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철폐 : 아나키즘적 · 마르크스주의적 관점 (5장 : 국가의 아나키스트적 대안) - 웨인 프라이스



5장. 국가의 아나키스트적 대안

국가가 집행하던 기능 중, 최소한 3가지는, 최소한 혁명 이후 일정기간 동안은, 필요할 것이다. 영토에 대한 군사적 방위, “범죄적” 반사회 행동에 대한 대응, 사회의 총체적 협력이 그것이다. 아나키즘은 이 기능들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그것도 국가가 없는 상태에서 말이다.

앞서 언급한 백과사전 기고문에서, 크로포트킨은 아나키즘 사회에서는 “자율적 연합이 국가의 모든 기능을 대체할 것이다. 자율적 연합은 무한정 다양한 집단과 연방들이 지역적, 국가적, 국제적으로 임시적이건 영속적이건, 생산 · 소비 · 교환 · 통신 · 보건위생 · 교육 · 상호보호 · 영토 방위 등 각각의 목적을 위해 상호결합된 연결망”이라고 말한다. 이 연합들은 각자와 합의를 도출할 것이다. 이들은 보다 탈중앙적이고 지역주도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이들은 자본주의를 사회주의적 협동조합과 비영리적 생산으로 대체할 것이다.

크로포트킨은 평화로운 세계로의 즉각적 도약을 기대하지 않았다. 국가가 수행하던 특정 기능들은 일정기간 수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나키즘 사회에서는, “상호 보호와 영토 방위”를 위한 연합이 있어야 할 것이다. 모든 혁명적 아나키스트들은 혁명 기간 중 무장세력의 필요성에 대하여 동의하여 왔다. 그들은 국가가 운영하는 정규군이 아니라, 인민의 자발적 무장과 노동자 민병대의 게릴라 전술을 옹호했다. 이러한 군사력은 노동자 평의회에 의하여 협력적으로 조직되고 감독되어야 했다.(오늘날 “민병대”는 우익들이나 지하디스트들이 조직한 무장집단을 포괄하는 모든 비정부적 무장세력을 칭하는 말로 변하였다. 하지만 나는 이 단어를 무장한 인민이라는 전통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이야기하겠다.)

아나키스트들은 군사력을 조직해왔다. 그리고 그 중에는 매우 효과적인 것도 있었다. 러시아 혁명기, 네스토르 마흐노는 우크라이나 농민들의 게릴라군을 조직했다. 이 부대는 여러 “백군”들과의 전투를 승리했고, 트로츠키가 이끄는 “적군”의 배신에 겨우 패배했다. 스페인 혁명/내전기에는, 부에나벤투라 두루티 등이 이끌던 아나키스트 분견대들이 파시스트 군대에 맞서 이겨내었다. 멕시코에서 사파타가 조직한 군대 역시 자유의지주의적 군사력의 예시라고 볼 수 있겠다.

아나키즘은 현재 지배계급의 집행위원회로 기능하고 있는 정규상비군을 스스로 무장한 민주적 인민들로 대체할 것이다. 이는 수세기 전, 부족 민주주의 시대부터 존재해오던 개념이다. 고대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 체제에서, 모든 (남성) 시민들은 군인이기도 했다. 그들이 총회를 통해 전쟁을 의결했다면, 이 시민들은 스스로 무장을 갖추었다. 다른 누군가를 전쟁에 보내는 것을 의결하는 현대와는 다르지 않은가. 루소는 고대 그리스를 흠망했다. 그리고 그는 당시 이와 유사한 직접 민주주의와 무장한 시민들을 갖추고 있던 스위스 역시 흠망했다. 루소는 전업 군인들의 발흥이 곧 전업 “대표자”들의 정부가 발흥하는 것을 이끌었다고 보았다. 인민들은 정부의 주요 과업에 참여하는 것을 포기하게 되고, 이에 따라 더욱 예속되게 된다.

