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바르셀로나의 <티에라 이 리베르타드>지 1934년 4월 27호와 5월 4일호에 게제된 서한이다.
1934년 4월 27일의 서한문
이 글은 네스토르 마흐노 동지가 보내온 서한입니다. 동지가 우크라이나에서 보여준 반란의 행동은 너무도 유명해서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요. 프랑스에 망명중인 마흐노 동지는 몇 달 전 스페인 혁명에 관한 글 몇 줄을 보내왔습니다. 이 글은 마흐노 동지의 투쟁의 경험 중 스페인의 아나키스트들이 가슴에 품어둘 만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다음 호에는 이 글에 대한 후속 서한이 담길 예정입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스페인 혁명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압력과 입헌군주제를 최종적으로 포기하고 공화국을 지지하기로 결정한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의 의지라는 두 조건 속에서 그 성격을 형성하였다.
스페인 혁명은 왕과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 사이에서 맺어진, 대중에게는 은폐되어 있는 신성한 타협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가 지방선거에서 왕당파들에게 승리한 뒤, 그들은 자신들이 정치적인 우위를 확보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그들은 군대에 압력을 가했고, 알폰소 13세는 겁먹었다. 왕당파들이 부르주아지와 벌인 협상의 결과로, 알폰소 13세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어떠한 처벌도 없이 국외로 망명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궁정 전원과 사치스러운 재산까지 챙겨 떠날 수 있었다. 복위의 권리와 후계자를 지명할 권리를 포기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가 왕을 인민의 정의로부터 구해내어 다른 국가로 옮긴 것은, 그 왕이 장차 자신들에게 쓸모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인민이 부르주아지가 허락한 것보다 더 많은 자유를 요구하는 순간, 부르주아지는 왕을 꺼내어 인민을 겁주었으리라.
그리고 부르주아지의 계산은 정확했다. 스페인 자유주의의 지도자들은 러시아 혁명의 경험을 통해 러시아의 자유주의자들이 저지른 오류를 명확히 인지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노동인민을 더 이상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자유주의자들은 수 세기 동안 스페인에 누적된 예속의 원리를 충실히 지켜내고 있다.
지금까지의 예속의 원리는 왕과 그 궁정, 그리고 왕의 충신들에게 복무하는 원리였다. 그리고 그 궁정 로망스 속에서 인민은 어떠한 자리도 차지하지 못했다. 왕과 궁정 신하들의 호화로운 삶은 바로 그 인민의 희생 위에 놓인 것이었음에도 말이다. 하지만 자유주의자들은 파렴치하게도 다시 그 인민들에게 호소한다. 더욱 파렴치하게도, 그들이 왕의 망명을 놓고 왕당파와 협상을 끝내 놓은 후에 말이다.
하나를 물을 수밖에 없다. 부르주아지들이 왕을 보내줄 때, 스스로가 인민의 진정한 벗이라 주장하던 온갖 경향의 혁명가들은 어디에 있는가? 왕의 암살을 그토록 여러 차례 조직했던 이들은 어디로 갔는가? 스페인의 투사들을 영웅적 행동으로 밀어붙였던 사상은 식어버린 것인가?
당시 그러한 인물들이 부재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들이 자유주의자들과 야합하여 왕을 보내주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정합하는 설명은 하나뿐이다. 스페인의 혁명가들은 왕정이 끝나고 언론의 자유와 단결의 자유를 확보한 뒤, 그들의 모든 역량을 집결하고 실천행동의 방안을 고민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 회합은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가? 우리는 그 흔적을 발현할 수 없다. 사회주의자들은 자유주의 진영에 복무하고 있다. 조합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보아 더 좋은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 하다. 볼셰비키들은 언제나처럼 가두 시위만으로 만족하면서 노동인민에게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자유주의자들은 더욱 대담해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당과 정부에 ‘강력한 통치’와 ‘질서회복’으로 나아갈 것을 공공연하게 지시하고 있다.
