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특정 지역의 지배적 세력으로서 계급 분할 사회에서 상류 계급의 이익에 복무하고, 그 외 계급의 위에 오롯하게, 고립되어 존재하는 관료적 · 군사적 기제다.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국가를 “무장한 인민 뿐 아니라 물질적 부속기구를, 감옥을, 모든 종류의 압제기구를 포함하고 있는 공적 세력”이라고 묘사한다. 국가의 관료들은 “사회 위에 서있는 사회 기구”이며, “스스로를 사회와 다르게 만드는 힘의 대변인”이다. 엥겔스는 “국가는 유산계급을 무산계급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직”이라고 강조한다.[한국어 번역본 확보 필요]
아나키스트의 고전인 『국가 - 역사에서 국가의 역할』에서, 표트르 크로프트킨 역시 비슷하게 말한다. “국가의 개념은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의 존재를 포함한다. 뿐만 아니라, 지방에 대한 지배를 중앙에 집중시키는 것, 즉 통치지역의 집중화, 사회적 삶의 많은 기능들을 몇몇 혹은 전체의 손에 집중시키는 것을 포함한다. 국가는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 사이에 완전히 새로운 관계가 발생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국가의 입법과 경찰행정의 모든 기제는 특정 계급이 다른 계급을 지배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기제이다.”
(이 장에서 국가의 본질에 대하여 논하는 것은 맞지만, 나는 이 책에서 현대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아나키스트들의 국가 이론을 다루지는 않겠다. 이에 관해서는 반 덴 베르그, 1988이나 해리슨, 1983을 보라.)
국가를 이와 같이 이해한다면, 자연스럽게 마르크스주의자 상당수가 동의하고 있는 국가 철폐의 한 방법론을 부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들은 국가가 특정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는 기구이기에, 계급이 없는 사회에서 국가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압제자도 피압제자도, 착취자도 피착취자도 없는 사회는, 정의상 국가없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다. 그리고 이 해석은 국가가 피착취계급을 지배하는 관료적이고 폭압적인 기구라는 설명을 무시한다. 국가가 이처럼 억압적이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존재하는 이상, 국가는 철폐될 수 없다. 이러한 국가기능을 유지하는 것은 단지 계급의 철폐를 방해할 뿐이다. 국가라는 사회적 기구로 조직된 엘리트는 새로운 지배계급이 될 것이다. 만약, 이론적으로나마 계급이 한번에 사라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와 같은 폭압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기구는 계급을 재창조할 것이다. 소위 공산주의 국가의 경험은 복잡한 것이었지만, 이러한 일반화가 사실임은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국가에 대하여 위와 같이 분석하는 것은 국가의 철폐라는 과업을 단순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사회적 강제나 사회적 협력을 위한 필요를 철폐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사회 위에 존재하며 사회적으로 고립된, 공무원, 정치인, 군인, 경찰 등의 특수신분들을 포함하고 있는 관료적 기제를 철폐하면 되는 것이다. 계급이 철폐된다면, 더 이상의 압제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사회적 기능들은 여전히 필요하게 될 것이다. 마르크스가 말하였듯,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 지금의 국가기능과 유사한 사회기능이 남아“있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현재 국가가 수행하는 기능들이 사회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면, 국가는 철폐될 수 있으며, 청동도끼와 함께 고대박물관으로 보내어질 수 있다.
일부 아나키스트들은 압제당한 자들이 권력을 쟁취하려는 시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물론, 자본주의의 지지자들 역시 압제당한 자들이 권력을 쟁취해서는 안된다는 것에 동의하겠지만 말이다!) 반면, 나는 압제당한 자들이 권력을 쟁취하여 국가와 자본주의적 지배계급을 뒤집고 사회를 재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압제당한 자들이 국가권력을 쟁취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은 오류다. 국가권력은 관료적-군사적 기제를 재창조할 뿐이기 때문이다. 국가일 필요가 없는 정치 체제는 “파레콘”(“참여 경제”)의 옹호자들에 의해 “행정제도”라고 불리워왔다. 다른 많은 이들처럼, 이들은 자본주의 국가를 인민평의회를 통해 조직된 정치 체제로 대체하고자 한다.