미국 독립 혁명 과정에서, 영국의 전업군인들은 반쯤은 자원입대자이고, 나머지 절반은 민병대이던 오합지졸들에게 패배했다. 혁명가들은 전업 정규군을 너무나도 혐오하였다. 이들은 펜실베니아, 델라웨어, 매사추세츠, 노스 캐롤라이나, 매릴랜드의 헌법에 “상비군은 자유에 대한 위협이기에 유지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삽입했다. 이들은 헌법의 권리장전 2조를 작성했다.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 이 조항은 오직 경찰과 군대만이 총기를 휴대하기를 원하는 국가주의적 리버럴들에게 장애물이 되었고, 군대를 해산하고 민병대를 두는 것에는 반대하고 있는 우파들의 성지가 되었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자들이 자경단의 기치를 포기하면서, 이 기치는 사회주의 전통에 포함되었다. 파리 코뮌 이래로, 마르크스와 아나키스트들 모두는 인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전업 정규군이 아닌 민병대라는 교훈을 얻었다.

마르크스는 “파리 코뮌의 첫 번째 법령은 상비군을 철폐하고, 이를 무장한 인민들로 대체하는 것이었다”고 선언한다. 독일 마르크스주의당의 창립자인 베벨은 제국 상비군을 민병대로 대체하자는 선전을 진행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프랑스의 개량주의적 사민주의자 장 조레스는 『새로운 군대』를 집필했다. 그는 드레퓌스 사건 이후 발발한 프랑스의 반동적 장교 쿠데타에 대한 혐오를 바탕으로 군대를 오직 방어적 성격을 가진, 지역적으로 징병된 민병대로 대체하자고 주장했다. 조레스는 개량주의자였기에, 이것을 자본주의 사회를 위하여, 리버럴 정부가 집행하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동자 민병대는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분파에 의해서도 추켜올려졌다. 특히 레닌은 국제중재재판소나 군축과 같은 자유주의적 정책이 제국주의 국가라는 환상을 퍼트린다고 말하면서, 그 대책으로 노동자 민병대의 상을 제시했다. 러시아 혁명이 발발할 무렵, 레닌은 자본가들이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의 무장 훈련에 소요하는 비용을 지불할 것을, 모든 경찰을 노동자의 순찰대로 대체할 것을, 모든 장교들을 선출할 것을 요구했다. 적위대나 게릴라군으로 조직된 노동자의 자발적 조직은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확보하는 초기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하지만, 공산주의자들은 민주적이고 민병대 전통에 기반한 군대를 조직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중앙집중적이고 상비군적이며 징병제에 기반한 적군을 건설하고, 최고 사령관으로 레온 트로츠키를 임명했으며, 옛 차르 군대의 장교 수만명을 재임명했다.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이 최초의 이상을 폐기한 것이, 러시아의 후진성과 무지를 비롯한 여러 객관적 조건들에 기인한, 필연적인 것이었다고 말한다. 이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네스토르 마흐노와 아나키스트들은 같은 조건을 두고 우크라이나에서 게릴라군을 조직하였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마흐노우슈치나는 우익 군세를 수차례 격퇴하였으며, 수년간 적군을 저지해내었다.

2차 세계대전 동안에도 게릴라군은 부차적일지라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를테면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이탈리아의 유격대, 유고슬라비아 · 알바니아 · 그리스 등지에서 발발했던 동유럽의 게릴라 투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빨치산 투쟁, 중국 ·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발발하였던 반일 게릴라 투쟁 등이 있었다.

세계대전 이후에도 게릴라전은 중국, 유고슬라비아, 알바니아, 쿠바 등지에서의 공산주의 혁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러시아 군이 이식한 공산당 정부들과는 달리, 이들 국가의 공산당 정부는 소련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움직였음을 알 수 있다. 게릴라 전술은 알제리의 프랑스 독립 전쟁에서도 활용되었고, 일본, 프랑스, 미국에 대항하던 베트남인들 역시 게릴라에 기반한 투쟁을 상당히 많이 진행하였다. 베트남이 미군에 대항하여 싸우고, 마침내 격퇴한 것은 60년대의 세계적 급진화의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게릴라 전략에 대한 믿음이 좌파의 신념 속에 자리잡히게 되었다.

게릴라 투쟁은 좌파의 전유물로 그치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주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로 구성된 게릴라 전사들이 러시아 군을 몰아냈다. 이것은 결국 소련의 최종적 붕괴를 끌어내는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현재 이라크에서는 민족주의자들과 이슬람주의자들은 미국에 대항하여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다.