자유주의자들이 스페인 혁명에서 바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들은 지체없이 국가의 모든 역량을(물론, 그들의 계급적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스페인 국가의 생명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
이렇게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들은 권력의 정점에 올라섰고, 스페인 국가에 새로운 족쇄를 채우고 있다. 이들은 소위 극단주의자들이 인민의 봉기를 조직하여 자신들에게 맞서는 순간, 사회주의자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그 봉기를 분쇄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기에, 이 모든 일을 안심하고 추진하고 있다.
결국,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들나 그들의 정부는 볼셰비키의 가두투쟁이나 조합주의자들의 총파업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이다. 스페인 전역에서 혁명적 조합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이 그토록 총파업을 부르짖고, 때로 그 파장이 매우 크게 감지됨에도, 그 총파업은 언제나 패배로 끝나고 말게 된 것이다.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의 지도자들은 자기 계급의 안위를 굳건히 수호하고 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민첩하고 전술적으로 교활하다. 그들은 항상 자기 힘을 정확히 가늠하여 적의 힘과 비교하면서, 가장 위험한 좌익에 맞서 자신의 위치를 판단한다. 그리고 그 덕분에 부르주아지는 자기 적들을 상대로 언제, 어느 정도로 무력을 투입할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
반면 좌파의 지도부는 부르주아지가 이 나라에 수립하는 체제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아차리기를 거부하고 있다. 좌파 전선 전체에는 일종의 혼란이 존재한다. 이 혼란은 좌파의 지도부가 계급 운동 내에서 직분을 맡고 있으면서도, 그 직분을 감당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결의도 되어있지 않으며 그를 위한 품성도 갖추고 있지 못하거나, 혹은 그들이 대중은 국가의 지시와 감독 없이 자기 사상을 실현할 능력이 없다고 믿는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멀리에서 본 것만으로 사태를 명확히 규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좌파 대오 내부의 혼란은 분명하며, 『30인의 선언』1931년 8월, CNT의 주요 활동가 30명이 연명하여 배포한 입장문. 이 입장문에 연명한 이들과 그 계파를 ‘트레인티스타’라고 부른다. 이들은 혁명을 소수 혁명가의 즉흥적 봉기로 환원하는 경향을 비판했다. 그러나 이 선언의 본질은 혁명적 대중행동의 재구성이 아니라 그 억제에 있는 가능주의적 후퇴였다. 이들은 노동자 대중의 직접행동과 혁명적 자기조직을 발전시키는 대신, 이를 CNT의 신중한 통제와 합법적 가능성의 한계 안에 묶어두려 했다. 결국 이 문서는 혁명을 조직 보위·합법주의·타협주의로 축소한 개량주의적 조합주의의 표현이자 역사적으로 스페인 아나키즘적 조합주의 내부에서 우경화, 합법주의, 조합 관료주의가 이론적 형태를 얻은 문서인 것이다.이 등장하였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를 입증하고 있다.
그 선언에 연명한 자들은 분명 고참 활동가들이며 선량한 투사들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혁명적 기획에는 더욱 치명적이다. 특히 스페인 혁명에는 정해진 실천 노선도 부재하고, 사회적 행동의 수단도 불충분하여 굉장히 무력한 상태이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스페인 혁명이 부르주아지나 볼셰비키의 방해를 돌파하고,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진득히 걸어나갈 필요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혁명은 더욱 무력해질 것이다.
2부
그리고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주장하고자 한다. 스페인 혁명에는 직접행동의 노선이 부재하고, 사회적 행동에 필요한 수단도 부재하기에, 서른명의 동지들이 저 선언을 발표한 것이다. 『30인의 선언』이 일부 동지들의 일탈과 타락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기에, 내일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혁명의 전선은 더 좁아지고, 혁명은 더 고통받을 것이다.
부르주아지가 결국 혁명을 탈취할 가능성은, 전제주의자들의 노골적인 반혁명이 더욱 강해질 가능성은 분명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때에는, 진정으로 혁명의 전선을 구축하고 혁명적 승리의 확대를 위해 나아가기에는 너무 늦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하지만. 스페인의 노동대중이 아직 지치지 않고 자유와 안녕을 쟁취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아직 품고 있는한. 자유주의 부르주아들이 아직은 눈치를 보며 스스로를 좌익이라 선언하며 민주공화국과 노동자공화국 사이에서 간을 보고 있는 한. 혁명을 강화하고 그 결실을 성장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많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하다. 이러한 결말은 최대의 노력 위에서만 얻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노력은 고립된 개인이나 집단의 노력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전술적으로 긴밀하게 단결한 기층 노동대중의 노력이어야 한다.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명확히 인지하고, 그 실현을 위해 자신의 모든 역량을 투하하는 노동자들의 노력이어야 한다.
