다.

아나키스트들은 대중조직 내부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정치역학 속에 개입할 준비가 돼있어야 하며, 최대한 많은 인민을 우리의 사상과 실천방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개입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조직돼있어야 한다.

대중조직이 일정한 요구를 바탕으로 하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는 것과 달리, 아나키스트 정치조직은 공통 이념, 원칙, 강령을 공유하는 능동적 소수의 혁명가들로 구성된다. 정치조직은 구성원들에게 이론적·실천적 단결을 더 높은 수준으로 요구하며, 투쟁과정 속에서 고유한 역할을 수행한다.

아나키스트 정치조직이 수행하는 가장 핵심적 역할은 사회운동 내부에서의 지속적 활동이다. 활동가들은 사회운동이 뿌리내리고 있는 여러 “부문”들 가운데 하나 이상에서 조직화에 전념할 것이 요구된다. 부문이란 계급 간 투쟁이 구체적 형태로 나타나는 투쟁의 장을 의미하며, 이는 직장, 학교, 지역사회와 같은 공간들이다. 칠레의 아나키스트 호세 안토니오 구티에레즈에 따르면, 이러한 부문 내 계급투쟁은 특정한 주체들. 즉, 노동자, 학생, 세입자, 수감자 등을 통해 표현되며, 이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1. 당사자들에게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과 즉각적인 이해관계들, 여기에는 경찰의 폭력, 안전하지 못한 노동 조건, 허름한 주거환경, 투옥 등.

2. 여러 문제들과 이해관계로부터 발아한 투쟁과 조직의 전통들, 예를 들어 노동조합, 세입자 조합, 원주민 조직, 이민자 권리 조직 등.

3. 직장, 지역사회, 학교, 감옥, 보호구역 등 사회 내의 공통된 장소나 활동.

부문은 독립된 것으로 이해돼서는 안된다. 각각의 부문은 체제에 의해 형성된다. 이 부문들은 모두 상호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임대료를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은 직장에서 받는 임금과 연결되어 있고, 이는 대체로 우리의 형식적 교육 수준과 관련이 있으며, 인종, 젠더, 국적, 성적 지향 등의 문제와도 밀접히 얽혀있다.역사적으로 사회운동은 여러 부문을 서로 연결하고 동원할 수 있을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해 왔다. 1960~70년대의 민권운동과 흑인 해방운동이 대표적 사례이다. 이 운동들은 직장, 학교, 지역사회, 감옥 등 여러 공간에서의 대중조직을 포괄하며 광범위한 투쟁을 구성했다.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단지 하나의 부문에서 권력을 구축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닌, 여러 부문을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으로 결집시켜 체제에 맞서는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가 정치조직으로서 어떤 부문에 헌신할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개인적 선호가 아니라, 현재 조건에 대한 집단적 분석, 대중 권력을 구축할 수 있는 가장 큰 잠재력을 가진 투쟁의 장소에 대한 평가, 그리고 정치조직으로서의 역량에 기초한다.

장기적인 개입, 관계 형성, 원칙 있는 조직화를 통해 아나키스트 활동가들은 이러한 부문 내 대중조직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일상적 실천과 방향성에 아나키스트적 방향을 부여할 수 있다. 이 과정을 사회적 개입이라 부른다.

사회적 개입은 운동에 아나키스트적 가치, 원칙, 실천을 주입하려는 시도이지만, 우리의 강령을 타자에게 강요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창립 문건 『혁명조직의 역할』에서 밝혔듯, 혁명조직은 “투쟁 속에서 동등한 위치로서 대중운동에 참여한다… 혁명적 다원주의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혁명조직 자체가 아닌 대중운동이야말로 사회 변혁의 주체임을 인정하며, 대중운동을 지배하거나, 강요하거나, 조종하거나, 지휘하거나, 통제하려 하지 않는다”.

아나키스트 활동가들은 사회운동 내부에서 다음과 같은 세력들에 맞서는 방벽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부류들이 포함된다. 권위주의적 혁명가들, 이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지도부 자리를 차지하려 하며, 투쟁을 자신들의 정치조직으로의 모집 경로로 사용하거나, 배후에서 조종하는 전위조직의 외곽 단체로 전환시키려 한다. 개량주의자들, 이들은 운동을 체제의 범주 안에 머물도록 억제하는 경우가 많다. 반동주의자들, 이들은 우리의 운동에 물리적 위협을 가하는 존재들이다.

아나키스트 정치조직은 역사적 기억의 핵심적 원천으로도 기능한다. 이들은 기사, 책, 팸플릿, 발표, 대중 행사 등을 통해 사회적·정치적 조직들과 주요 역사적 인물 및 사건들의 성공과 실패, 모순과 통찰을 조명하며, 동시대의 활동가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전달한다.

역사적 기억을 구축하는 일은 정치 교육과 선전의 더 넓은 과업의 일부이다. 체제의 이데올로기적 토대와 해로운 문화를 전복하기 위해, 아나키스트 정치조직은 “그들의 사상, 방법, 전술을 대중적으로 가시화하고, 대중의 투쟁성, 창의성, 연대, 상호부조, 반인종주의, 국제주의, 반가부장제, 반자본주의, 반국가적 혁명문화를 대중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광범위하고 다양한 대중을 대상으로 하기 위해, 아나키스트 정치조직은 다양한 대중 교육방식과 소통 수단을 활용한다. 여기에는 접근 가능하고 시각적으로 매력적인 온·오프라인 멀티미디어 콘텐츠, 즉 오디오, 영상, 텍스트, 포스터, 스티커, 배지 등 뿐만 아니라, 사회적·정치적·문화적 행사, 독서모임, 공개 워크숍 등이 포함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인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최신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전략을 숙지해야 한다.

선전활동과 대중운동 내 사회적 개입을 넘어서, 아나키스트 정치 조직은 구성원들의 지식, 기술, 역량을 발전시키는 일에도 주력한다. 이를 위해 혁명사, 이론, 실천에 관한 내부 정치 교육과 훈련이 이루어진다.

아나키스트 정치조직은 또한 구성원들에게 정치적 공동체를 제공한다. 이 공동체는 경험을 나누고, 서로를 독려하며, 동시대의 주요 쟁점들을 토론하고 논쟁할 수 있는 공간이자, 현재의 투쟁 속에서 집단적 개입을 위한 강령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공간이다.

이러한 다양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아나키스트 정치 조직은 다음과 같은 명확한 기본 원칙들에 기반하여 구성된다:

1. 이론적 통일 : 아나키스트 정치조직은 체제의 성격, 우리가 그 자리에 세우고자 하는 사회의 형태, 그리고 현재로부터 그 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에 대한 이론적 질문들에 대해 일반적인 합의를 공유하는 활동가들로 구성된다. 이는 경직된 정치적 획일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항상 논쟁은 존재할 것이며, 조직은 통일성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그 통일성을 집단적 실천으로 전환하는 데 전념한다.

2. 전략적·전술적 통일 : 현재 조건에 대한 집단적 분석을 바탕으로, 아나키스트 정치조직의 활동은 공통된 전술과 전략에 따라 진행되며, 이는 하나의 강령으로 표현된다. 강령은 조직의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지만, 변화하는 조건에 따라 갱신되는 살아 있는 문서로 작용한다.

3. 공동책임 : 조직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높은 수준의 규율과 책임을 요구한다. 이는 서로에 대한 책임, 조직의 집단적 합의를 실천할 책임, 우리가 세계 속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가치와 원칙, 실천에 대한 책임를 포함한다.

4. 자주관리와 연방주의: 아나키스트 정치조직이 아래로부터 조직된 자주관리적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만큼, 그 조직 자체도 이러한 원칙들을 구현해야 한다. 의사결정은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며, 그 결정을 실행할 책임은 위임을 통해 구성원이나 위원회에 부여된다. 조직구조는 지역적, 지방적, 국가적 단위들로 구성되며, 공통의 이론과 실천을 토대로 연방적으로 결합한다.

5. 원칙 있는 실천: 아나키스트 정 조직의 구성원들은 이론을 일상적 실천 속에서 구현하려 노력한다. 이는 상호존중, 협력, 돌봄, 책임을 기반으로 한 동지적 문화를 형성하는 것을 포함하며, 모든 형태의 지배에 맞서는 투쟁 속에서 나타난다. 의견 차이와 갈등은 불가피하지만, 우리는 이를 집단적이고 건설적인 방식으로 완화하고 해결하고자 한다.

이러한 내적·외적 특성들은 아나키스트 정치조직이 투쟁의 불가피한 고조와 침체 속에서도 혁명적 전망과 실천을 지속할 수 있게 한다. 정치조직 없이 싸운다는 것은, “조직적 시도가 나타날 때마다 우연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며, 다양한 기치와 프로젝트 아래 활동가들을 모아 한 싸움을 위해 자원을 즉흥적으로 모은 뒤, 투쟁이 끝나면 흩어져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로 남는 것은 투쟁의 강점과 약점에 대한 분석도 없고, 싸움을 통해 형성된 관계들과 정치화의 과정이 미래의 투쟁을 위한 기반으로 발전하거나 유지되지도 않는다”.