일부 국가들은 민병대와 게릴라 전술을 국방 계획의 핵심으로 두고 있다. 스위스는 중세로부터 현재까지 단 한번도 민병대 체계를 포기한 적이 없다. 다수의 남성 인민들은 단시간의 군복무를 거친다. 남성 시민들이 소총이나 기관총을 보유하는 것은 법적 의무이다.(스위스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총기 소지율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스의 범죄율은 매우 낮다.) 스위스의 전업 군인의 수는 매우 적다. 흥미롭게도, 이스라엘의 군 편제는 스위스 체계에 영향을 받았다. 식민주의적 정착국가인 이스라엘은 대규모의 상비군을 감당할 수 없지만, 전쟁 발발시 소규모 인구를 빠르게 동원할 수 있어야 하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대규모 예비군 전력과 지역 예비군 본부에 흩어져 있는 총기와 탄약을 탈중앙적 방어가 아닌 긴급 동원 체계로 사용한다.(이스라엘의 인구 규모를 보았을 때, 동원된 예비군을 소집 장소에서 필요한 지역으로 이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릴라 전술을 국방 계획에 포함시킨 다른 국가는 유고슬라비아였다. 인민 방어 체계는 정규군과 공존했다. 유고슬라비아는 빠르게 동원되어 종심 방어를 펼치거나, 게릴라전 체계로 전환할 수 있는 지역 예비군 체계를 완비하고 있었다. 유고슬라비아의 헌법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복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무기를 구하기가 쉬웠다는 것은 티토 사후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 그토록 많은 피가 흐른 요인 중 하나였다.) 스웨덴이나 북한 역시 이 방법론을 국방계획에 포함하고 있다.

민병대는 무장한 인민의 군대의 한 형태다. 민병대는 지역적 방어 전술이나 종심방어전술과 함께 운용되곤 한다. 이는 자신의 터전을 직접 지키는 것을, 적이 진군하는 한발 한발마다 그 대가를 치르도록 만드는 접근법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증명하고 있듯이, 이 방법론은 국민방위군 형태의 예비군을 빠르게 동원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 게릴라 전술은 적의 소모를 강요하는 기습전 전술을 의미한다. 하지만, 지역의 민병대는 게릴라로 전환할 수 있다. 중국과 베트남에서 목격한 것처럼, 정규전이 발발하면 게릴라 부대는 통합할 수도 있다. 역으로 대규모 정규군이 소규모 게릴라(빨치산) 부대로 분열할 수도 있다. 정규군이 소수 정예부대를 이용하여 게릴라전과 유사한 특공전술을 사용할 수도 있다. 무장한 시민군의 전투 형태는 매우 유연할 수 있을 것이다.(징병이냐 모병이냐의 문제는 군대의 형태와는 별개의 문제라 하겠다.)

70년대 후반으로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유럽의 평화운동가 일부는 핵무기나 미군의 도움이 없이 서유럽을 소련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유럽에서 핵전쟁이 발발한다면, 설혹 그 전쟁이 “제한적”이라도 유럽 아대륙을 파괴하리라는 것은 자명했다. 핵이 배제된 재래식 정규전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유럽 아대륙은 불타오를 것이었고 말이다. 평화운동가들은 자유주의 진영의 군사전문가들과 상담했고, 게릴라전의 역사를 검토한 후, 유고슬라비아, 스위스, 스웨덴 등지의 방어 계획을 살펴보았다. 이들은 그 결과로 지금의 주제와 유사한 몇몇 제안들을 내어놓았다.(Alternate Defense Commission, 1983; Barnaby & Boeker, 1982; Mackay & Fernbach, 1983; Roberts, 1976; Smith, 1982).

이들이 제안한 것은 군대의 구조를 가진 비핵화된 방어 계획과 공격보다는 방어역량을 우선시한 군수 계획을 수립하여 타국에 대한 위협을 명확히 낮추자는 것이었다. 이들은 정규군의 역할을 국경 방어로 제한하여 침략자들의 소모를 강요하고 민병대를 동원할 시간을 벌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인민대중은 민병대로 조직되어 수년간의 반복적 군사 훈련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지역에는 무기고와 방공호가 분산되어 건설될 것이다. 배급되는 무기는 단지 권총이나 소총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대공미사일이나 이와 유사한 사격통제장치가 있는 미사일까지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한 두명의 민병대 병사만 있더라도, 이러한 무기를 운반하고, 탱크나 전투기에 맞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종심방어나 게릴라 전술은 토양 등의 조건을 고려하여 충분히 계획될 수 있다. 암살이나 사보타주 등을 포함한 도심 게릴라 전술 역시 언급된다. 시민의 비무장저항 역시 비폭력적 방법론으로 제안되는 방법론이기도 하다. 이 비무장저항에는 파업, 태업, 비협조, 평화시위, 선전전 등이 있을 수 있다.