우리 아나키스트들은 아직 집단적 행동에 익숙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우리의 실천은 산발적이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우리는 어떠한 혁명에서도 영향력을 가지지 못했고, 대중을 우리의 편으로 포섭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우리 아나키스트 혁명가들을 향한 시대적 요구가 무엇인지는 명확하다. 우리는 기존의 접근방식을 포기하여야 한다. 우리의 역량을 조직하고, 노동대중을 조직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행동을 통해 노동대중이 부르주아 자본주의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을 만큼 그들을 무장시켜야 한다. 이 투쟁에서 노동대중이 승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지금까지의 아나키스트들은 이러한 사유를 하지 못했고, 그 후과는 러시아 혁명에서 아나키스트들에게 막대한 손실로 다가왔다. 그리고 스페인 혁명에서도 마찬가지의 상황이 관측되고 있다.
스페인의 혁명적 상황에서, 아나키스트들은 좌익 진영에서 우세를 점하고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스페인 아나키즘의 가장 훌륭한 투사들조차 마음이 흔들렸으리라. 하지만 우리는 스페인에서 아나키즘의 혼란이라는 오류를 반복하고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다.
스페인에서 아나키즘 운동은 다시는 오지 않을 역사적인 기회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대오 안에 생기는 균열을 지켜만 보고 있다 .아나키즘 운동 전체가 당대의 요구에 맞추어 최대한의 노력으로 집단적 주도권을 확보하고, 노동계급을 조직하고, 생산의 자주관리를 조직하고, 혁명방위위원회를 건설함으로서 스페인을 관료제의 억압과 경제적 착취와 정신적 예속에서 신속히 해방해야 하는 바로 이 시점에 말이다.
만약 아나키스트 진영이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스페인은 국가와 교회, 금융자본의 감시와 감독 없이, 자유로운 사회라는 새로운 질서와 완전히 새로운 삶을 건설해낼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스페인 인민대중은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다. 대중은 여전히 자신이 혁명의 진로를 설정할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여긴다. 스페인 인민은 여전히 부르주아지의 질서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가 되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혁명적 아나키스트들은 ‘통일전선’이나 미래에 관한 추상론 따위에 마음을 두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혁명의 전위로서 어느 정도의 역량을 가졌는지에 대해 가늠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살아 움직이는 힘으로서, 현재를 바라보며 활동해야 한다. 우리의 잠재적 지지자들이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고, 평범한 노동대중 역시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간명한 실천의 강령이 필요하다.
그 강령에서 아나키스트들은 모든 생산수단이 노동기반 사회에 속하며, 노동조합의 관리 아래에 놓여야 함을, 모든 토지는 농민의 조직, 코뮌, 그리고 그 연합체들이 관리하여야 함을, 금융과 교육 등 사회생횔의 제반 영역들 역시 국가권력에서 벗어난 노동자의 결사체에 속해야 함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
아나키스트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선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공화주의적 착취의 체계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리는 부르주아지에게서 토지, 공장, 광산, 운송수단을 몰수해야 한다. 부르주아지가 이에 맞서 저항할 때에 조차, 그들이 자신의 재산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방어할 수밖에 없도록 내몰아야 한다.
조직되고 타협없는 투쟁만이 혁명적 노동자의 다수를 아나키스트의 궤도 안으로 끌어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의 방관자도, 트레인티스타도, 그 추종자들도 남지 않을 것이다. 혁명의 역량이 아나키즘으로 이끌리고, 아나키스트 조직의 전략에 따라 움직일 때, 비로소 혁명은 부르주아지와 그들의 정부, 그리고 그 앞잡이들의 요새를 공격할 것이다.
노동인민은 승리할 것이다. 그리고 자유로운 노동에 기초한 자유와 평등이라는 우리의 오래된 꿈은 실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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