사회적 조건과 대중운동은 우리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체제에 맞선 투쟁은 국가폭력, 억압적 정책, 급격한 경제 변화 등 예측 불가능한 요인들에 대한 반응으로 주기적으로 격화되며 터져나온다. 아나키스트 정치조직은 이러한 대중반란의 순간을 고려할 수 있을 만큼 전략적으로 유연해야 한다. 우리 조직은 이러한 격동기에 자원을 동원하고 활동가들의 힘을 결집시켜, 그 급진적 잠재력을 확장하고, 피지배계급의 입지를 강화하며, 지배계급의 입지를 최대한 약화시키고, 투쟁 이후 더 유리한 세력 균형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러한 급진화의 시기에, 가능한 많은 도시, 지역, 마을에 정치조직의 실질적 현존이 확보되어 있으면, 전개되는 사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이 훨씬 향상된다. 이러한 역사적 순간의 사회적 투쟁에 현장에서 참여하는 활동가들은, 정치 조직의 전략과 전술을 구체화할 수 있는 비판적 관점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조직은 급변하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 적응하고, 활동 중인 동지들, 특히 법적 지원이나 기타 형태의 연대를 필요로 하는 이들 포함하여 실천을 지원하기 위한 자원을 효과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현장에 활동가가 없는 경우, 우리는 뜻을 같이하는 참가자 및 조직들과의 연대를 형성하고, 사태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함으로써 반란을 가장 잘 지원할 수 있는 방식을 결정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직장, 학교, 지역사회, 보호구역, 아파트 단지 등에서 대중 권력을 천천히, 그러나 끈기 있게 구축하는 작업은, 우리가 이 같은 격변의 순간들을 더 강력한 위치에서 맞이하고,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기반을 가진 주체로서 개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러한 대중조직과 격변기 속에서의 개입 능력은 중간조직을 통해서도 촉진될 수 있다. 사회와 정치의 접점에 위치한 중간조직, 또는 “경향 그룹”이라 불리는 조직들은, 특정한 투쟁의 현장에서 전략적·정치적·강령적 지향을 공유하는 활동가들을 결집시킨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노동조합 내 좌파 성향의 조합원들을 모아 특정한 요구나 투쟁 방식을 추진하는 기층 회의체가 중간조직의 형태를 띠었다. 대중조직이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기존 조직들이 개량주의에 의해 약화된 상태일 경우, 이러한 중간조직은 특히 필요하다.

우리의 일반 전략은 세 조직 수준. 즉, 정치 조직, 중간조직, 대중조직이 상호보완적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중간조직이나 대중조직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아나키스트 정치조직은 자신이 구상하는 새로운 세계를 형성할 힘이 없다. 동시에, 아나키스트 정치조직의 전망, 전략, 전술 없이 대중운동과 중간조직들은 결국 지배 체제를 어떤 형태로든 재생산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일반 전략을 성공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각 조직 수준에서 연계와 연대를 형성하고 확장하여 우리의 힘과 효과를 증대시켜야 한다.

정치조직 수준에서는, 우리의 일반 전략과 대체로 부합하는 개인, 조직, 기관들과의 관계와 연대를 발전시키는 것이 포함된다. 여기에는 지역, 국가, 국제 차원에서 다른 아나키스트 정치조직들과의 공식적인 연대뿐 아니라, 전략적·전술적 통일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경향의 인접 조직들과의 연대도 포함될 수 있다. 또한, 공공 지식인, 출판사, 사회·문화 공간, 우리의 정치와 상당한 공통 기반을 가진 기관들과의 비공식적 관계 역시 해당된다.

중간조직 수준에서는, 자신이 속한 투쟁의 영역 안팎에 있는 다른 대중조직이나 중간조직들과의 연대를 발전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대학 캠퍼스 내의 흑인 학생조직이 원주민 학생조직과 함께 민속학 예산 증대를 위한 공동 캠페인을 전개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대중조직 수준은 일반적으로 특정한 요구와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형성되지만, 서로 다른 운동들 사이에는 수많은 접점이 존재한다. 이러한 접점에서, 아나키스트 정치조직은 운동들을 연합시키는 데 기여해야 한다. 전선, 동맹, 또는 새로운 집단 결성 등을 통해, 그리고 다양한 피지배계급 조직들이 구성하는 공동전선을 통해 대중권력을 기하급수적으로 증대시켜야 한다.

피지배계급 전선은 피지배계급의 광범위한 기반을, 그 다양성과 조직적 표현, 요구 전반에 걸쳐 결집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조직된 노동계급은 이 전선의 핵심 구성요소로 남아 있지만, 우리의 근본적 과제는 체제에 맞서 싸우는 다양한 조직된 사회운동 세력들. 즉, 추방, 구금, 차별에 맞서 싸우는 미등록 이주민들부터, 주거, 의료, 젠더 기반 폭력, 전쟁, 경찰, 생태 문제까지 다양한 투쟁들의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들이 서로 고립된 채 도달할 수 있는 변화의 한계는 분명하다. 오직 피지배계급 전선을 통해서만 우리는 체제와 혁명적 단절을 실현하고, 그 자리에 자유의지주의적 사회주의를 수립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금 이중조직의 일반 전략으로 돌아간다. 대중운동은 현존 질서와의 단절을 만드는 데 있어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지만, 정치조직은 그 운동이 목표에 미달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열쇠다. 정치조직은 우리의 시야가 사회 혁명과 사회주의적 지평을 향하도록 하고, 지배계급을 단순히 견제하는 것을 넘어 완전히 철폐하는 데까지 이르게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디엘로 트루다는 『아나키스트 총동맹의 조직적 강령』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아나키스트들은 노동 대중들이 거대한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아나키스트들은 이 가능성의 실현을 막고 억제하는 장애물을 치우기를 열망한다”.

이러한 “창조적이고 구성적인 가능성들”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과정 속에서, 수십 년간 아래로부터 구축되어온 대중권력의 제도들과 조직들은 집단적 자주관리의 항구적 기구들로 전환되어야 하며, 해방된 모든 지역에 걸쳐 아래로부터 연방화되어, 단절 이후 발생한 권력의 공백을 채워야 한다. 고(故) 후안 카를로스 메초소의 말을 빌리자면, “대중권력은 생산 수단(공장, 농지, 광산 등), 대중매체(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채널 등), 공공서비스(교통, 에너지, 위생시설, 통신 등), 의사결정 기제(연구, 과학 활동), 그리고 정치수준에서의 수단들. 즉, 집단적으로 확립된 ‘법적’ 도구들, 이데올로기 구조, 교육 계획, 다양한 문화적 표현들에 대한 통제로 구체화된다. 이 통제는 인민-집단의 것이며, 권력을 행사하는 과정과 그 시점에서 형성된 기구들과 제도들에 의해 수립된다”.

이런 의미에서, 대중권력 구축을 위한 일반 전략은 우리의 수단과 목적이 서로 부합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모든 형태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자주관리적 사회주의 사회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미래 사회질서를 반영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는 자율적이고 자주관리되는 대중운동들을 대중권력의 기관으로서 구축해야 한다.

혁명 이후 시기에 대중권력이 공고화되는 것은, 바로 이 일반 전략의 궁극적 목표이다. 혁명 이전 시기에 대중권력을 축적하는 것은,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삶의 모든 영역을 집단적이고 민주적인 통제 하에 두기 위한 것이다. 이 장기적인 과정은 피지배계급의 즉각적인 필요를 둘러싼 투쟁을 통해, 자율적인 사회운동들을 구축하고, 강화하고, 결집시키는 것을 포함한다. 이러한 운동들은 체제의 억압적 조건들과 모순 속에서 태어나지만, 그것이 곧 혁명적으로 나아감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나키스트 정치조직이 필요하며, 경우에 따라 중간조직의 지원을 받아 대중운동이 체제와의 단절, 사회혁명, 그리고 백인우월주의, 이성애중심주의적 가부장제, 정착 식민주의, 제국주의의 잿더미 위에 세워진 무국가·무계급·자주관리 사회로 나아가도록 추동해야 한다. 

자유의지주의적 사회주의를 향하여!


정세 분석: 지속적 위기의 세계

자본주의의 복합적 위기는 가속되고 있고, 이는 계급투쟁을 가본 적 없는 영역으로 몰아가고 있다.

