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 권력을 향한 대장정
1969년 6월 30일, 몬테비데오
다시 한번 우리에 대한 탄압이 고조되고 있다. ‘데탕트’가 올 것이라는 예측과 정부의 독립성을 신뢰하던 안이한 낙관론을 비웃듯, 다시금 보안조치가 시행되었다. 이번 보안 조치가 이전의 것이 해제된 지 불과 3개월 만에 재도입된 것은, 보안조치가 이 체제에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체제가 민중의 고통에 대한 해법을 제시할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음을 드러낸다. 과두지배 세력의 막대한 이윤을 보존하는 것은 더 이상 인민의 가장 명백한 권리 주장과 공존할 수 없게 되었다.
예산이나 회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그 항의와 대중동원의 물결에 대한 응답은 언제나 보안조치였다. 이는 결국 사회적 긴장의 고조, 사회적 대립의 공고화, 그리고 견딜 수 없는 상황의 수혜자들에 대한 인민의 증오심 증폭만을 낳았을 뿐이다. 정권이 아무리 강력게 대응한다 할지라도 이러한 긴장을 제거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저항을 유발하는 문제들은 사라지지 않으며, 탄압과 함께 더욱 악화될 뿐이다.
물리력의 사용은 체제 내부의 모순을 희석하지 못하고 오히려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외견상 성공한 것으로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문제를 뒤로 미루는 것에 성공한 것일 뿐, 장기적으로 시스템 자체의 몰락을 의미할 뿐이다. 수년간의 잔혹한 독재 이후 인민 투쟁이 부활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사례는 이것이 역사적으로 자명한 진리임을 잘 보여준다.
새로운 보안조치의 적용은 1950년대의 우루과이로 돌아가기를 꿈꾸는 자유주의자들과 개량주의자들의 환상을 다시 한번 산산조각 내고 있다. 신문 '엑스트라(EXTRA)'의 자의적인 폐간은 수많은 사퇴과 성명서들을 낳았지만, 결국 입법적 특권의 문제로 전락하여 법적 추상성과 미묘한 차이의 용어로 협상될 수 있는 사안이 되었으며, 표현의 자유의 종말이라는 실질적인 문제는 외면당하고 있다. 경제적·사회적 쇠퇴의 틀 안에서는 오직 체제를 지지하는 이들을 위한 자유만이 존재하며, 부르주아 파벌 간의 자유로운 유희만이 허용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량주의의 다양한 변종들 만큼은 허용되고 있는데, 이는 그것이 잠재적인 반대 세력을 시스템 내로 통합하는 '사회적 보존'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진정으로 긴박해질 때, 보안조치를 심의하기 위한 의회 정족수는 결코 채워지지 않을 것이고, 모든 정황은 지난번과 동일한 광경이 반복될 것임을 가리키고 있다.
모두가 각자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고 있다. 에체고옌과 그의 파벌은 정부의 정치적 표류를 기다리며 탄압 조치의 적용을 지지하는 한편, 일부 반대 세력의 과도한 분출을 억제하려 시도한다. 이는 정부의 실정은 선거에서 야당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탄압을 도우면서 동시에 그 탄압이 초래하는 대중적 반감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것이 그들의 이중적인 게임이다. 그들의 목표는 길들여진 노동조합을 거느린 백색 정부를 건설하는 것이다. 반동 정책이 과두지배 세력에게 가져다주는 이윤 배분을 둘러싼 내부 모순은 체제의 기본적 목적이지만, 그조차도 항상 계급적 이익을 공동 방어하고 그를 위한 탄압을 정당화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자유주의자들(적색이건 백색이건)의 목적은 다소 다르다. 그들은 여전히 '번영의 시대'라는 부르주아적 도식에 집착한다. 그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정치-제도적 규범과 기존의 법 체계가 체제를 작동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그들은 권력의 과잉을 두려워하며, 많은 라틴아메리카 독재 정권의 경험을 통해 이것이 정치인들에게 위험할 수 있음을 배웠다. 권위의 과도한 집중은 부르주아 계급의 다양한 부문 간의 '공평한' 이윤 배분마저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는 산업 부르주아지(이른바 '민족 부르주아지')와 연계되어 개발주의적 유토피아를 고취한다.