(일부 급진주의자들은 “국가”가 아닌 “정부”를 지지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정부”라는 단어는 “국가”와 동의어로 사용된다. “정부”라는 단어에는 많은 용처들이 있고, “국가”와의 관계를 묘사하는 것 역시 그 중 하나이다. 내가 “정부”라고 말할 때, 이는 국가의 표면을, 국가를 관리하고 대변하는 공적 행정부라는 국가의 임시적 인물들을 의미한다.)
인류가 존재해온 기간의 대부분에는 국가가 없었다.(바클레이, 1990) 인간은 국가가 건설되기 한참 전부터 존재했다. 호모 사피엔스(소위 “생각하는 인간”) 종은 500,000년 전부터 존재했다. 이 중 우리가 속해있는 아종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50,000년 전부터 존재해왔다. 그리고 이 기간 중 다수에서, 인간은 소규모 수렵 채집(어로) 공동체에서 살았다. 누구도 토지, 식물, 동물 등을 “소유”하지 않았기에, 그 경제체제는 “공주의적”이었다. 인간은 식량을 채집하고 소비하기 위하여 협력했다. 농업이 시작된 것은 단 10,000년 전일 뿐이다. 그 후에도 인간들은 작고, 단순한 마을에서 필연적으로 집체적인 생활을 영위했다. 국가는 5,000년 전까지는 시작하지 않았다. 이는 인류의 역사에 비교하자면, 어제 시작한 것과 같다. 이것은 국가가 인간 본성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실이다. 만약 국가에 역사가 있다면, 국가는 그 시작이 기록된 것처럼 그 종말 또한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당시보다 더 높은 생산성을 가지고, 소위 원시 사회의 직접 민주주의와 경제적 집체성을 회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가 전의 사회들에는 질서도, 심지어 강제성도 부족하지 않았다. 부족 공동체나 마을 공동체의 모든 남성 구성원들은 무장했다. 결정은 공동체 전체에 의해(일부의 경우 남성 전체에 의해) 직접 민주주의적으로 이루어졌다. 만약 개인들이 공동체의 결정을 따르지 않는다면, 공론의 압력이 그 행동을 교정할 수 있었다. 이 교정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조직되고 무장된 공동체가 그 의지를 강제할 수 있었다.(많은 경우 범법자를 그저 추방하곤 했다.) 공동체간의 갈등은, 불가피할 경우 전쟁을 통해 조정되었다. 전쟁은 매우 제한적이고 의식에 가까운 것이었다. 전쟁을 결정한 자들이 전쟁에서 싸웠다. 전쟁에 특화된 무장한 사람의 조직이 사회 전체 위에 군림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국가는 계급사회의 발흥과 함께 시작되었다. 경제적 계급이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가를 다루는 것은 이 책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다.(혹은, 누구도 그것을 확실하게 할 수 없다.) 아마도 계급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노인과 청년이라는, 권위를 가진 샤먼과 나머지라는, 정복자와 피정복민이라는, 기존의 위계로부터 자라났을 것이다. 어느 순간, 사회는 인민대중의 생존에 필요한 것 이상을 생산할 수 있었고, 이로서 지배계급을 부양할 수 있는 잉여생산물이 생겨났다. 하지만 생산은 아직 모두에게 편안한 삶을 제공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하지는 않았다. 이것이 가능해진 것은 겨우 지난 수세기 전의 일이며, 그조차 가능성의 영역에서만 그러하다.(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이 겨우 200년 전이라는 사실을 주지하자.) 잉여 생산을 통해 생활할 수 있는 것은 소수에 불과했다. 사회는 노동하는 다수와 그 노동을 착취하여 살아가는 소수로 나뉘었다. 기존의 분화는 더욱 깊어졌다.
