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아나키즘의 상관관계 : 아나키스트 조직에서 게임이 갖는 전략적 잠재력 (Liza — Plataforma Anarquista de Madrid의 돈 디에고 라 베가)

사회전쟁의 시대에 그리는 유희적 지도들

위기가 상시화된 것 처럼 보이는 이 세상에서 혁명전략을 발전시키는 일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시급한 과제다. 정치적 행동, 특히 아나키스트 관점에서의 정치적 행동은 의지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역사적 국면에 대한 구체적 독해, 집단적 교육, 이념 토론, 전술적 예행연습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뜻밖의 것이 주목받고 있다. 게임이다. 게임은 단순한 여가활동이나 대안적 사회공간을 넘어, 사상을 시험하고 복합적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며, 효과적으로 도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는 전략적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크리에이터 조니 해리스의 영상인「미국은 게임을 하며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가?」를 보게 된 뒤 문득 떠올랐다.그 영상에서 그는 미군과 민간 자문가들이 현실의 전략적 시나리오를 검토하기 위해 전쟁 시뮬레이션, 그러니까 보드게임과 롤플레잉 게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보여준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는 가상 시나리오가 그 예시다. 깊은 몰입을 요구하는 이 경험은 게임이 불확실한 조건 속에서 성찰, 분석, 의사결정 과정을 어떻게 활성화하는지 보여준다. 게임은 그저 오락에 그치지 않고, 전략적 학교가 된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가 분쟁대비를 위해 게임을 쓴다면 우리라고 혁명적 관점에서 못할 이유는 또 뭔가? 우리 삶을 방어하고,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혁하기 위하여.


이해하기 위해 시뮬레이션하기 : 롤플레잉에서 이념적 예행연습으로

롤플레잉 게임은 특히 중요하다. 롤플레잉 게임은 규칙이 있는 서사 속에서 각 플레이어가 하나의 역할을 맡는, 구조화된 상상력의 집단적 훈련이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적 형태에서의 롤플레잉 게임은 전술적·이념적 예행연습 공간이 된다. 어떤 특정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적대적인 정치적 입장들을 나타내며, 허구 속 논쟁에서 방어나 해체를 맡는 것은 단순한 학습을 넘어선 투쟁을 훈련하는 길이다.

예를 들어보자. 아나키스트들이 개량주의 정당, NGO, 관료화된 노동조합, 심지어 국가권력 자체와 상호작용하는 지역 총회를 구현하는 롤플레잉 게임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목표는 분명하다. 대책 없는 순수주의에도, 무조건적인 양보도 하지 않으며 아나키스트 입장을 방어하는 것이다. 이런 류 게임에서 실수는 직접적 대가를 치르지는 않는다. 대신, 실수를 가르칠 수는 있다. 이 점이 게임을 강력한 교육적 기재로 만든다.

이런 경험들은 정향 아나키스트가 정향 아나키스트 조직 내부 이념교육에 부여하는 중요성과 맞닿아잇다. 중요한 것은 단지 이론을 학습하는 것을 넘어서 복합적 맥락 속 이념을 어떻게 적용하는가, 에 있다. 롤플레잉은 여기에 필수적 층위를 도입한다. 상황 속 이념적 예행연습을.


봉기의 보드판 : 체현된 자율

「Bloc by Bloc: The Insurrection Game」, 「Autonomía Zapatista」, 「La Batalla de Can Vies」같은 게임들이 이런 전제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실제 사회적 투쟁을 시뮬레이션하고 이로부터 배우기 위하여 말이다. 「Bloc by Bloc: The Insurrection Game」에서 각 플레이어는 도심 내 봉기에 참여하는 하나의 집단을 대표한다. 협동, 지역 방어, 인민권력의 건설, 국가탄압의 상시적 위협은 이 게임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이런 류의 게임은 우리가 방어전술을 훈련하고 지역통제의 중요성을 이해하도록 하며, 서로 다른 정치집단 사이의 결합 방식을 토론할 수 있도록 한다.