게리 하트는 미군을 스위스나 이스라엘의 시민군 체계로 전환하고자 하는 발상을 제안한 바 있다. 그는 콜로라도주의 민주당 상원의원이었고, 대통령 후보였으며, 상원 국방위원회의 구성원이기도 했다. 하트는 그의 책 『미니트맨 : 인민의 군대를 재건하기』(1998)에서 전업 정규군의 규모를 2/3 이상 축소하고, 소규모의 기동성 있는 군대로 전환하자고 제안한다. 삭감된 병력은 시민의 예비군, “국민민병대”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 교육의 일부로서 보편적 기초 군사 훈련을 진행하지만, 예비군(“민병대”)에의 참여는 온전히 자발적일 것이다. 하트는 잘 훈련되고 장비를 갖춘 예비군은 현대 군사 작전 대부분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는 이 체계에서 걸프전과 같은 공세적 대외정책은 불가능 할 것이라 이해하고 있다. 예비군은 시민공동체와 직장에 결속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트는 상선들의 건조 방식을 예로 들면서, 이 상선들이 필요할 때에는 상선 항해자들이 운용하는 해군 함정으로 바뀔 수 있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무장한 인민이라는 개념에 대한 약사를 짚어간 목적은, 이 개념이 훌륭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전통 모두에 근거하고 있음을, 서유럽과 미국의 전문가들이 진지하게 고려한 것임을, 아주 오랫동안 정규군을 이겨온 경험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이것이 무장한 인민의 군대가 제대로 작동하리라고 입증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최소한, 유의미하고 훌륭한 근거는 제공하리라 본다.

비국가적 사회 역시도 이러한 계획을 도입할 수 있다. 이 사회가 어떠한 군사체계를 도입할지는 혁명 과정에서 이용한 군사적 형태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특히, 어떠한 종류의 내전이, 얼마나 심각하게 발발할 것인가에 따라 매우 크게 달라질 것이다. 무장한 인민의 군대는 자유의지주의자들이 원해온 것보다 더 중앙집중적으로 구성될 수 있다. 원칙적으로, 군대는 최대한 탈중앙적이고 민주적으로 구성되어야 하며, 오직 필요최소한만 중앙집중적 직업군인의 형태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는 실증적 균형과 의식적인 정치의사결정의 문제다. 우리가 목표로 두어야 할 것은 내적으로 민주적(장교의 선출을 포함)인 혁명적 군대를 두고, 이를 공동체와 산업단위에 직접적으로 결속하게끔 하며, 직업군인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특수부대는 일상생활을 바탕으로 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지금조차도, 은퇴한 공군 파일럿들은 민항기의 파일럿이 되면서 공군 예비역으로 남아있곤 한다. 해커나 컴퓨터 기술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조직될 수 있을 것이다.

혁명적인 아나키스트 사회에서는 핵무기나 대량파괴무기를 사용할 수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러한 무기들은 비도덕적이고, 시민들을 학살한다. 이러한 무기들은, 우리가 함께 해야만 하는, 타국의 노동자와 농민들을 겨냥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무기들은 자살적이다. 우리의 핵공격은 핵반격을 낳을 뿐이다.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위협을 느낀 적의 핵 선제타격을 유도한다. 핵의 일방적 사용조차 세계를 낙진으로 뒤덮어 폭격을 지시한 자와 폭격을 당한 자 모두를 죽음으로 내몬다.

레이건 정부의 수석 군축협상가(결코 평화주의자일리 없는 이력임을 알 수 있다)였던 폴 니츠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핵무기를 포기해야”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핵무기는 위험하고, 비싸며, 부도덕할 뿐 아니라,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재래식 무기의 정확도가 크게 향상된 이상, 미국 정부는 비핵적 방식으로도 모든 목표물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핵무기고는 방어와 공격 양면에서 불필요한 것이라는 것이었다.