국가는 계급 분화와 함께 만들어졌고, 국가와 계급은 서로가 서로의 근거가 되었다. 내부에서의 전쟁을 함축하고 있는 분열된 사회에서, 모든 남성 인민이 무장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피억압대중은 무장해제되었다. 대중은 노예이자 천민이고 농노였기에, 그들의 주인들은 더 이상 대중에게 방어를 위임할 수 없었다. 지배자들은 무장한 강제집행관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집행관(사제)이라는 직업계층을 만들어내었다.
이 갈등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경쟁을 지배적 가치로 두었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은 일상이 되었다. 노동자들은 사용자들과 갈등했다. 돈이 없는 자들은 돈이 많은 자들과 갈등했다. 각각의 자본가들은 다른 자본가들과 경쟁했다. 각국의 국내에서 인종과 민족들은 서로 갈등했다. 성별간의 갈등 역시 넘쳐난다. 미국에서는 매년 수천명의 여성이 남성과의 전쟁에서 얻어맏거나 살해당하고 있다. 각국의 자본가들은 타국의 자본가들과 갈등한다. 국제적 협력은 최소한에 그친다. “무장해제”를 향한 시도는 언제나 실패해왔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전쟁에 대한 위협과 전쟁의 지속이야말로 민족국가의 핵심 기능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철폐는 혼돈을 낳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본말전도다. 국가는 자본주의적 혼돈의 필요조건이다. 경쟁과 갈등이 계속되는 사회에서는, 그 갈등을 봉합하기 위하여 국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조건에서 국가가 없다면, 사회는 산산조각 나 흩어질 것이다. 협동적이고, 사회화된 사회는 국가라는 화약통의 안전핀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는 현대 기술의 생산적 가능성을 이용하여 모두에게 편안한 삶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고, 사회적 의사결정에의 참여를 위한 충분한 자유시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며, 창조적이고 고립되지 않은 노동을 모두에게 제공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할 것이다. 이러한 계급없는 사회는, 더 이상 사회를 봉합하기 위한 국가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놀랍게도, 자본가들은 “아나키”라는 단어를 “혼돈”과 동의어로 사용한다. 하지만, 안/아르키는 어원상 “지배가 없음”을 의미한다.)
계급에 기반하고, 갈등이 넘치며 경쟁적인 사회에서 결정하고, 조정하는 체로서의 국가는 필수적인 존재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현대의 국가 권력은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공동 업무를 관장하는 위원회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 위에 폭압적인 권력으로 군림하는 기구만이 전체 상류계급(혹은 상류계급 중에서도 가장 권력을 가진 자들)의 이익을 위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를테면,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임금만을 주어 이윤을 유지하는 것이 모든 기업자본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모든 부르주아지가 이러한 정책을 채택하면 대규모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고, 현대 산업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교육과 동기부여의 수준을 낮출 수밖에 없으며, 내수시장을 파괴할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각 기업의 사장들은, 이것을 알더라도 감히 임금을 올리지 못한다. 그렇게 하는 순간 그들의 이윤은 경쟁자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국가가 등장하여 최저임금 입법을 하고, 전체 자본계급에게 이를 강제하여, 결과적으로 전체 자본계급의 이익에 복무한다.(물론, 지배계급의 일부, 이를테면 착취노동을 행하는 사용자들은 이 법을 회피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고, 최저임금은 실제로 필요한 것보다 많이 부족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자본주의다.)
자본가 계급 전체에게는 이익이지만 개별 자본가들과 그 그룹들이 행하지 않을 다른 행동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정부의 산업규제에 있어, 이는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개별 자본가들은 정치적 · 경제적으로 무지한 경우가 잦기에, 체제를 유지하는 것보다 반동적 판타지를 충족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국가는 산업에 개입하여 자본가들을 자멸로부터 구원해야만 한다.