이 게임들이 반권위주의 활동가 집단 내에서 만들어지거나 확산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역사적 경험을 정치교육으로 가득 찬 유희적 메커니즘으로 만드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Autonomía Zapatista」는 플레이어들이 치아파스에서 자유지구를 건설하는 과정을 겪도록 한다. 플레이어들은 저강도 분쟁 속 삶을 지속하고 총회를 조직하며, 식량을 확보하고 공동체를 방어하며, 교육을 수행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한다. 바르셀로나 자주관리 지구 방어투쟁에서 영감을 받은 「La Batalla de Can Vies」는 플레이어가 자율적인 도심 내 저항세력 사이에서 집단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입장에 놓인다.

이 게임들이 실천 자체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를 실천 그 자체와 비교할 수는 있다. 그리고 혁명전략의 틀 안에서 이는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게임들은 실천을 대체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를 실천에 대비시킬 수는 있다. 그리고 혁명전략의 틀 안에서, 그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병법의 재발명 : 자유의지주의적 전술과 군사게임

자유의지주의 좌파들은 국가적 형태의 군사주의나 레닌주의적 군사주의에 정당한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전술적 성찰까지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불가리아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자 연방의 경험이나 스페인 혁명기의 무장투쟁, 우루과이의 fAu가 보여주듯이, 전투는 자유의지주의적 윤리를 포기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군사적 충돌을 시뮬레이션하는, 특히 게릴라와 정규군의 충돌같이 비대칭 시나리오를 다루는 게임은 병참, 기동, 후퇴 거점, 기반시설 사보타주, 지역 방어를 상상하는 데에 활용할 수 있다. 「Twilight Struggle」같은 고전게임이나 워게임을 아나키스트적으로 각색하여 자체 제작한 게임들도 인민투쟁의 맥락에 맞게 조정된다면 이런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전쟁을 찬양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적대적 조건 속에서 운동이 생존하고 저항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자는 의미다.


아래로부터의 지정학 : 집권 없는 권력 사유하기

지정학 시뮬레이션 게임 또한 눈여겨볼 만 하다. 「Risk」,  「Twilight Struggle」, 「Europa Universalis」처럼 더 복잡한 게임들은 강력한 행위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국가 간 정치가 어떤 논리에 지배되는지, 어떤 요인들이 권력의 부상과 몰락을 낳는지 관찰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게임들 자체는 국가중심적이지만, 저항하는 인민이 맞서야 하는 논리들을 이해하기 위해 비판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동시에 대규모 수평적 조직 내에서 의사결정을 예행연습하도록 각색할 수도 있다. 2,000명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관료화되지 않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두 자율적인 지역이 서로 충돌할 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회운동들 사이 외교는 어떤 역할을 수행할까? 이런 질문들이 유희적 시나리오 속에서 극화되고 토론되고 해결될 수 있으며, 이후 현실 전략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시뮬레이션에서 인민권력의 예행연습으로

핵심은 게임 그 자체가 아니라 게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있다. 예행연습으로서의 게임, 학습으로서의 게임, 활동가 교육으로서의 게임 등. fAu는 정향 조직은 이념, 강령, 전술, 혁명적 윤리를 결합하는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고 이른 바 있다. 게임은 그 결합에 기여할 수 있다.

사회운동이 불안정성, 고립, 탄압, 포섭에 포위된 이 시대에 압박 없이 배우고, 사고하고, 토론하고, 전망할 수 있게 해주는 유희적 공간을 창출하는 것은 핵심적 전략이 될 수 있다. 혁명놀이를 하는 것이 아닌, 혁명을 준비하기 위해 게임을 하자는 의미이다.

핵심은 게임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예행연습으로서의 게임, 학습 공간으로서의 게임, 활동가 교육으로서의 게임. FAU가 말하듯, 정향 조직은 이념, 강령, 전술, 혁명적 윤리를 결합하는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 게임은 바로 그 결합에 기여할 수 있다.

사회운동이 불안정성, 고립, 탄압, 포섭에 포위된 시대에, 즉각성의 압박 없이 배우고, 사고하고, 토론하고, 전망할 수 있게 해주는 유희적 공간을 창출하는 일은 핵심 전략이 될 수 있다. 이것은 혁명 놀이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혁명을 준비하기 위해 게임을 하자는 것이다.


구조화된 상상으로서의 혁명

아나키즘은 언제나 행동의 교육론이었음과 동시에 상상력의 철학이었다. 자유로운 사회를 상상하는 공상적인 행위가 아니다. 전략적 필수조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은 우리에게 지도, 시뮬레이션, 예행연습의 장과 이를 위한 서사들을 제공해준다.