자유로운 사회를 방어하는 최대의 수단은 폭탄이나 군사조직이 아니라 정치여야 한다. 다른 땅의 인민대중에게 발화하는 목소리여야 한다. 우리가 핵무기를 해체했다는 사실 그 자체야말로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가 될 것이다. 이 사실이야말로 “우리는 자본주의 국가가 만들어낸 지옥의 폭탄을 파괴한다. 우리는 당신들을 파괴할 능력을 포기한다. 우리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 있다. 당신 나라의 지배자들이 우리에게 핵무기를 사용할 수 없게 만들라! 그들의 무장을 해제하라! 국가를 전복하라! 자유세계에서 우리와 함께하자!”라는 외침이 된다. 혁명은, 특히 국제 제국주의의 중심인 미국에서의 혁명은 세계 전체에 어마어마한 정치적 충격을 안겨줄 것이다. 우리를 파괴하라 명령받은 외국군들이 혁명에 “감염될” 것이다. 외국 정부는 자유 북미에 군대를 보내기 두려워할 것이다. 설혹 파병한다 해도, 그들은 게릴라전을, 종심방어를, 사보타주를, 비폭력 저항을, 혁명적 선동을 마주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저지력”이다. 자유야말로 최선의 방어가 될 것이다.

민병대는 “범죄”, 즉, 해이한 사람들의 반사회적 행동을 통제하는 아나키즘적 계획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민병대는 거리를 순찰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경찰의 역할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범죄 감시” 프로그램들을 보라. 범죄를 통제하고 반사회적 범죄를 막아내는 데에 있어, 지금의 제한적 조건 하에서도, 대중의 참여는 매우 효과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아나키즘의 주요 과제가 경찰을 일소하는 것이라 잘못 생각하곤 한다. 그들은 아나키즘이 지금의 사회와 같지만, 경찰이 없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에는 노동 대중을 향한 혼란과 폭력이 난무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새로운 국가가 만들어내는 조직적 범죄가 재건될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친화적인 “자유지상주의자”들 중, 이러한, 국가만 없을 뿐 다른 모든 것이 동일한 사회를 지향하는 자들이 있기는 하다. 사회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은 이러한 것이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완전히 다른 사회를 추구한다. 하지만 이러한 완전히 다른 사회에서도, 이전의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반사회적, 비도덕적, 공격적인 분자들의 문제는 당분간 존재할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은 복수나 처벌이 사회적 목표인 것은 아니지만, 인민들을 보호할 필요는 수인한다. 앞서 인용한 크로포트킨의 글 역시, “상호 보호”를 위해 구성된 연합체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연합이 어떻게 작동할지는 지역적 조건에 따라 다를 것이다. 각 공동체와 지역들은 서로 다른 방법론을 차용할 것이다.

범죄와 경찰, 법원, 감옥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 주된 문제는 모든 탄압을 즉각적이고 완전히 철폐하는 것이 가능한지의 여부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국가를 없앨 수 있냐는 것이 될 것이다. 노동대중 위에 군림하며 노동대중과 맞서는 관료적 “사법정의”의 체계를, 확고한 법원을, 변호사를, 대규모 경찰청을, 공격적 개인들에게 공격당하지 않는 채로 대체할 수 있는가?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은 범죄 통제와 사회 질서의 유지를 지역적 자치 공동체가 통제하게 되어 각각의 공동체들이 다양한 방식을 실험하게 되는 것을 추구한다.

벤자민 터커가 1893년에 쓴 것처럼, “이웃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법규를 침해하는 행위를 지속할 개인들에 대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나키스트들은 국가가 철폐된 자리에 자발성에 기반한 방어 연합이 남아, 필요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침략자들을 쫓아낼 것이라 주장한다.”