미국 역사에서 이에 관한 가장 적합한 예시는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뉴딜일 것이다. 상류계급은 루즈벨트를 증오했다.(이들은 루즈벨트를 “계급의 배신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대공황 당시, 자본주의를 자멸로부터 구원한 것은 프랭클린 루즈벨트였다. 루즈벨트는 경제에 대한 최소한의 국가 개입을 통하여 체제를 안정시키고 혁명을 회피했다.(물론 공황을 끝내기 위해 2차 세계대전을 필요로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국가는 단지 자본계급의 “집행위원회”일 뿐 아니라, 자본계급의 핵심적 보조수단이자 그 창조자이기도 한 것이다. 이것은 국가에 관한 자유주의적이고 사회민주주의적인 환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국가가 장기적으로 자본계급 전반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을, 국가가 자본주의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거나, 심지어 친노동자적이거나 사회주의적이 될 수도 있다고 혼동하게 된다.
나는 “다원주의”라는 주류 “정치학” 모델을 거부한다. 이 이론은 지배계급의 존재를 부정하고, 각자와 경쟁하는 다수의 엘리트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폴리아키”) 세상에는 지배계급 내의 갈등이 있을 뿐 아니라, 노동조합, 농민조합, 교회, 평화운동 등 지배계급 외부의 사회적 이해관계들 역시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고, 이 이해그룹들도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경제를 지배하는 주요 거대 사업체들을 운영하는 부유한 자들의 계층이 노동조합이나 게이 활동가 그룹들과 동등한 만큼 국가에 영향을 주는 이해그룹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보다 세부적인 논박을 보고 싶다면, 밀밴드, 1969를 참조하라.) 언제나 사회와 국가를 지배해온 것은 자본계급(특히 가장 크고 강력한 자본계급의 일부)의 이해득실이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모델 역시 거부한다. 이 모델은 계급구조가 자율적 토대이며, 다른 모든 곳은 이 토대 위에 존재하고 이에 의존한다고 바라본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인 엘렌 메익신스 우드는 “토대/상부구조의 비유는 언제나 가치보다 더 많은 오해를 낳아왔다.”고 적는다. 만약 국가가 자본주의 기능에 필수적인 것이라면, 어떻게 국가가 상부구조이고 토대가 아닐 수 있는가? 마찬가지로, 젠더, 인종, 민족, 생태 등 계급체제가 아닌 사회적 위계의 형태들은 상당히 많다. 이 서로 다른 지배의 체제와 하위체제들은 서로 포개어지며 상호작용한다. 이들은 사회적 총체로서 자본주의 계급구조를 떠받히는 동시에 그 계급구조에 의하여 떠받혀진다. 나는 계급체제가 사회 모든 것의 기저에 있다고 보기보다는, 계급체제가 사회의 작동 중심부에 있다고 바라보는 것을 선호한다.(인종, 젠더, 민족, 생태, 계급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그리고 왜 이 중에서 계급이 중심에 있는지에 대하여 다루는 것은 이 문건에서 다루게될 범위를 초과하는 것이다.)
국가는 모든 위계적 체제의 “위에” 존재하면서 그 위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한다. 이를테면, 국가는 여성을 직접적으로 억압하는 법안을 만들 수 있다. 이를테면, 우파가 그토록 선망하는 낙태금지법을 보라. 지금까지도 미국국가는 임신 4개월 이상의 낙태권을 제약하고, 건강보험에서의 배제를 통해 낙태권을 부정하며, 원조라는 협박수단을 통해 타국의 낙태권에 반대해왔다. 하지만 지금 낙태는 합법이고, 여성의 차별을 금지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시정조치 또한 존재한다. 국가의 여성 탄압의 주된 형태는 간접적 방법이다. 여성과 남성이 가부장제 아래에서 불평등함에도 모두를 평등하게 대우함으로서 실질적 불평등을 강화하는 것이다.(이러한 논지는 캐서린 맥키넌이 『페미니스트 국가이론을 향하여』(Toward a Feminist Theory of the State) 에서 제시한 바와 같다.) "법의 위풍당당함은 부자와 빈자가 똑같이 다리 밑에서 잠 잘 수 없도록 한다“는 유명한 말도 있지 않은가. 법(혹은 국가)이 강간피해자에게 그들이 동의하지 않았음을 합리적 의심을 넘어 증명하도록 요구할 때, 이는 남녀를 불문하고 평등하게 적용된다. 국가가 아동 성착취의 피해자들에게 수년이 지난 후에도 합리적 의심 이상의 증거를 제출할 것을 요구할 때, 이 역시 남녀를 불문하고 평등하게 적용된다. 하지만, 강간 피해자나 아동 성착취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은, 여성에게 더 높이 존재한다.