복합적 위기

우리는 복합적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위기들은 하나씩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지난 3년간, 여러 체계적 위기들이 동시에 들이닥치며 예상치 못한 상호작용과 증폭 효과를 낳았다. 팬데믹은 공급망 붕괴와 겹쳤고, 이는 다시 인종차별적 경찰의 살인과 겹쳤으며, 전 지구적 기후 재앙, 전쟁과 제국주의적 경쟁, 통제 불가능한 인플레이션과도 겹쳐왔다. 정치 체제는 이들 위기 중 단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주요 정당들은 점점 더 우경화되고, 대법원은 극우 반동 세력에게 장악당했으며, 국정마비는 일상이 되었고, 극우는 제도적·국제적으로 그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

복합적 위기의 효과는 현재의 경향들이 어디로 향할지 예측을 더욱 어렵게 만들며, 예기치 못한 사건 하나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국면을 바꿔놓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 모든 영역에서 더 파괴적인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이러한 유동성과 예측불가능성은 지배받는 계급의 사회운동들이 극적인 전진을 빠르게 이룰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기를 맞아 우리는 유연하고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는 장기적인 목표와 전략을 견지하면서도, 새로운 위기나 기회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조직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힘의 균형

자유의지주의적 사회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보다 효과적으로 행동하고자, 블랙 로즈/로사 네그라의 구성원들은 현재의 국면, 작동 중인 세력들, 그리고 새롭게 분출되고 있는 모순들을 공동으로로 분석해 왔다. 우리는 이 시기를 정치 엘리트들이 중심 권력을 붙잡고 있는 가운데 그 정당성이 지속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시기로 인식한다. 현실적인 대안이 부재한 상황은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이는 극우 세력의 성장을 부추기고 있다. 비록 그들이 단기적으로는 일부 좌절을 겪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한편 좌파, 특히 혁명적 좌파는 전반적으로 약화되어 있으며, 비조직화되고 방향을 상실했으며 분열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피지배배계급의 조직된 세력이 그 힘을 심화하고 확장할 수 있다면,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가 열릴 수 있으리라 본다. 지금 우리는 경제, 정치, 그리고 자연 세계의 기존 규칙들이이 복합적 위기의 중압 속에서 붕괴하고 있는 새로운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이는 분명 두려운 것이지만, 이러한 체계적 붕괴와 실패는 우리가 단기간에 중대한 진전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열며, 역사의 흐름을 자유를 향해 전환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중도 정치의 붕괴

미국 지배계급의 정치적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이 중첩된 위기들에 대해 실질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양당의 합의 실패와 정부의 마비 상태는 중도정치치의 붕괴를 초래함과 동시에 하부에서의 급속한 정치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 바이든 지지자들은 인플레이션 감축 법과 같은 대표 입법 성과를 들며며 정부가 대담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해당 법안들의 실질적 내용(대부분 산업 보조금)에 비해, 유아교육의 보편화, 유급 가족휴가, 노동법 개정 등 초기에 제안되었으나 실패한 정책들을 비교해보고, 이를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규모와 대비해 보면, 왜 많은 이들이 이 정부를 '마비 상태의 정부'로 인식하는지 분명해진다.

이러한 마비의 여러 원인 중 하나는 지난 15년간 신자유주의라는 경제적 합의가 점진적으로 붕괴해 왔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를 대체할 새로운 지배계급 내 합의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팬데믹에 대응하여 정부가 경기부양 수표와 퇴거 유예 조치를 시행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동시에 인플레이션의 상승은 신자유주의 옹호자들에게 반격의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정치적 교착 상태는 국가 핵심 제도들의 정당성에 대한 심각한 위기를 야기했다. 이 위기는 주로 트럼프와 연계된 정치 행위자들이 정치 관행의 전통적 규범들을 무시하고 점점 더 범죄적 방식으로 행위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비롯된다. 가장 분명한 사례는 낙태에 대한 헌법적 보호가, 비선출되고 책임을 지지 않는 극우 인사들로 구성된 대법원에 의해 갑작스레 폐지된 사건이다. 이후인 2022년 7월, 여론조사 기관 갤럽은 미국 주요 제도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역사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고하였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통치 제도의 공허함을 명확히 인식하게 되는 가운데, 자유주의자들은 그 제도들을 방어하고 보존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민주당과 그들을 추종하는 좌파 일각은 근본적으로 결함 있고 생명력을 상실한 미국 민주주의의 수호자 역할을 자임함으로써, 오히려 자신들 또한 정당성을 상실한 세력으로 드러날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

중도 정치의 정당성과 응집력이 균열을 일으키는 가운데, 우파와 좌파 사이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연방의회 대표단 사이의 이념적 거리, 즉 공화당의 극우화에 따라 거의 일방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장기적 분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또한 미국인들이 중도에서 좌우 양쪽으로 이탈하고 있는 현상, 심지어 정치적 반대 성향을 가진 사람과는 데이트조차 하지 않겠다는 이들이 데이팅 앱에서 증가하는 현상에서도 나타난다. 이러한 양극화는 점차 지리적으로 고착화되고 있으며, 자유주의자 및 좌파들은 도시 중심지에, 보수주의자들은 외곽 및 농촌 지역에 점점 더 집중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중도 정치의 정통성이 약화되고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중도가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다. 주요한 추세가 정치적 양극화와 제도 정당성의 붕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이에 대한 작지만 실질적인 반작용도 존재한다. 새로운 시기에 대한 두려움과 불확실성은 안정감과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이는 중도 정치 세력에게 단기적인 승리를 안겨줄 수도 있다. 바이든과 민주당이 2020년 및 2022년 선거에서 승리한 것이 그 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중도는 그 내재된 모순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한, 완전한 붕괴에 직면할 위험을 안고 있다.

파시스트의 위협이 도래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지금까지 정치적 양극화는 주로 우파에게 유리하게 작용해왔다. 이는 백인 인민의 반감과 반동적 정서에 의해 추진되었으며, 공화당을 급진화시키고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기회주의자들에게 진입로를 제공하였다. 이들의 급진화를 촉진한 핵심 쟁점들에는 신체 자율성 문제, 흑인 해방을 둘러싼 투쟁, 트랜스젠더 인민의 가시성 증대, 좌파의 위협을 과장하는 담론, 미국 패권의 쇠퇴, 이민자 및 소수민족 집단에 대한 적대감,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전 세계적 우익 포퓰리즘 반동 등이 있다. 이 시기 우익 폭력은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크며, 대규모 우익 폭동, 전력망 공격, 심지어 암살 시도와 같은 불안정화 행위는 보다 강력한 권위주의 및 경찰국가적 조치를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

오스 키퍼스(Oath Keepers), 쓰리 퍼센터스(Three Percenters), 프라우드 보이즈(Proud Boys)와 같은 우익 민병대 및 거리 폭력 집단들은 진보적 시위운동에 맞서 점점 더 직접적으로 충돌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좌익세력’으로 간주하는 대상들을 위협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이는 1990년대 민병대 운동의 전성기를 떠올리게 하지만, 1979년 그린즈버러 학살과 같은 수준에는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이러한 특정 조직들이 법적·정치적 압력으로 인해 약화되거나 해산되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언제든지 재편되거나 새로운 후속 집단들이 출현할 수 있다. 패트리엇 프론트(Patriot Front)와 같은 극우 파시스트 집단들은 아직 규모가 작고 조직력도 미약하지만, 최근 텍사스 엘파소, 뉴욕 버펄로에서 발생한 사례들처럼, ‘외로운 늑대형 확률적 테러’의 가능성은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비교적 소규모이지만 조직화된 세력들의 확산에 더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은 제도권 엘리트들과의 협력이다. 예컨대 오리건 공화당 인사들은 주 의사당에서 벌어진 항의 시위에서 오스 키퍼스 및 프라우드 보이즈와 손을 잡았고, 마이애미 공화당 조직 내에서는 프라우드 보이즈가 실질적인 권력을 확보하고 있다. 오스 키퍼스 관련 유출 문건은 이 단체가 전국 각지의 지방 정치인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트럼프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들과의 유착을 적극 활용하였다. 이처럼 사회운동 기반 세력과 엘리트 행위자들 간의 가교 형성은 실질적인 파시즘 운동의 성장에 핵심적인 동력이 되고 있다.

모든 우익 반동이 그러하듯, 가부장적 젠더 규범을 강화하는 것은 그들의 정치 기획과 조직 모집 전략의 핵심이다. 개신교교 우파가 수십 년에 걸쳐 추구해 온 로 대 웨이드 판례의 폐기를 달성한 이후, 그들은 신체 자율성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에 나섰다. 동성애 권리 확대를 막는 데 실패하고 ‘결혼의 신성함’을 보존하려는 시도를 대부분 포기한 현재, 그들의 주요 공격 대상은 트랜스 및 논바이너리, 특히 트랜스 청소년이다. 트랜스 청소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 위한 수십 건의 법률이 제정되었다. 우익은 교외 지역 부모들의 불안을 자극하여, 학교에서의 ‘젠더 이데올로기’에 대한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이는 ‘비판적 인종 이론’에 대한 인종차별적 캠페인과 함께 전개되고 있다. 여성혐오적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들은 여성, 트랜스, 젠더 비순응 인민들에 대한 장기적인 폭력 유행의 새로운 얼굴마담이다다. 미국 내 여성 살해(femicide)는 그 수치가 충격적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보도되지 않는 현상이다.