모두가 성자가 되지 않더라도, 반권위주의적 사회주의 아래에서 범죄율이 줄어들 것이라는 말은 분명하게 할 수 있다. 풍족하고 완전고용이 확보된, 최소한의 소득이 보장된, 협력을 향한 사회적 압력이 존재하는 소규모 공동체에서, 재산 관련 범죄는 분명히 줄어들 것이다. 공동체가 자유의지주의적 공주의를 달성하는 수준 만큼, 재산 관련 범죄는 사라질 것이다. 공동체 창고에서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는 물건을 훔칠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자유를 지향하는 사회에서는 현재 불법이라 치부되는 “피해자없는 범죄”와 같은 행동들 상당수가 합법화될 것이다. 우리는 인민들이 선하게 행동하도록 강제할 권리가 없다. 도덕법은 없어질 것이다. 합의한 성인들간의 성행위를 규제하는 법은 없어질 것이고, 소위 “사회적 중독”을 막기 위한 마약금지법이나 금주법은 철폐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지금 체포되는 사람 중 대다수는 더 이상 체포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마약 중독이나 알코올 중독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중단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노력은 AIDS 확장을 막기 위한 노력과 마찬가지로, 입법이 아닌 공중보건의 문제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 노력은 교육과 공공의료, 그리고 필요한 경우 합의할 공동체적 규제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마약이 완전히 금지되어있기에, 우리는 마약의 판매를 규제할 수 없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마약을 사는 것을 매우 쉬운 일로 만든다.) 만약 중독자들이 의료기관의 통제를 통해 마약을 구할 수 있다면, 그들이 마약을 구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마약산업 전체가 무너지게 될 것이다. 금주령 철폐 이후 마피아들의 밀주산업이 무너진 것처럼 말이다.

빈곤, 인종주의, 성차별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마약중독, 알코올 중독, 성폭력 역시 줄어들 것이다. 지금만 보아도, 범죄는 대부분 사회적 조건의 결과물이지, 경찰행위나 정책의 결과물이 아니다. 이를테면, 미국에서 가장 낮은 범죄율을 가지고 있는 주는 노스 다코타 주다. 노스 다코타 주는 살인이나 폭력적 범죄, 강도, 수감자 비율 등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1994년, 노스 다코타 주의 폭력범죄율은 인구 10만명 당 100건 미만이었다. 동시기 캘리포니아의 폭력범죄율이 인구 10만명 당 1,000건 이상이었다는 것과 비교해보면, 그 이질성을 더 잘 알 수 있다. 1995년, 노스 다코타 주 전역에서는 8건의 살인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문을 열어두고, 자전거와 차를 시건하지 않고 당당하게 지냈다. 노스 다코타의 차량보험료는 전국 최저수준이다. 범죄율은 15년 전과 마찬가지 수준이다. 결과적으로, 경찰력은 다른 어느 곳보다 적다. 1995년까지 노스 다코타 주는 부검을 위한 의료검사부서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뉴욕 타임즈는 1996년 9월 21일의 기사에서, “노스 다코타 주 가석방 심사위원회의 위원을 보는 것은, 동화 속 요정을 보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이 기사는 노스 다코타 주의 낮은 범죄율을 설명하기 위하여 여러 가능성들을 제시한다. 심지어 뉴욕 타임즈는 노스 다코타 주가 춥기 때문에 그렇다는 주장마저 내세운다. 언급된 가능성들 중 더 유의미한 것은, 노스 다코타 주의 주민들은 대부분 소규모 농촌 공동체에 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스피릿 레이크 수 족의 부족 판관은 “노스 다코타에서 범죄율이 매우 낮은 이유는, 이곳의 사람들이 서로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 강도나 미심쩍은 자가 온다면, 그는 눈에 띌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기사에서 언급된 다른 이유들은 안정적인 부모, 낮은 이혼율, 상호부조적 확장가족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노스 다코타 주의 실업율은 미국 전체 평균의 절반 정도로 매우 낮다. 노스 다코타는 결코 유토피아가 아니다. 노스 다코타 인들처럼 전통적인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어하지 않는 이들도 매우 많을 것이다. 다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공동체로 이루어진 사회와, 완전고용과, 상호부조적인 사회적 관계는 경찰력을 최소화하고도 범죄율을 낮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 타임즈는 “노스 다코타는 전반적으로 명예로운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기사를 마무리한다. 우리도, (전반적으로)명예로운 체계에 기반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