마리아 미스는 노동자 착취라는 자본주의적 과정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착취 없이는 기능할 수 없다고, 그리고 이 두 착취 모두는 인류의 자연 지배와 본국에 의한 식민지 탄압에 필수적인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미스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별개인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부장제”라는 하나의 체제라고 느낀다. 국가는 자본주의-가부장제적 국가라 불리워야 한다. 미스는 “페미니즘 운동은 본질적으로 아나키즘 운동이다. 이 운동은 타인에 대한 착취나 지배로 살아가는 엘리트가 존재하지 않는 비위계적이고 비중앙화된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기 때문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흑인에 대한 백인의 착취를 위하여, 국가는 인종주의적 법을 제정했었다. 미국 남부에는 “짐 크로우 법” 등의 격리 법령들이 존재했다. 자, 이제 흑인들에게도 투표권이 생겼고, 차별금지법과 차별시정조치가 생겼다. 그래도 경찰은 흑인들이 “흑인인 주제에 운전한다”면서 체포한다. 경찰들은 흑인들이 자기 집 계단처럼 소위 잘못된 장소에 있었다며 총격을 가하여 흑인 공동체에게 국가 폭력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그 와중 빈곤층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은 극적으로 삭감된다. 결국, 부르주아 국가를 인종주의 국가라고, 민족제국주의 국가라고, 이성애중심주의 국가라고, 반생태주의 국가라고 부르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내가 “부르주아 국가” 혹은 “자본주의 국가”라고 부르는 것은 이 모든 의미를 포괄하는 일이다. 내가 이것을 단지 “부르주아 국가”라고 부르는 이유는, 모든 억압의 형태들이 자본주의의 총체성 안에서 통합되고 맞추어지기 때문이며, 국가를 올바르게 묘사하는 모든 형용사들을 나열하는 것은 너무 길 것이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은 국가를 자본주의적(가부장제적, 인종주의적) 개념을 확산시키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국가는 그 이데올로기가 사회 전체적으로 지배적이고 헤게모니적인 것이 되기를 바란다. 국가는 피억압대중의 억압이 자업자득이라는 것에 대한 전국적 합의를 만들어내기를 원한다. 학교는 많은 경우 국가의 기구다. 비국가적인 이데올로기의 전파수단은 교회, 신문, 텔레비전, 영화, 스포츠,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 등이 있다. 이것들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지배계급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는 데에 사용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계급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인민들이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싶어지게’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국가의 무장력을 사용하는 것은 최종수단으로만 사용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의 뒤에 총구를 들이밀어야 하는 사회는 생존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이 온다면, 지배자들의 이데올로기는 실패하고, 혁명이 발발하게 될 것이다.
전체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는 파시즘, 공산주의(볼셰비즘), 바트당 사회주의 등 지배적 이론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이론들은 때로는 반자본주의적이라 자칭할 수도 있다. 이들은 단일정당을 이용하여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고 대중의 지지를 동원해낸다.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들 역시 다소 느슨할 수는 있지만 자신만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다. 애국주의, 민주주의, 자유, 자유기업, 반공주의(냉전기) 등이 그것이다. 때로는 종교적 가치 역시 제기된다. 요즈음에는 테러와의 전쟁이 중요한 이데올로기로 떠올랐다. 정당들은 지배계급의 경쟁을 대변하는 세력으로 대중들을 조직한다. 이들은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라는 경쟁적(이지만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킨다. 투표가 열려 인민들은 그들이 사회를 운영하고, 자유와 진정한 민주주의 속에서 살아간다는 환상을 가지게 된다.