제도 정치와 선거 정치의 막다른 길

극우의 기반이 확대되는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의 자유주의자 및 중도파들은 파시즘의 근본 원인—경제적 불안정과 가부장제, 백인우월주의의 결합—에 대응할 의지와 역량이 없다. 그들은 때때로 수사적 제스처를 취하긴 하지만(예컨대 바이든이 MAGA 공화당을 파시즘 세력이라 지칭한 것처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처음부터 구축한, 파시즘을 낳는 세계질서를 해체할 의지는 없다. 그들의 무능은 파시즘의 위협을 더욱 심화시킨다.

2022년 중간선거의 복합적 결과와 2024년 대선이라는 정치적 볼거리는 일터·학교·지역사회 등 현장 기반의 투쟁들로부터 자원과 관심을 빼앗아갈 가능성이 크다. 중간선거는 민주당 내 중도파의 생존력을 보여주었으나, 동시에 그 정당성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선거 결과가 의미하는 것은 분명하다. 바이든 행정부는 무기력하다. 하원은 공화당의 통제 아래에 놓였다. 플로리다의 반동적 주지사인 론 디센티스의 정치적 입지가 강화되었다. 또한 이 선거는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에 반발해 민주당에 표를 던진 유권자들로 인해, 신체 자율성을 둘러싼 향후 지속적인 투쟁 가능성을 시사하였다. 이 모든 정황은 양당 내외부에서의 더욱 격렬한 교착과 충돌을 예고하며, 사회민주주의적 선거 전략의 여지를 좁히는 반면, 독립적인 사회운동이 개입할 수 있는 틈은 더 넓어지고 있다.

불황의 줄타기

코로나19 위기 동안, 기업 소유주들과 대형 투자자들은 정부의 경기부양책과 투기적 거품을 통해 전례 없는 이윤을 챙겼다. 그들은 지금 인플레이션을 명분으로, 가능한 한 높은 가격 인상을 통해 이윤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 대가는 인민이 치르고 있다. 반면, 세계 경제는 지금 극도의 불안정 상태에 놓여 있으며, 매일같이 세계적 불황 가능성에 대한 추측과 함께 기업 및 정부 차원의 지출 축소 조짐이 보이고 있다. 특히 실리콘밸리의 기술 기업들에서는 이미 수만 명이 해고되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격동기들과 마찬가지로, 정부는 결국 “대마는 불사인” 기업들의 이윤을 인민의 복지보다 우선시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동시에, 지배계급의 경제 결정은 노동 인민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식료품, 연료, 생필품의 가격 상승은 팬데믹 발발 이후 악화된 연쇄적 위기들 가운데 또 다른 타격이다. 2022년, 물가 상승률은 임금 상승률을 훨씬 초과했으며, 이는 노동자들이 전년도보다 더 빈곤해졌음을 의미한다. 자본가들은 이것이 팬데믹이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은 외부 요인 탓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자본가 계급에 의해 의도된 결정들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불황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하나는 주요 에너지 기업들이 주도하는 가격 폭리이 정부는 이를 억제할 의지나 능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 또 하나는, 취약한 ‘적시 생산’ 물류 체계와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구조적 선택이다. 세 번째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와 각국 중앙은행이 취한 금리 인상 전략이다. 이로 인해 대출과 자금이 비싸지면서 기업들은 지출을 줄이고 노동자를 해고하게 된다.

이 전략의 명시적 목표 중 하나는 실업률을 높이고 노동계급의 경제적 협상력을 약화시켜 임금을 낮은 수준에 묶어두면서 기업 이윤을 보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이 둔화되더라도,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실질 구매력이 감소하는 현상을 계속 겪게 될 것이다. 2020년 이후 일부 임금이 상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편, 대형 투자자들의 투기와 자산 평가 행위는 미국의 모든 주요 도시에서, 심지어 러스트 벨트처럼 이전에는 덜 영향을 받았던 지역에서도, 주택 가격을 천정부지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는 팬데믹 기간 동안 폭발적으로 심화된 주거 불안 위기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퇴거 유예와 임대료 상한제와 같은 어렵게 쟁취한 양적 완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과 경제 기류 변화가 주택 시장을 얼마나 둔화시킬지, 혹은 심지어 붕괴시킬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부동산 투기꾼들이 단독주택을 대규모로 사들인 뒤 이를 임대 부동산으로 전환한 구조는 당분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2021년, 전체 주택 매매의 약 4분의 1이 투기세력력에 의해 이루어졌다.

미국 경제의 다른 영역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구조 역시 인종적, 젠더적 불평등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흑인 노동자들의 실업률은 백인의 두 배에 달하며, 많은 여성들은 팬데믹 동안 무급 돌봄노동의 수요 증가로 노동 시장에서 밀려났다. 경제 체계가 충격을 받을 때마다, 흑인, 이민자, 여성, 트랜스 노동자들은 가장 가혹한 타격을 받게 된다. 분리된 주택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노동계급 흑인 및 이민자 공동체를 위한 주택은 더 부족하고, 더 비싸며, 더 열악한 상태에 놓여 있고, 젠트리피케이션에 따른 인종 청소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수년간 과장되어 왔지만, 최근의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노동자의 삶을 급격히 재편하고 있다. 이 기술들이 현재의 경제적 국면에서 주요 요인은 아니지만, 지금은 향후 수년 간 그것들이 노동 인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노동자들이 지금 인간다운 생존권을 주장하고 확보할수록, 향후 5년 혹은 10년 내 자율주행 트럭이나 자동화 창고 시스템이 관련 산업에 가하는 피해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미국 패권의 쇠퇴

현시점에서 경제적 불안정의 많은 부분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초래한 전 세계적 파급효과에 기인한다. 이 전쟁은 또 다른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러시아가 침공의 주체라는 것은 미국이 아닌 국가가 대규모 전쟁의 주도자가 된 흔치 않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는 냉전 종식 이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미국만이 그러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시기와는 다른 국면이 열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세계 정치 질서는 훨씬 더 불안정하며, 앞으로 새로운 위기로 기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는 핵무기 사용을 운운하고 있으며, 이 전쟁이 초래하는 경제적·정치적 불안정은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국면은 미국의 대중국 태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미국 국가 전략가들은 중국을 러시아보다 더 큰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중국을 대상으로 한 선전, 정책, 무역전쟁이 강화되고 있다.

미국 패권의 쇠퇴는 결코 선형적이거나 순조로운 과정이 아니다. 그리고 현재 미국 패권이 타도된 것도 아니다. 중국 스마트폰 기업 화웨이를 붕괴시키고 러시아, 이란, 쿠바, 베네수엘라에 경제봉쇄를 가하는 모습은 미국이이 여전히 강력한 지구적 지배력을 가지고 있음을을 보여준다. 다른 국가들이 미국의 영향력에 도전하고 ‘다극 체제’를 구축하려는 시도가 계속되더라도, 미국은 자신들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할 것이다. 따라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같은 군사동맹에 대한 관심 강화, 국방예산 증대, 보다 공격적인 국제 행보 등은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 철수 이후 미국과 NATO의 대응력을 과소평가하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그러나 이 침공은 스칸디나비아와 같은 지역에서 NATO에 대한 대중적 회의론을 무너뜨렸고, NATO의 군사적 위상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럼에도 장기적으로는 미국 패권의 쇠퇴 조건들이 계속 유지될 것이다. 세계 곳곳에 영구적인 군사 주둔을 유지하는 데 따른 국내 부담, 그리고 새로운 독립적 경제권력의 부상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부담은 모든 미국 군 종에서 악화되고 있는 모집 위기에서도 확인된다. 2022년, 미 육군은 이미 낮춰놓은 연간 모집 목표를 25%나 채우지 못했다. 미군 전체에 대한 지지율은 64%로, 지난 20년 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였으며, 특히 18세~34세 연령대의 지지율 하락이 두드러진다.

