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 현대 러시아에서의 아나키즘적 조합주의
21세기 초의 국제 아나키즘적 조합주의를 조망하면서 현대 러시아의 유사 조직에 대해 짧게나마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겠다. 소련에서 자유의지주의 운동은 1980년대 말 페레스트로이카의 시대에 부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기 활동가들의 관점은 엉망진창이었다. 이는 러시아가 수십년간 나머지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자율적 학습에 기반해서만 반대 세력이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1989년,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자 총연맹(Konfederatsiya Anarkho-Sindikalistov, KAS)가 건설되어 일시적으로 모든 자유의지주의 조직들을 모아내었다. KAS에는 수백명의 활동가들이 소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이름과 달리, KAS는 주로 프루동주의적 관점을 따라 “국가가 없는 시장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자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는 국제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의 전통에서는 이미 거의 온전히 제거된 경향이었다. 소련의 붕괴나 시장 자본주의로의 이행과 같은 사회-정치적 상황의 변화는 이 조직의 이데올로기적, 전술적 모순을 심화시켰다. 그리고 1990년대 초, KAS는 해체되었다. 조직구성원 일부는 개별적으로 독립지역의 노동조합(시베리아 노동 총연맹)의 틀 안에서 조합주의적 노동조합의 건설을 실천하려 했다.
아나키즘적 공산주의와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의 전통으로 돌아간 첫 번째 자유의지주의 조직은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1991년 3월에 건설된 “혁명적 아나키스트의 조직”(Initsiativa Revolyutsionnykh Anarkhistov, IREAN)이었다. 1995년 IREAN의 활동가들은 다른 아나키즘적 공산주의 조직과 함께 “혁명적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자 총연맹”(Konfederatsiya revolyutsionnykh anarkho-sindikalistov, KRAS)을 건설했고, 1996년 IWA의 20차 총회를 통해 IWA에의 가맹이 승인되었다. KRAS는 스스로를 노동조합의 초동주체(프로피니치아티바)라고 여겼다. 이는 즉, 이들이 스스로를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에 입각한 노동조합을 건설하는 과정에서의 이행기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 KRAS는 러시아의 사회운동과 시위에 동적으로 맞추어 기복있는 성장을 보여왔다. KRAS-IWA의 구성원들은 모스크바, 바이칼스크, 고멜, 야로슬라블, 로스토프-온-돈, 상트 페체르스부르크 등지에서 활동해왔다. 모스크바에서 이들은 교육, 과학, 기술 노동자들의 조직을 건설했다. 러시아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자들의 활동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회의와 출판(신문인 <프랴모예 데이스트비예>(“직접 행동”), 잡지인 <리베르타르나야 미슬>(“자유의지주의 사상”, 유인물 등)의 형태로 선동작업을 지속해가는 것이다. 바이칼에서 KRAS 회원들은 산별노조 건설에 참여했고, 이 노동조합은 1990년대 중반, 셀룰로오스지 공단에서의 파업을 조직하였지만 정부의 탄압에 분쇄되었다. KRAS의 활동가들은 파업과 노동자 시위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에게 지지와 기술적 조력을 제공하였다. 이를테면 모스크바 교외지역에서의 교직원 투쟁(1995)이나, 로스토프-온-돈의 “로스첼마시” 공장 파업(1998), 야스노고르스키의 기계도구 공장 파업(1999, 이 파업은 노동자 총회에 의하여 지도되었고, 공장을 점거했다.), 모스크바 이주건설노동자들의 파업(1999), 브세볼로시스크 포드 공장 파업 등이었다. 파업투쟁을 조력하는 과정에서, KRAS는 자기조직, 직접행동, 정당과 관료적 노동조합구조로부터의 독립 등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의 방법론을 노동운동에 녹여내고자 시도했다. KRAS의 구성원들은 반전선동을 계속했고, 1 · 2차 체첸전쟁과 트란스-코카서스 전쟁에 대한 반대 운동에 참여했다. 이들은 생태주의 캠페인에, 고령연금 “개혁” 반대 시위에, 주거 · 공동체 서비스 개혁에 대한 반대운동에, 모스크바에서의 고위관료 주택 건설 반대운동에, 철도 운송료 인상 반대운동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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