부르주아 국가는 군대와 감옥이라는 그 기본기능을 통하여 필연적으로 경제적 권력이 된다. 부르주아 국가는 세금을 수취하기 위해,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채용하고 있는 공무원들에게 돈을 지불하기 위해 권력이 필요하다. 국가는 합법적인 화폐를 만들 권력이 필요하다. 이것들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경제적 영향력이다. 국가는 태초부터 이것들과 다른 형태의 권력들을 이용하여 자본가 계급을 경제적으로 촉진한다. 이를테면 미국은 자국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해밀턴의 관세 정책, 미국의 신용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 은행 등을 만들어왔다. 이러한 정책들은 부르주아지의 북부와 노예농장주의 남부(이들은 국가 은행이나 높은 관세, 철도회사에의 보조금 등 사업 친화적인 정책들에 반대했다.) 사이의 정치 투쟁에서 주요한 이슈가 되었다. 오늘날 미국에서 지배계급은 무제한의 자유 시장에 대한 교조주의로 악명이 높다. 하지만 미국의 지배계급은 지금까지 있어온 모든 정부 보조금과 세금 감면을 너무도 사랑해왔다. 특히 미국 지배계급은 미국의 “영구적 무장 경제”, 즉,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말을 빌리자면 “군산복합체”라 불리는 주요 기업들의 주머니로 국부를 이전하는 형태의 경제를 통해 이익을 보아 왔다. 미국은 대중적 압력에 응하여 노동권, 여성권, 환경보호 등을 위한 미약한 규제를 활성화하였다. 하지만 이 규제들은 언제나 서서히 무력해지고, 마침내 뒤집어져왔다. 이처럼 정부는 경제에 매우 큰 규모로 개입한다. 1930년대의 대공황은 케인즈가 옳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자본주의는 낮은 생산성과 낮은 고용율로 고착될 수 있었다. 당시에도, 지금도,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는 실패했을 것이다. 분노한 노동계급은 자본주의를 거부했을 것이다. 정부의 수요창출, 적자예산 편성, 화폐 공급의 통제라는 국가 정책이 자본주의 체계를 유지했다.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국가는 지배계급의 “독재”다. 즉, 전체 인구 중 소수에 불과한 단일 계급이, 나머지 대중들을 지배하는 체제인 것이다. 국가는 이 지배를 강제한다. 전체 계급에 의한 독재(지배)는 한명이나 소수에 의한 독제와 같지 않다.
이를테면, 고대 그리스에서는 각 폴리스들은 전제군주정, 군사관료정, 과두정, 민주정 등 서로 다른 형태의 정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정부들은 노예소유 계급이 노예들을 통치하기 위해 조직한 방식들이었다. 아테네는 모든 시민들(이민자 가정 출신이 아닌 모든 자유민 남성들)에 의한 극단적이고, 직접적인 형태의 민주정을 가지고 있었다. 약40,000명 가량의 남성들이 총회에서 투표권을 가지고 있었고, 일반적으로 총회에는 수천명이 참석했다. 선출직은 매우 소수였다.(그리고 군사령관은 이 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공직은 추첨으로 정해졌다. 이 체제는 매우 잘 작동했다. 하지만 아테네는, 그 민주주의가 아무리 놀라웠다 하더라도, 결국 노예소유주의 민주주의였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가장 끔찍한 그리스 전제정만큼이나 노예들에 대한 계급적 독재, 혹은 민주적 독재였다.
이는 자본가 계급의 독재에 있어서 더욱 적확한 묘사다. 자본주의는 전제군주정 아래에서도, 경찰국가 아래에서도, 파시스트 전체주의 아래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제한된 민주주의 아래에서도 존재해왔다. 최초에 자본가들의 민주주의는 재산을 소유한 백인 남성들에게만 투표권을 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민주주의라는 사업에의 참여권을 서서히 재산, 성별, 인종을 넘어 확장시켰다. 자본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소유권, 계약의 자유, 자유시장, 자본의 축적, 노동력에 대한 통제 등이다. 국가가 자본가들에게 이러한 것들을 보장하는 한, 그 국가는 구체적 형태와 무관하게 부르주아 국가다.