아나키스트 공동체 역시 규칙과 규제(“법”이라 불러도 좋다)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인민 총회를 통해 승인될 것이다. 지역에 기반한 노동대중들이 가담한 공동체 자경단을 통한 대중의 참여가 그 집행을 담보할 것이다. 공립학교의 운영위원회가 임명한 건널목 지킴이나, 자경단에게 호신술을 가르칠 호신술 전문가와 같은 특수분야의 전문가들도 있을 것이다. 법의학 연구소가 있을 수도 있다. 일부 공동체는 지역 보안관 제도 같은 것을 가지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파레콘”과 같은 후기국가주의를 지지하는 샬롬(2004)은 시민군이 적합한 체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그 직무를 위해 특별히 훈련된,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경찰은 언제라도 필요할 것이라고 바라본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 노동대중에 적대하는 특수경찰부대를 만들 이유는 전혀 없다.

폭력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는 개인들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특히 혁명 이후의 시기에는, 이전의 자본주의 사회가 뒤틀어놓은 이들이 여전히 다수 존재할 것이니 더욱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기본적인 원칙은, 사회는 스스로를 보호할 권리가 있지만, 그를 위해 인민들을 징벌할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반사회분자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는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복수와 앙갚음이라는 고전적 관념들을 포기해야 한다. 개별 피해자들은 여전히 복수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이 복수심에 사회의 정책이 근거해서는 안 된다. (징벌에 반대한다는 것이 개인적 책임에 반대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사회분자들이 과거의 피해자들인 것은 맞지만, 그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책임을 질 때에만, 그들이 피해자됨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피의자를 검거하면 공동체 법정이 그들을 소환하여 선출되거나 채용된 판사 앞에 그를 세울 것이다. 배심원단은 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총회로 구성되거나, 혹은 그 일부일 것이다. 그리고 이 법정은 오직 형사사건만을 다룰 것이다. 공동체 구성원 내부에서 발생하는 민사 사건의 경우, 마찬가지로 법정에 가거나, 양측 모두의 동의를 구한 독립된 조정관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오늘날의 기업간 분쟁 대부분 역시 법정보다는 조정관을 통하여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판사들은 공동체의 규칙을 따를 것이고, 다른 판사들이 행한 이성적 판단의 판례들을 참조할 것이다.

특정한 개인이 반사회적 행동을 범했을 때, 공동체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화해와 배상을 통해 그 효과를 중화시키고자 시도할 것이다. 공공 서비스가 제공될 수도 있고, 직업이 제공될 것이며, 상담이 제공될 것이다. 수정된 형태의 감호조치를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해자는 공동체 안에 살지만, 공동체의 감시를 받게 될 것이다.(감옥철폐운동을 하고 있는 몇몇 사람들은 이러한 방식이 투옥의 대체재가 될 수 있다고 바라본다. 그들 중 일부는 이미 이러한 방식들을 실험해보기도 했다. 모리스, 1976이나 페핀스키&퀴니, 1991을 참조하라.) 만약 이들의 행위가, 사회적 자위권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라면, 이들은 공동체의 집단거주구역이나 (최후의 수단으로)구금 기구(소규모 감옥)에 구금될 것이다. 하지만, 감옥 다수는 철폐될 것이다.

우리의 사회에서 수감자들의 “교정”따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감자들은 수감 이후에 재범을 저지를 가능성이 오히려 더 높다. 감옥은 그저 사람들 다수를 거리에서 치워내기 위한 가장 값싼 수단일 것이다. “교정”이라는 것은 우리가 선하고 건강한 사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정한다. 그리고 “교정”을 통해 일탈자들과 범죄자들이 이 사회에 섞여들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타인을 착취하여 앞서나간다는 반사회적 행동을 행한다는 점에서 대기업의 총수와 자동차 도둑은 동일한 것이나 다름없다. 남성의 폭력은 전쟁과 미디어를 통해 영광을 누린다. 중간계급의 풍요를 위하여 빈곤을 만들어낸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은 만연하다. 빈자와 유색인종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은 더 이상 없다. 마찬가지로, “교정”은 불가능하다. 감옥은 그저 범죄의 학교일 뿐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자유롭고 협동적인 사회에서라면, 범죄자의 교정은 실현가능한 목표가 될 수 있다. 사람에 가치를 두고,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대항한 투쟁이 이루어지고, 협동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고, 모두가 좋은 일자리와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에서, 반사회적 행동은 그저 일탈이 될 것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만이, 반사회분자들이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회에 합류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 합당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법정과 감옥에서는 이러한 일을 할 수 없다. 새로운 사회는, 이들의 문제를 해결할 최적의 방법을 찾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이다.