체제는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아마도 가장 두려운 사실은, 지구적 기후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미 생태계의 생존을 향후 한 세기 이상 급격히 교란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세계 곳곳의 억압받는 인민들과 식민지인들이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으며, 이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더욱 악화되는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미국 전역에서는 서부 해안에서의 “연기 시즌”이 상시화되어, 독성 오염이 일으킨 폐손상으로 수십 명이 사망했다. 걸프만 지역에서는 더욱 강력하고 치명적인 허리케인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지역 농업경제를 말살할 정도의 역사적 가뭄과, 미국 전역의 풍경을 갈기갈기 찢는 대규모 산불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기후 변화가 심화됨에 따라, 이는 더 많은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위기를 촉발하게 될 것이며, 중첩된 위기의 시기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이처럼 기후 위기가 우리를 둘러싸고 펼쳐지고 있음에도, 국내외의 정치인들은 의미 있는 행동을 취하길 거부하고 있다. 최근 이집트에서 열린 COP 27 회의와 같은 국제 정상회담에서 나오는 이른바 ‘최대 성과’조차도 실질적으로는 공허한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지난 수십년간 가장 중요한 입법이었다는 “인플레이션 감축법”(2022)가 통과되기는 했지만, 이미 시작된 생태학적 재앙의 규모에 비추어보면 그 계획된 변화들은 지나치게 미미하며 향후 정치인들에 의해 쉽게 방해받을 수 있다.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은 명백하지만, 현재의 정치·경제 체제는 가장 기본적인 개혁조차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유의미한 개혁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수 년 안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재생가능 에너지와 전기차로 전환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염화 플루오린화 탄소(CFC)의 사용을 전 세계적으로 중단시켰던 1990년대의 지구적 합의와는 다르다. CFC는 오존층을 파괴하는 것이었지만, 탄소 배출은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기초에 해당한다. 지난 10년은 과학적 합의가, 화석연료의 생산-유통-소비 전 과정에서 뿌리내린 막대한 이윤에 맞설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전환에 요구되는 속도와 수조 달러에 달하는 비용은, 설령 진정한 의지가 있다 해도, 민간 부문이나 정부 어느 쪽도 제도적으로 감당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은 일부 인민들이 절망 속에서 극단적 행동에 나서도록 만들었다. 2022년, 연방대법원 정문 앞에서 분신으로 항의한 윈 브루스의 경우처럼 말이다. 현재의 기후운동은 세 가지 주요 흐름으로 분열되어 있다. 하나는 NGO 중심의 정책적 개입이고, 둘째는 멸종 반란, 선라이즈 무브먼트 등과 같이 ‘직접 행동’을 지향하며 시각적 효과를 중시하는 활동가 단체들이다. 셋째는, 직접적 영향을 받고 있는 지역의 저항 세력들(원주민 저항 운동, 도시의 환경정의 단체들, 애팔래치아 농촌 지역 화석연료에 맞서 투쟁하는 집단 등)이다.

이 가운데, 마지막 범주의 ‘지역 기반 투쟁’을 제외하면, 다른 흐름들은 기후운동을 대중조직화와 결합시키는 데 집중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오히려 대중의 시선을 끌기 위한 사진 촬영용 시위나, 의회 내부의 제한된 협상을 통해 “가능하고 현실적인” 기후 대책을 도출하려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기후 위기로 인한 대규모 이주

다가오는 수년간, 수백만 명의 인민들이 계속되는 난민 위기의 일환으로, 국제적으로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점점 더 강제로 거주지를 떠나게 될 것이다. 이미 2022년 한 해에만 미국 내에서 330만 명의 인민이 자연재해로 인해 이주를 겪었다. 지난 10년간 시리아 내전과 같은 기후에 의해 촉발된 전 세계적 위기들은 이미 대규모 난민 물결을 낳았고, 이는 지역 정치 지형을 재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전쟁과 기후 변화 모두로부터 유입되는 난민 수의 증가는, 특히 유럽에서 극우 민족주의 정당 및 운동의 부상을 촉진해온 핵심 요인 중 하나이며, 이들은 외국인혐오 및 인종차별적 긴장을 조작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기후가 점점 더 불안정해짐에 따라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더욱 새로운 요소로 등장할 것은, 미국 내에서 발생하는 ‘기후 난민’의 증가일 것이다. 화재, 홍수, 폭풍이 마을들을 파괴하고, 이어서 가뭄, 폭염, 고갈된 지하수가 농경지를 소멸시키며, 결국 해수면 상승이 해안 도시들을 잠기게 만드는 과정 속에서, 국제적 난민 수백만 명에 필적하는 규모의 국내 난민들 또한 미국 전역을 횡단하며 이동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현재 국면의 불확실성을 더욱 가중시키는 동시에, 국제주의의 필요성과 우리의 투쟁이 가지는 시급성을 다시금 분명히 드러낸다.

저항의 형태들

미국이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가운데, 좌파 또한 수십 년에 걸친 조직 해체의 위기 속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항은 언제나 존재하며, 새로운 형태의 투쟁 또한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다. 오늘날의 저항 양상들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미래에 대한 희망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노동계급 내 반란적 투쟁성 증가

팬데믹으로 인한 압박, 역사적으로 낮은 실업률, 그리고 최근의 급속한 인플레이션은 민간 부문에서의 자율적인 조직화에 기반한 노동 투쟁의 급증으로 이어졌다. 스타벅스 노동자들은 주도적으로 270개 매장의 노조 설립 운동을 벌였으며, 아마존, 트레이더 조스, REI, 치폴레, 애플 등의 작업장에서도 2022년에 노조 설립 투표가 진행되었다. 교육, 보건의료, 제조업 부문에서도 주목할 만한 성과들이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노동자들은 2,510건의 노조 설립 선거 청원을 제기하였는데, 이는 2021년에 비해 53% 증가한 수치였다. 이러한 흐름은 2022년 대중의 노조 지지율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데에서도 힘을 얻고 있다.

기존 노조 소속 노동자들 또한 한층 더 강경한 투쟁에 나서고 있다. 여러 철도 노조의 노동자들은 수 차례 합의를 거부하면서 수십 년 만에 철도 산업이 총파업 직전까지 도달했고, 상당한 양보를 이끌어내었다. 바이든이 반노동입법으로 그 성과를 잡아먹기 전까지는 말이다.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의 대규모 파업은초기의 ‘살쾡이 파업’(조합 승인 없이 진행된 파업)과, 불리한 합의안을 수용하지 않고 투쟁을 지속하려는 노동자들의 의지 덕분에 가능했다. 결국 지도부가 수용하려 했던 것보다 더 유리한 합의를 쟁취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의 노동 투쟁에서 노동조합내부의 진보적 의견그룹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철도노동자연대(Railroad Workers United)는 여러 철도노조를 아우르는 현장 노동자 네트워크로, 철도 분야 투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전미자동차노조(UAW) 내 개혁적 의견그룹인 ‘민주주의를 위한 전노동자연대’(UAWD)는 노조의 내부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데 기여해왔다. 조합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직권조인을 강행했던 지도부를 축출하는 데 성공한한 ‘민주노조를 위한 팀스터 연합’(TDU)은 UPS와의 단체교섭에서 다음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이려한 사례들은 노동자 조직과 노동운동 내 진보 정치의 확산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징후다. 그러나 미국 노동운동의 역사와, 대규모 합법주의 관료기구를 운영하는 데 따른 구조적 한계를 고려할 때, 이러한 진보적 의견그룹들이 지도부에 오를 경우 오히려 현장성과과 전투성, 민주성을 유지하지 못할 수 있음은 고려해야 한다.

대부분의 조직화는 여전히 기존 주류 노조들과 전통적인 법적 경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지만, 최근 몇 년간 주목할 만한 새로운 사례 중 하나는 아마존 노동자 자율조직인 ‘아마조니언스 유나이티드’이다. 이들은 기존 제도의 틀을 넘어서 현장 기반의 직접적 노동자 투쟁을 조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투성과 투쟁성의 징후들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현재 미국의 노조 가입률과 파업률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계급 의식과 연대의식이 광범위하게 재등장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스타벅스 조직화가 선풍같은 관심을 끌었음에도, 전체 매장의 약 3%만이 조직된 현실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먼지를 보여준다. 스태튼아일랜드 아마존 창고 노동자들은 독립노조인 아마존노동조합을 통해 성공적인 조직화 캠페인을 벌였지만, 이후 아마존에서 진행된 모든 노조 설립 투표에서서 패배했다.

이러한 낮은 조직화 수준은 반노조적 법제도의 결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노조 내부 전략의 실패이자 지난 수십 년간 피지배계급의 모든 투쟁 영역에서 집단적 행동을 약화시켜온 장기적 사회 변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최근의 흐름이 노동자 조직화를 지향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수백만 노동자들에게 계급 의식, 집단적 주체성, 조직화 수단을 제공할 수 있는 보다 심층적인 변화 없이는 진정한 질적 도약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 변화를 촉진하는 것이 바로 혁명가들이 해야 할 과제이다.

대규모 동원과 급진화. 하지만 조직되지 않은.