스탈린주의(소위 ‘공산주의’) 아래에서도, 국가는 재화의 생산, 내수 시장, 자본 축적, 노동계급의 부속화 등을 유지했다. 관료들이 개인적으로 기업 자산을 소유할 수는 없었다하더라도, 자본/노동의 관계는 강제되었다. 그렇기에 이 체제는 국가 자본주의다. 그렇기에 소련은 서구 자본주의와 다른 형태로 조직된 자본가 계급을 가졌을 뿐인 자본주의 국가다.(그리고 러시아에서는 이 차이마저 사라졌다.)
일반적으로 부르주아지는 제한된 민주주의를 선호한다. 자본가 계급 내에는 서로 다른 강령을 가진 경쟁 세력들이 존재한다. 노동계급에게 빵쪼가리를 조금 더 던져주어야 한다고 믿는 자들이 있고, 노동계급을 (사회보장정책을 축소하고 경찰 탄압을 확대하면서)개집으로 돌려보내려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의제 선거를 통해 이 경쟁세력들은 이 차이를 (그다지) 피흘리지 않고 좁힐 수 있다. 민주주의는 1인 독재에 비하여 만약 지도자가 위험할 정도로, 이를테면 히틀러처럼 비합리적이라면, 이 지도자를 더욱 쉽게 축출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노동자들에게 그들이 사회를 통제할 수 있고, 그들은 자유롭고 자기 통제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환상을 쥐어준다는 것이다. 매 2년, 혹은 4년마다 한 번씩 인민들은 투표소에 가 자기를 통치할 한 명, 혹은 두 명의 대리인을 고른다. 그리고 그들은 나머지 수백일을 일터에 있는 선출되지 않은 사장의 업무지시를 받는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치하에서 살아가는 것이 부르주아 전체주의 치하에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노동자들에게 나을 수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치하에서는 최소한 자본가들에 대항하여 조직하기는 더 쉽고, 소수 관점(이를테면 아나키즘)을 듣기도 더 쉽다. 하지만 부르주의 민주주의는 그 최선에 있어서도 자본계급의 독재일 뿐이다.
국가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치하에서조차 사회 전체 위에 군림하고, 국가의 집행부는 국가 전체 위에 군림한다. 아나키스트들은 국가가 자체적인 논리와 동인을 가지고 있다고 바라본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사회 각 계급들이 스스로 지배할 수 없을 때, 이를테면 노동자와 부르주아지 모두가 자기 요구를 발화할 만큼 강하지만 사회를 탈취하여 스스로 운영할 수 없을 때, 국가가 그 기층에 있는 계급들로부터 어떻게 유리되는지를 연구했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독재에서 이름을 따와 “보나파르트주의”라고 칭했다. 하지만, 국가가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가진다 하더라도, 부르주아의 기구라는 그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 국가는 언제나 자본주의의 통치, 사적소유권, 자본/노동의 관계를 강제한다. 국가는 사회의 이해관계를 전반적으로 보살필 수 있지만, 그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다.
개량주의자들은 국가 내부, 특히 입법기구 내에서의 갈등을 지적한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이나 최저임금법 등 인민들에게 유리한 법령들도 통과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예시를 바탕으로 이들은 국가가 노동대중과 자본가들이 경쟁할 수 있는 중립적 토양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그렇기에 국가는 파괴되어서는 안 되고, 인민들이 국가를 잘 이용할 수 있도록 더욱 민주적이 되어야 한다.(라클라우, 무페, 1985)
이 주장은 잘못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을 경영할 때에도 내부적 갈등은 존재한다. 노동자들의 압력을 마주했을 때, 노동조합의 조직을 막기 위해 경영진은 노동자들에게 양보할지 아니면 그들을 탄압할지를 두고 갈등한다. 경영진은 단체협약에 차별금지 조항을 넣거나 임금을 인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기업 경영의 본질을 바꾸지는 않는다. 이러한 협약 이후에도 기업은 여전히 자본주의의 도구이자 노동계급의 적이다. 기업은 국가와 마찬가지로 압력을 가해야 하는 대상이지 참가해야 할 집단은 아니다. 노동이사회의 결과들이 항상 마뜩찮은 것처럼,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정부 참여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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