이제 정향 아나키스트 조직이 이를 체계적으로 도입해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다. 오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역사적 사명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게임은 전략, 반란, 준비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바쿠닌이 말했듯, “파괴를 향한 열정은 창조적 열정이다.” 그리고 모든 모든 창조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상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게임은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아나키즘에서 이는 곧, 진지하게 노는 것이다.


유희성을 받아들이며 가능한 세계를 상상하기

사회운동과 해방적 실천을 위해 설계된 게임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해온 이들 가운데 Gall Negre와 Outlandish Games 같은 이들이 특히 두드러진다. 이들이 만든 작품들은 창의성, 역사적 기억, 인민교육을 결합하고 있다. 「Okupa tu També」, 「Bloc by Bloc」, 「La Batalla de Can Vies」를 비롯한 여러 게임들은 그저 유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교육, 훈련, 사고에 있어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준다. 시장논리가 아니라 정치적 필요에 따르는 이 거대한 노동에 감사를 표하는 것은 지극히 마땅하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모든 게임은 자율을 위한 또 하나의 도구가 된다.

그러나 이미 존재하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자유의지주의적 운동이 게임이라는 도구를 전유하고, 아나키스트적 관점에서 게임을 만들며 각색하고, 재설계하는 일이 시급하다. 기회는 얼마든지 열려 있다. 복잡한 기반시설 없이도 지역 곳곳을 가로질러 유통될 수 있는 모바일 게임을 구상하자. 기존 게임들을 자유의지주의적 방식으로 비틀어 각색하자. 그 안에 깔린 권력과 소유의 논리를 문제삼자. 물리적 게임을 디지털화하고, 우리 역사를 삽입하는 모드를 만들자. 「Call of Duty」의 스페인 내전 모드처럼 말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자. 우리의 실천, 투쟁, 꿈에서 영감을 받은 서사와 메커니즘을 갖춘 본격적인 비디오 게임을 개발하자.

그러나 이미 존재하는 것을 플레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유의지주의적 운동이 이 도구를 전유하고, 아나키스트 관점에서 게임을 만들고, 각색하고, 재설계하기 시작하는 일이 시급하다. 초대는 열려 있다. 복잡한 기반시설 없이도 지역 곳곳을 가로질러 유통될 수 있는 모바일 게임을 구상하자. 기존 게임들을 자유의지주의적 방식으로 비틀어 각색하고, 그 안에 깔린 권력과 소유의 논리를 문제 삼자. 물리적 게임을 디지털화하고, 우리의 역사를 삽입하는 모드를 만들자. 『Call of Duty』의 스페인 내전 모드처럼 말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자. 우리의 실천, 투쟁, 꿈에서 영감을 받은 서사와 메커니즘을 갖춘 본격적인 비디오게임을 개발하자.

변혁적 전략도구의 대표적 사례는 바둑이다. 체스가 중앙집중적 권력에 대한 정면공격에 초점을 맞춘다면, 바득은 현실세계의 갈등을 더 가깝게 나타낸다. 탈중앙적이며, 역동적이고, 분산적이다. 바둑은 핵심이 중앙을 장악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닌, 귀에서부터 세력을 구축하고, 영역을 점진적으로 확장하며 약한 집단들을 연결하고, 무의미한 대결을 피하는 데 있음을 가르친다. “첫 50판은 가능한 한 빨리 져라” 라던가 “계란으로 바위를 치지 말라” 와 같은 바둑 격언들은 직접행동, 기층건설, 전선 사이 연대를 위한 전술적 원칙이 된다. 바둑의 논리를 아나키스트 전략에 적용하는 것은 공허한 은유가 아니다. 이는 우리가 사회적 갈등을 더 잘 읽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언어, 구조, 직관을 제공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바둑에서처럼, 우리의 투쟁에서도 우리는 언제 공격하고 언제 물러서며, 언제 집단을 연결하고, 언제 단단한 토대를 구축할 지 알아야만 한다. 게임은 우리가 낮은 위험조건 속에서 이를 연습할 수 있게 한다. 이로써 우리가 충돌하는 세계에 더 잘 대비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된다면, 노는 것은 도피하는 것이 아니다. 혁명을 예행연습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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