복합적 위기의 시대다. 그리고 그에 맞선 투쟁마저 저조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급진적 변화가 가능하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사회운동은 종종 예측 불가능하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폭발적 힘을 발휘하며 등장하곤 한다. 2020년의 조지 플로이드 항쟁이 그러한 폭발의 사례다.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사회적 봉기로, 대규모의 재산 피해가 발생하는 와중, 대중들은 그 폭도들을 지지하고 경찰을 불신했다. 이러한 역관계 속에서, 미니애폴리스와 시애틀에서는 혁명의 초기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경찰서를 비롯한 정부 건물들을 파괴하고 경찰을 몰아냈다. 이 항쟁은 수백만 인민의 의식에 변화를 일으켰고, 전 분야에서 수많은 조직화 운동을 촉발했으며, 살인 경찰을 감옥에 보냈고, 모든 조직활동가들이 경찰에 반하는 요구를 외치게 하였다.

그러나 항쟁 이후, 경찰 예산을 삭감하고 경찰 자체를 폐지하라는 요구들은 오히려 경찰 예산의 증액으로 돌아왔다. 2022년, 경찰에 의한 살인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였다. 자유민주주의가 내부의 반대자들을 다루는 전형적인 이단심문—즉, 개혁주의 정치인들이 대중의 에너지를 흡수하여 무력화하고, 억압기구가 운동 참여자들을 괴롭히고 투옥하며 살해하는—는 여전히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 이 역학은 2020년 항쟁의 진원지인 미니애폴리스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났다. 시의회는 경찰서를 해체하기로 표결했지만, 완고한 지역 자본가 계급, 적대적인 사법부, 그리고 결국 유권자들의 반대로 그 결정을 번복했다. 이처럼 항쟁의 결과로 일어난 변화들이 있었음에도, 항쟁을 촉발했던 기본 조건들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어쩌면 더 악화되었는지도 모른다. 정부가 경찰을 해체한다는 것은, 자기가 앉아 있는 나뭇가지를 스스로 자르는 것과 같으며, 그것은 아래에 시신이 얼마가 쌓이든 결코 하지 않을 일이다.

2020년 반란의 폭발, 그 이후의 깊은 침묵과 해산, 그리고 이어지는 인종주의적 반동은 오늘날 좌파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모순 중 하나를 드러낸다. 한편으로, 대중 동원과 대결을 향한 준비 상태는 명백히 존재하고 있다. 이는 단지 2020년 조지 플로이드 항쟁뿐 아니라, 2011년의 점거 운동(Occupy), 그리고 최근에는 낙태권 공격에 대응한 지역적 분노의 폭발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미국의 지배받는 계급은 여전히 거리로 나선 개별 주체로서의 동원을 넘어, 서로를 연결하고 장기적 투쟁을 지속할 수 있는 조직화의 모델을 보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투쟁에서, 우리는 방어적 캠페인을 넘어서 공세적 요구로 나아가기 위한 비전조차 갖고 있지 않다. 그 결과, 우리는 이전 투쟁 물결의 성과를 이어가지 못한 채, 항의와 탈진의 순환 속에 갇히게 된다. 행진과 동원은 계속되지만, 모두가 지칠 때쯤이면, 조직된 상태를 지속해온 지배계급의 반격에 의해 지반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 경향들이 이러한 현 국면의 중심적 특성을 만들어왔다. 그중 하나는, 집단적 투쟁에 대한 사회적 기억의 부재이다. 일부 이민자 공동체를 제외하면, 미국에서는 이러한 기억이 거의 완전히 지워졌다. 40년에 걸친 신자유주의는 우리가 우리의 힘을 어떻게 사용할지, 함께 토론하고 결정하고 행동할지를 체화한 기억을 말소해버렸다. 비영리 산업 복합체와 노조 간부 체계의 깊은 침투 또한, 지배받는 계급의 힘을 약화시키고, 어떤 ‘전문가’가 와서 계획을 세우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의식을 심어주었다. 우리가 자율적으로 투쟁을 조직하려 할 때마다, 어느 잘 자금 지원된 조직이 등장하여 우리의 초기 운동을 포섭하거나 무력화시킨다. 급진적 집단에 대한 경찰과 극우의 범죄화와 탄압은 미국 사회의 상수로 존재해왔으며, 이는 각 세대의 전투적 활동가들이 기억 상실을 반복하도록 만든다.

한편, 지난 반세기 동안 심화되어 온 개인화와 원자화는 팬데믹 이후 새로운 수준에 이르렀다. 이는 사회운동의 기초가 되는 주변 인민들과의 관계망을 약화시키며, 소셜미디어는 이러한 경향을 더욱 악화시킨다. 사용자들은 장기적인 조직운동 속에서 필요한 기술들을 배우기보다는, 각자 개별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고 느끼며 행동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북미 좌파의 잔존 세력은 전반적으로 쇠약하다. 지난 10년간 조직된 좌파의 규모와 영향력은 분명히 성장하였지만, 국제사회주의조직(ISO), 마르크스주의자 센터와 같은 혁명적 좌익 진영은 분열되고, 동원력을 상실하고, 일부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를 촉발한 외부적 압력은 팬데믹, 조지 플로이드 항쟁, 2020년 대선, 그리고 트럼프 낙선 이후라는 ‘투쟁 대상으로서의 적’이 부재하였다는 것이 포함된다. 내부적 압력은 전략적 방향의 결핍 또는 상충, 누적된 억압적 조직문화, 그리고 기층 조직과의 연결 부재로부터 비롯되었다.

미국민주사회주의자당(DSA)은 여전히 미국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좌파 조직이다. 이들은 좌파 빅 텐트 조직을 자처한다. 그들은 세입자 운동이나 노동자 조직화에 집중하는 소규모의 직접행동도 하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진보적 민주당 의원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집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극우 세력이 제도권의 규범을 노골적으로 침해하는 반동적 시대에 이러한 전략은 전혀 적절하지 않다. 그 결과 DSA는 지난 대선 기간 동안 10만 명에 가까운 최대 회원 수를 기록한 후, 꾸준히 쇠퇴하고 있다. 진입 장벽이 매우 낮은 많은 조직들처럼, DSA 또한 ‘명부상의 회원’을 실제 활동가로 전환하는 데에 고질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이 샌더스의 대선 운동이라는 중심축을 가졌을 때는 달랐지만, 그것을 상실하자 바로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정치적 양극화는 수백만 미국인들이 수십년 만에 처음오로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매력적으로 느끼게 만들어주었으며, 이는 향후 좌파가 성장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

결론

우리는 이 시대를 형성하고 있는 몇 가지 주요 경향들과 모순들을 개괄하고, 혁명가들이 현 체제와의 단절을 향해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을 모색해 보았다. 이는 단순한 학술적 연습이나 흥미로운 사실의 나열이 아니다. 백인우월주의, 이성애중심주의적 가부장제, 식민주의 등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토대를 이루는 장기 구조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현재의 변동하는 지형 위에 지도를 그려내고, 인민 권력을 구축한다는 일반 전략을 가장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적용할 방안을 결정하고자 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도출한 단기 행동 전략이, 독립적인 사회운동의 성장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우리를 자유의지주의적 사회주의로 한 걸음 더 가까이 이끌 수 있기를 바란다.


단기 전략

대중공개판

도입

현재의 정세는 자유의지적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아나키스트들에게 매우 다양한 장애물을 제시하고 있다. 생태에서 경제까지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위기들은 위협적이고 혼란스럽다. 엘리트 정치가 의미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는 상황 속에서, 정치적 양극화와 정치화는 계속되고 있다. 극우는 미국 안팎에서 그 규모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반면, 조직 좌파는 여전히 취약하고 분열되어 있으며, 혁명적 세력은 민주사회주의 정치에 가린 채 주변적 위치에 머무르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대중 투쟁의 물결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그 투쟁의 급진적 잠재력을 확대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정치적 조직들은 수십년간의 신자유주의적 타협정치에 침식되어어 왔다.

그러나 모든 것을 상실한 것은 아니다. 노동운동은 그 힘의 징후를 보여주고 있으며, 세입자들은 지역적으로, 나아가 전국적으로 조직화되고 있다. 조직된 아나키즘 역시 국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인민이 사회주의 정치에 대해 열린 자세를 보이고 있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봉기는 대중의 광범위한 급진화를 초래했으며, 경찰 폐지를 향한 문제의식을 주변에서 중심으로 가져왔고, 그 봉기의 파급효과는 모두 드러난 것도 아니다다. 대륙 전역의 원주민 영토에서 토지와 물을 수호하는 원주민 주도의 운동은 끈질기게 지속되고 있다. 신체 자율성과 LGBTQ 인민에 대한 공격에 맞선 페미니즘의 저항이 나타나고 있으며, 미국 내 주요 정치·경제 제도들에 대한 신뢰 저하는 정치의 일상성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독립적인 투쟁과 조직화 방식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장애물과 가능성의 혼재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일반 전략을 현재 조건에 맞추어 조정해야 한다. 이로부터 여러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우리는 정치 조직으로서 어떤 강점과 약점을 지니고 있는가? 단기에서 장기까지 우리의 전략적 우선순위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현재 대중 권력을 구축할 잠재력이 가장 큰 영역은 어디이며, 우리는 그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현재의 정세 속에서 중간 수준 조직들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 우리는 극우의 성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국내외에서 우리는 어떤 정치적 조직들과 동맹을 맺어야 하는가? 억압받는 계급들의 전선을 구축하여 인간의 필요, 생태, 자유, 평등, 자율적 관리, 연대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가능성을 지닌 운동은 무엇인가?