다른 이들은 단순히 노련한 직업 정치인들로, 몽둥이로는 표를 얻을 수 없으며 종종 그 몽둥이가 선거 자체를 끝내버리고 자신들의 종말을 가져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모두 노동조합운동과 '대화'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들은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들처럼 노동운동을 체제 내에 제도화하고 공간을 내주는 데 동의한다. 그들은 시스템의 정상적인 작동을 위해, 임금 문제를 '평화롭게'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합리적인 희생'을 인정할 준비가 된 '호의적인' 노동조합을 갖는 것이 더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쇠퇴의 원인이 경직된 구조와 제국주의에 대한 종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순응주의자들이다. 그들의 부르주아적 사고방식에서 세상은 이렇게 만들어졌으며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구조를 바꾸거나 제국과 결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이 틀이 만들어낸 한계에 체념한 채, 그들은 제국주의 시대에 '국가 자본주의'를 꿈꾸는 이들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실효성 없는 서류들, 미래 없는 잔재들, 유토피아적 환상들, 굴종과 배신의 전 과정을 밟아나간다.
이는 거의 존재하지도 않는 '민족 부르주아지'와 함께 민족 부르주아지의 정치를 하려는 이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노동운동 내의 개량주의는 그러한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일종의 좌익 역할을 수행한다. 그 기능은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입장을 민중 운동에 전달하는 도르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개량주의적 지도부는 대중이 급진화되건 말건, 자유주의 정치인들과 함께 진퇴를 같이한다. 이러한 정치인들이 정부에 영향력을 미칠 때, 그들은 정치인들과 결탁하여 어려움을 피하려 시도하며 대중에게 '이해심 있는' 태도를 요구한다. 그들은 거리낌 없이 민중의 열망을 저버리고 우리를 억제한다.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치가 실패할 때, 이는 곧 아무런 탈출구도 남지 않은 개량주의의 실패를 의미한다. 개량주의 노선의 딜레마는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가 민중에게 구체적으로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민중 운동의 행동을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의 태도에 종속시킨다는 점에 있다.
올바른 길은 그 반대여야 하며, 실제로도 그러하다. 정부의 반동적 정책으로 피해를 입은 모든 부문을 결집시키는 노동조합 운동 및 민중 운동이 대중적 수준에서 그에 맞서는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마주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객관적 조건(경제적·사회적 쇠퇴의 규모, 민중을 덮친 문제의 실체)에 비해 주관적 조건(명확성과 의식 수준, 조직화 정도, 모든 분야에서의 투쟁 수단 확보)이 지체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지체의 표현(이자 원인)은 대중 운동과 그 조직 내에서 개량주의적 영향력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만들어낸 또 다른 특징은 투쟁이 빈번하게 자생적 형태를 띠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자생적 경향을 긍정적 정세로 바라보며 공세적 투쟁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러한 행동 방식의 한계를 현실적으로 직시한다. 우리는 장기적인 투쟁을 위해서는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러한 자생성을 조직적으로 통로화하고 적절한 전략적 구상 내에 틀을 잡을 때만이 결정적인 승리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반면 개량주의는 인민의 자생적 반응을 억누르려 한다.
이는 객관적인 경제적·사회적 상황의 진화에 의해 생성되고 점증하는 인민의 급진화 과정을 유토피아적으로 동결시키려는 시도이다. 대중을 전진시킨다는 것은 그 자생적인 급진화 과정을 자극하고 지원하는 동시에, 가능한 한 자생성을 극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인민의 투쟁을 더 높은 층위의 투쟁으로 전환하는 데에 적합한 더 높은 전략적-전술적 및 조직적 구상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다음의 내용이 포함된다.
- 노동조합별로 가장 전투적인 요소들을 명확한 입장과 고유한 과업을 가진 상설 그룹으로 조직할 것.
- 이러한 그룹들을 공동의 경향 내에서 조정하여, 공동 행동 과정에서 정치적 결속을 다지고 작업 방법, 활동 경험, 투쟁 경험 및 유기적 구조를 결정할 것.
- 직접행동 방식을 일관되게 적용하고, 단결의 확대를 지원하고 강제하며, 가두투쟁과 점거농성을 촉진하고, 배신자와 분열주의자를 처단하며, 행동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대중 운동이 퇴각의 시기에 접어들 때 투쟁 사기를 높일 수 있는 수단을 개발할 것.
- 장기적인 일련의 행동을 통해 성장하고 대중 운동과 수렴하면서, 유리한 정세에서는 부르주아지로부터 권력을 쟁취할 수 있는 무장 기구를 발전시킬 것.
우루과이 국가의 특수한 상황은 우리가 혁명을 이루어내기 위한 실천의 서로 다른 층위를 구성하는 이 모든 과업을 동시에 직시하고 실현해야 한다는 어려운 책무를 요구하고 있다.
노동조합 내에 조직된 그룹들이 없다면, 그리고 그것들이 강력한 경향 내에서 확고하게 조정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대중 운동 내에서 진정한 총체적 정치 전망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노동조합의 지역주의에 갇혀 개별적인 임금 기대치에 매몰될 것이며, 이는 정당한 것일지라도 경제 투쟁 수준에 머무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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