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마르크스주의적인 개념이다. 레닌에 따르면 "계급 투쟁에 대한 인식을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인식으로까지 확장시킬 수 있는 사람만이 마르크스주의자" 인 것이다. 레닌이 옳았다. 마르크스에게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적 지배 계급으로 조직되어 국가를 장악하고, 국가 사회주의를 통해 모든 계급을 제거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1875년 『고타 강령 비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 사이에는 전자에서 후자로의 혁명적 변혁의 시기가 놓여 있다. 또한 이 시기에 상응하는 정치적 이행기가 있으니, 이 때의 국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 이외에 다른 무엇일 수 없다."
『공산당 선언』에서 그는 이미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노동자 혁명의 첫걸음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배 계급으로 끌어올리는 것 ....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정치적 지배를 이용하여 부르주아지로부터 모든 자본을 차례차례 빼앗고 모든 생산 도구를 국가의 손안에, 즉 지배 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손안에 집중시키며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생산력을 높이게 될 것이다."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재확인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일정 기간 동안만 국가를 필요로 한다. 우리를 아나키스트와 구분하는 최종 목표가 국가를 없애는 것이냐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일시적으로 국가라는 도구를 착취자에게 맞서 사용하고, 이를 위하여 정치권력의 수단과 절차를 활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단언한다. 마찬가지로 계급을 철폐하기 위해서는 피억압계급의 일시적 독재를 유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 더 이상 자본가가 없고, 계급도 없으며, 따라서 '어떠한 계급'도 더 이상 억압할 필요가 없는 이상 국가는 사멸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불평등을 성역화하는 부르주아적 권리가 존속하는 한 국가는 완전히 소멸한 것이 아니다. 국가가 완전히 소멸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공산주의의 도래가 필요하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국가가 계급을 소멸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진 일시적인 정치 구조라고 간주한다. 이 개념의 근간에는 점진적 수용과 국가 자본주의라는 개념이 있다. 10월 혁명 직전의 레닌의 경제 강령은 "사회주의는 국가 사회주의적 독점에 불과하다" 는 문구로 끝맺는다.
레닌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자와 아나키스트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1.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국가의 완전한 파괴를 주장하지만, 이는 사회주의 혁명에 의해 계급이 파괴된 후에야, 그리고 국가의 파괴로 끝날 사회주의의 승리의 결과로만 실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 아나키스트들은 국가의 완전한 파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국가를 즉각적으로, 완전히 없애기를 원한다.
“2.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적 권력을 확보하고, 낡은 국가기구를 완전히 파괴하고, 코뮌과 같은 유형의 무장 노동자 조직으로 구성된 새로운 기구로 대체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아나키스트들은 국가기구의 파괴를 요구하면서도 프롤레타리아가 그것을 '무엇으로' 대체할지,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적 권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며, 심지어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정치권력 사용을 전면적으로 비난하고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독재를 거부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3.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근대 국가를 이용하여 프롤레타리아트를 혁명에 대비시키고자 하지만, 아나키스트들은 이 방법을 거부한다.
레닌은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국가의 완전한 파괴를 염두에 두지 않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즉 국가사회주의를 통해 계급을 파괴한 결과로 국가가 자연스럽게 사멸할 것이라 보는 반면, 아나키스트들은 계급과 국가를 동시에 철폐하는 사회혁명을 통해 계급을 파괴하기를 원한다. 또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전체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코뮌의 무력을 통한 장악을 주장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프롤레타리아트를 대표한다고 상상하는 당에 의한 국가 장악을 주장한다. 아나키스트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직접 사용하는 것을 지지하지만, 그 권력기관은 공산주의적 행정부의 총체에 의하여 구성되어야 한다고 바라본다. 즉, 외부의 권력에서 자유롭게 구성되고, 어떠한 정파도 정치적으로 독점할 수 없어야 하며, 행정적 중앙집권화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닌은 논쟁을 벌이기 위해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우리 사이의 차이에 대한 사실을 임의로 단순화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근대 국가를 사용하여 프롤레타리아트를 혁명에 대비시키고자 한다"는 레닌주의적 문구는 레닌주의 자코뱅의 경구인 동시에 의원내각제와 사회개량주의적 입각론의 기초가 된다.
런던(1896년)과 파리(1900년)의 국제사회주의 대회에서 "계급으로서 당에 조직된 프롤레타리아 분파에 의한 공권력의 사회주의적 장악"이라는 원칙을 인정하는 정당과 노동자 조직만이 사회주의인터내셔널에 소속될 수 있다는 것이 확립되었다. 이 시점에서 아나키스트와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결연한 분열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상 입각론, 기회주의, '의회주의적 소아병'의 승리일 뿐이었다.
반의회주의적 노동조합주의자들과 마르크스를 교조주의적으로 따르는 일부 공산주의 분파들은 비혁명적이건 혁명적이건, 사회주의자들이 공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거부했다.
아나키스트가 배제된 후 사회주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해석과 실천을 통해 마르크스주의가 정치 공학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레닌주의는 분명히 마르크스주의에 다시 혁명적 정신을 되돌려준 운동이지만, 동시에 마르크스주의적 형이상학의 오류와 추상성으로 다시 되돌아간 운동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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