다음에서 제시할 단기전략의 틀은 우리의 총체적 전략에서 도출된 것이다. 그러나 단기전략은 총체적 전략과는 구별된다. 총체적 전략과 달리, 단기전략은 특정 기간 동안 당면한 조건들에 조응하여 도출된 것이다. 이 전략은 단기, 중기, 장기의 전략적 목표와 전술적 계획으로 구성되며, 지배체제와의 관계 속에서 현재의 정세를 분석하는 데 기반한다. 그러나 그 궁극적 목표인 사회 혁명과 자유의지적 사회주의로부터는 시선을 떼지 않는다. 이러한 방식은 우리의 수단과 목적이 일치된 상태를 유지하도록 보장한다. 우리의 단기전략은 정치 수준, 중간 조직 수준, 사회/대중 조직 수준으로 나뉘며, 각 수준에서의 전략적 목표와 전술들을 제시한다.

정치적 층위

다른 많은 혁명적 좌파 정치 조직들과 마찬가지로, 블랙 로즈 / 로사 네그라(BRRN) 역시 역량의 한계라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창립 이후 지속적인 성장기를 거친 뒤, 내부 갈등과 외부 압력의 결합은 구성원 수의 현저한 감소를 초래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내부 논의, 토론, 재구조화 과정을 거치고, 그 과정 동안 신규 가입을 일시 중단하기도 하면서 우리의의 규모는 축소되었으나, 보다 다양하면서도 통합적이고 응집력 있는 정치적 기획으로 재정비되었다. 이후 우리는 신규 구성원 및 지부의 통합을 재개하였고, 보다 견고한 기반 위에서 조직을 재건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의 강점과 약점, 그리고 현재의 정세를 고려할 때, BRRN이 정치 수준에서 설정한 전략적 목표는 다음과 같다.

미국 내 우호적 정치 조직들과의 관계를 성장시키고 강화한다.
BRRN은 과거에도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유사한 정치 조직들과 협력해온 바 있으며, 이는 공동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초정파적 협력 지향성을 입증하는 사례였다. 현재도 BRRN의 일부 구성원은 유사한 정치적 전망과 전략적 과제를 공유하는 타 조직 구성원들과 긴밀히 접촉하거나 직접 협업하고 있다.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이 미국에서 여전히 취약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가능한 한 이러한 조직들과의 관계를 확대하고 공동 실천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국제적 관계, 동맹, 연대를 확대하고 강화한다.
BRRN은 창립 이래 국제주의를 강조해왔으며, 이는 연대 캠페인에서부터 국제 회합에 대표단을 파견하는 데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구체화되어 왔다. 특히 전 세계 아나키스트 정치 조직들과의 지속적 관계는 BRRN 국제주의의 핵심 표현이었다. 이 관계들은 지난 10여 년에 걸쳐 발전해왔으며, 그 사이 조직된 아나키즘 경향은 아르헨티나, 호주, 칠레, 스페인, 프랑스, 터키, 독일 등지에서 새로운 조직들이 등장함에 따라 그 규모와 범위를 확대해 왔다. 전 세계적으로 극우 민족주의 세력이 확장되고, 기후 변화가 가속화되어 지구 전체를 위협하며, 미국의 세계 패권이 쇠퇴함에 따라 세계 질서가 불확실하고 불안정해지고 있는 이 시점에, 국제주의는 필연적인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좌파와 사회운동 내에서 조직된 아나키즘을 영향력 있는 정치 세력으로 정립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월가 점거(Occupy Wall Street)운동에 이르기까지, 아나키스트의 조직 방식과 관점은 미국 좌파 전반의 상식에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이는 아나키스트로 자처하지 않는 이들까지도 포함하였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으며, 헌신적인 아나키스트들이 수십 년에 걸쳐 최전선에서 조직하며 이뤄낸 성과였다. 그러나 점거 운동 이후, 아나키즘은 좌파와 사회운동 내에서의 영향력을 상당 부분 상실하였다. 반파시즘과 차별철폐에서 팬데믹 정점기의 상호부조 실천에 이르기까지 최근의 투쟁들 속에서 아나키즘의 흔적은 뚜렷하였으나, 혁명적 좌파는 전반적으로 민주사회주의 세력에 가려져 있는 실정이다. 2016년 버니 샌더스의 대선 도전 이후,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당(DSA)의 당원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이는 백악관을 노리는 자칭 민주사회주의자에 대한 대중의 열망에 기반한 것이었다. DSA의 급속한 성장과 영향력은 미국 좌파 상당수를 선거 정치라는 온건주의로 끌어들이며, 미국 정치 내에 사회민주주의적 흐름을 부활시켰다. 그러나 2020년 샌더스의 두 번째 대선 실패 이후, DSA는 쇠퇴기를 맞이하였다. 미국 제도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약화된 상황에서, 선거 정치와 사회민주주의 개혁에 과도하게 집중된 DSA의 접근은 반국가적이며 혁명적인 대안을 필요로 한다. 아나키즘이 과거에 지녔던 정치적 힘을 회복하고 이를 보다 확고한 기반 위에 올려놓기 위해, 우리는 이중 조직의 전통을 되살려야 한다. 아직 조직의 규모는 작지만, BRRN은 미국 전역을 포괄하며 이중 조직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유일한 아나키스트 정치 조직이다. 우리는 전국 단위에서 노련한 행동가들과 지부, 노동·세입자 운동에서의 작지만 성장 중인 존재감, 강력한 국제적 관계망, 견고한 소통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이로써 BRRN은 미국 내 조직된 아나키즘의 영향력을 확산시킬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간 층위

사회 변혁을 위한 우리의 일반 전략은 대중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대중 운동 자체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지난 40년간, 수의 대중 조직들은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의해 지속적으로 공동화되어 왔다. 이와 같은 장기적인 과정은 광범위한 소외, 개인주의, 그리고 분절화를 야기하였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대중운동을 재건하는 것은 조직된 아나키스트와 다른 혁명가들이 마주하고 있는 핵심적 과업이다. 사회혁명은 오직 대중조직 내에서, 그리고 대중조직을 통해서만가능하기 때문이이다.

한편, 현재 존재하는 소수의 대중운동들조차 비영리단체와 노동조합 관료주의라는 개혁주의적 핵심 세력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중간 층위위의 조직은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동원과 비동원의 순환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사회혁명을 향한 투쟁을 진전시킬 수 있는 전투적 대중조직을 구축하는 데 있어 가교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BRRN의 중간 층위위 전략 지향점은 다음과 같다.

노동계급 부모들의 필요에 뿌리내린 중간 층위의 페미니즘 조직을 구축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노동계급 부모들이 오래전부터 직면해 온 다양한 문제들을 선명히 드러냈다. 학교가 원격수업으로 전환되고 보육시설이 문을 닫자, 많은 부모들은 임금노동과 자녀 양육이라는 무임금노동을 동시에 감당해야 했다. 여기에 더해, 인플레이션이 고조되며 보육비 역시 급등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부모들이 '비판적 인종이론(CRT)'과 이른바 '젠더 이데올로기'라는 허구적 적에 대한 반동적 반발에 맞닥뜨리고 있다. 특히 후자는 국가 기관과 거리에서 펼쳐지는 극우 세력의 이성애중심주의적 가부장제 공격의 일환이며, 이는 신체 자율성과 트랜스 인민을 주요 타겟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공격은 강력한 페미니즘적 반격을 요구한다. 그러나 미국의 페미니즘 운동은 아직 이에 걸맞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민주당과의 제약적 관계, 그리고 비영리단체들이 페미니즘 운동의 중심에 과도하게 자리 잡고 있는 구조는, 기존 체제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지속시킬 수 있는 운동의 역량을 약화시키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BRRN은 창립 이래, 계급투쟁, 반인종주의, 국제주의에 기반한 아래로부터의 페미니즘을 일관되게 지지해왔다. 더불어 BRRN은 창립 초기부터 적지 않은 수의 부모 구성원을 포함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앞서 언급한 과제들과 일상적으로 씨름하고 있다. 이 문제들은 학교, 지역사회, 일터 등 BRRN 활동가들이 활약하는 다양한 영역들을 가로지르며 존재하고 있으며, 억압받는 계급들의 전선을 구축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의제로 작용할 수 있다.

노동조합 관료주의와 정당으로부터 독립된 중간 수준의 현장 노동자 조직을 구축, 확장, 고양한다.
최근 노동 현장에서의 조직화 상승세는 노동운동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활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분명 긍정적인 변화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혁명적 잠재력을 가로막는 주요 장애물 중 하나는,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노동조합 관료주의와 민주당과의 유착이다. 조합원들의 자신감, 역량, 참여 수준을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현장 안팎에서 노동자 스스로가 통제하는 독립 조직이 필요하다. 직접민주주의, 직접행동, 연대에 뿌리 내린 이러한한 조직은 더 나은 노동조건을 쟁취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노동자 자주관리의 기반을 마련하며, 지배체제에 실질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핵심적 수단으로 작동할 것이다.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규모를 확장해 나간다면, 독립적인 현장 중심 조직—현장 위원회, 조합 내 의견그룹, 지역 및 산업 단위의 노동자 총회 등—은 산업 내외에서 보다 광범위한 투쟁을 감당할 수 있는 관계망과 역량을 갖추게 될 것이다. 철도노동자연합, 아마조니언스 유나티드), 그리고 K–12 교사 네트워크 내의 평교사 의견그룹 연합 등은 이러한 조직 유형의 사례들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조직들은 아래로부터의 폭넓은 기반을 바탕으로 오늘날 노동운동을 지배하고 있는 서비스 중심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조합주의를 대체할 수 있으며, 자본과 지배체제 전반에 맞선 계급투쟁적 노동조합주의로의 전환을 이끌어낼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더불어, 현장 중심 조직은 산업과 지역 내 하위 차원에서 노동자들의 힘을 공고히 하며, 자원 공유 및 행동의 조율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사회적/대중적 층위

대중조직화 수준이 낮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중 권력을 구축할 가능성을 지닌 투쟁의 현장들이 존재한다. 우리의 일반 전략에 따르면, 대중 권력의 구축은 대중운동의 주체성과, 그 기층의 공통된 필요에 기반한 다양한 개혁적 투쟁을 포함한다. 이러한 개혁을 어떻게달성할지지,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대중조직이 어떠한 특성을 지니는가 또한 우리의 전략에서 핵심적 요소로 간주되어야 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실천 방식과 조직 형태는 다음과 같다. 직접행동, 직접민주주의, 연대, 전투성, 계급투쟁과 계급적 독립성, 자율적 관리, 국제주의, 그리고 혁명적 문화. 이러한 실천을 통해 운동은 인민 권력을 발전시켜 나간다.

현재의 정세와 우리 자신의 역량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바탕으로, 우리는 일터, 지역사회, 학교, 구금 시설을 향후 인민 권력 구축의 주요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특히 일터지역사회(특히 세입자 조합)를 우선순위에 두며, 장기적으로는 다른 영역으로 점차 확대해 나갈 것이다.

전략적 산업 내 현장 수준 조직화에 헌신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전투적인 아나키스트 소수파를 발전시키고 확대한다 

노동운동의 재활성화를 위한 현재의 노력에서 빠져 있는 핵심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전투적 소수파이다. 이는 이전의 대규모 노동 분출 시기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경험과 헌신, 비전을 갖춘 노동계급의 일단이다. 미국의 전투적 소수파는 항상 정치적으로 다양했으며, 아나키스트에서 트로츠키주의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급진좌파가 포함되어 왔다. 그러나 노동운동 내 특정 정치경향의 영향력은 그들이 구축한 정치 조직화 수준에 따라 좌우되어 왔다. 1930년대 공산당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아나키스트와 생디칼리스트는 19세기 말부터 미국에서 IWW를 중심으로 전투적 소수파의 일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정치 조직의 부재는 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에 장애로 작용해 왔다. 최근 DSA의 성장으로 인해, 노동운동 내에서 보다 개혁적 성향의 전투적 소수파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BRRN은 아나키스트 전투적 소수파의 형성을 촉진해야 한다.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을 조직하되, 독립노조를 우선시한다.
최근 몇 년간 노동조합 조직화가 증가하고 있으나, 여전히 미국 노동자의 약 90%는 조직화되어 있지 않다.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전체 조합원 중 절반 이상이 단 7개 주에 집중되어 있으며, 뉴욕과 캘리포니아가 가장 많은 조합원을 보유하고 있고, 하와이는 조합 비율이 가장 높은 주이다. 반면, 남부 지역 노동자들은 심각할 정도로 조직되지 않은 상태이며, 조합 조직률이 가장 낮은 20개 주 중 12개가 남부에 위치해 있다. 이는 기존 노조 내부와 외부에서 독립적이고 전투적인 노동자 조직이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넓은 투쟁 지대를 형성한다. 전국적으로, 계급투쟁을 지향하는 독립노조에 참여할 수 있는 실질적 선택지는 거의 없으며, 현재로선 IWW와 UE만이 전국 차원에서 이러한 원칙을 고수하고 있으며, ILWU는 서해안에서 유사한 원칙과 실천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조직화 대상 노조의 선정은, 조직 대상 현장의 구체 조건과 해당 노조의 지역적·국지적·전국적 수준에서의 평가를 토대로 판단되어야 한다.

세입자 조직화에 관한 자유의지주의적 사회주의 이론을 발전시키고, 역사와 기반을 구축한다.
다른 모든 영역과 마찬가지로, 세입자 운동 내부에도 여러 정치 경향들이 영향력과 조직 통제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이 운동 또한 예외가 아니며, 일부 마르크스-레닌주의 조직은 ‘자율적 세입자 조합 네트워크(ATUN)’의 장악을 목표로 체계적인 개입을 시도하고 있다. 이전 임대 위기 시기 동안, 아나키스트들은 연대 네트워크를 통해 이 분야에 새로운 길을 열었지만, 최근 위기 국면에서는 동등한 수준의 혁신과 주도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자율적 세입자 조합 네트워크(ATUN)를 성장시키고 강화한다.
생활비 상승과 주거환경 악화가 맞물리며, 미국 전역에서 세입자 운동이 성장하고 있다. 이 새로운 운동은 코로나19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지만, 팬데믹은 ‘주거권 보장’과 무책임한 임대인, 탐욕스러운 개발업자에 대한 대응을 공적 담론과 정치의 중심 의제로 밀어올렸다. 이 흐름의 선두에 선 것은 바로 ATUN이다. 현재 ATUN은 두 개국 이상에서 30개가 넘는 세입자 조합들을 연결하며, 투쟁을 지속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교훈, 전략, 전술, 자원을 공유하고 있다. 나아가, 이 독립 대중조직은 반자본주의적 비전을 중심에 두고 있으며, 세입자-임대인 관계를 폐기하고, 세입자의 지역사회와 도시를 급진적 민주주의로 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자립적이고 노숙자와 점거자까지 포괄하는 세입자 조직화 전략은 오늘날 인민 권력을 구축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횡단적 의제와 다부문 연합 투쟁을 대중조직 내에서 시작한다.
미국에서 사회 변화를 위한 기본 모델은 단일 이슈 중심의 비영리단체 캠페인과 제한적인 개혁 요구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투쟁적 사회운동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분절적이고 NGO 중심의 실천 양식을 돌파해야 한다. 이는 성차별, 인종차별, 생태 문제 등에 대한 투쟁의 주체를 소수의 전문화된 활동가 집단이 아닌, 구성원의 다면적 물질적 필요를 바탕으로 기반을 구축하는 열린 대중조직으로 이동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다양한 투쟁 간 연대를 구축하고, 이를 광범위한 사회주의 정치 프로젝트의 일부로 조직해 나가는 과제를 포함한다.

우리는 특정 영역에서의 조직화에 집중하고 있지만, 모든 투쟁의 장은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전체 지배체제의 구조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인종, 계급, 젠더, 국적을 따라 작동하는 지배의 관계·구조·기제는 사회 전반을 관통하며, 이는 우리의 일터, 지역사회, 학교, 삶의 모든 영역에서 다층적으로 표현된다. 이에 따라 각 영역을 상호 연관성 속에서, 그리고 전체 지배체제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는 다부문·횡단적 조직화 접근이 요구된다. 이러한 접근은 다양한 투쟁의 장을 하나로 연결하는 공통된 요구를 제기하며 대중운동의 통합을 도모한다. 예컨대, 신체 자율성 수호를 위해 노동조합, 학생조직, 지역 주민 총회가 공동 행동에 나서는 사례처럼 말이다. 신체 자율성 문제가 각 집단에 미치는 정도는 다를 수 있지만, 이들은 하나의 공통된 투쟁이라는 인식을 공유할 수 있다.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 생태 문제는 모든 부문에 걸쳐 존재하기에, 이는 피억압계급 전선을 구축할 수 있는 중요한 접점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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