교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장기적 예방이다. 혁명 직후에 자유로워진 인민들은 빈곤과 압제를 철폐하기 위한 과업을 수행할 것이다. 이들은 아동 학대와 아동 방치를 극복할 것이다. 냉혹한 반사회분자들 다수는 아동학대의 산물이다. 각 공동체가 운영할 대규모 사회복지는 모든 아동을 보호할 것이다.(켈러만, 1999) 문제가 있는 가정을 재결합하도록 돕기 위한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다. 따뜻한 돌봄을 제공할 보육시설이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버림받거나 부모를 잃은 아동들은 공동체 주택, 청년주택, 공동체 치유 그룹 등에서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많은 아동(혹은 청소년) 들은 가족을 떠나 청년 주택에서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할 것이다.

위험한 아동(폭력적인 반사회 행동을 할 위험이 있는 청년)을 식별하기 위한 특별한 노력이 기울여질 것이다. 공동체 기구는 폭력성의 징후를 보여주는 어린이들을 최대한 빠르게 확보할 것이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행동은 인종차별의 정당화기제가 된다. 하지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탈자본주의 사회다.) 이들에 대한 특별치료, 교육, 의료는 이들이 권위주의 사회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비도덕적 괴물로 전락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가 없이 사회주의적 아나키즘 사회는 어떻게 협동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경제적 계획이나 기업의 규제는 일정부분 존재할 것이다. 이러한 계획이나 규제는 “사물에 대한 행정이지, 사람에 대한 것은 아니”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사람의 협력이 없이 어떻게 사물에 대한 “행정”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지역 층위(공동체나 공장)에서 협동은 총회에 모인 사람들이 될 것이다. 높은 층위의 연방에는 총회가 선출한 대의원들이 출석할 것이다. 이들은 경제적 협력과 같은, 그들이 선출된 이유를 다루는 데에 집중할 것이다.

모든 혁명들이 우리에게 준 해답은 언제나 같았다. 모든 혁명들에서는 인민위원회가 등장했다. 이러한 인민위원회들 중에는 대면을 통해 이루어지는 직접민주주의 방식으로 운영된 위원회들도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기에 구성된 지역총회나 러시아 혁명기에 건설되어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도 이를 본따 건설된 현장노동자의 공장위원회 등 말이다. 지역 기반의 자치공동체들은 대의원들을 중앙으로 파견했다. 이 중앙조직들 역시 상급 위원회들에 대의원단을 파견했다. 1936년의 스페인 혁명, 1956년의 헝가리 혁명과 그 뒤를 이은 동유럽의 혁명 시기에 이러한 노동자(혹은 노동자 · 농민 · 군대) 위원회들이 등장했다. 1970년대의 칠레 투쟁,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남미의 투쟁들에서 노동자 평의회가 등장했다.

샬롬은 “다층 평의회” 체계를 제안한다. 각 공동체 단위로 형성될 초급 평의회는 모든 성인 공동체 구성원들(25~50명)로 구성될 것이다. 50명 이내의 규모를 유지하는 것은 대면 토론과 숙의를 통한 의사결정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평의회들은 역시 50명 이내로 구성된 2단계 평의회로 대의원단을 파견할 것이다. 이 과정을 한 나라 전체를 구성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하자는 것이다. 아나키스트들과 달리, 샬롬이 제시하는 “다층 평의회”에서의 대의원단은 초급 평의회의 의사결정에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 그 구속력이 없는 이상, 대의원이 마음을 바꾸고 결정을 바꿀 수 있는 것인데 말이다.(아나키스트들은 결정의 속도를 크게 낮추는 한이 있더라도, 상급 평의회의 결정은 하급 평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지역 공동체나 공장위원회를 통한 직접 민주주의에 뿌리내린 평의회 체계는 유연한 급진적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적 협동을 가능하게 한다. “지도자”에 대한 인민의 통제력은 유지될 것이다. 관료들의 교체는 잦아질 것이다. 서로 다른 당(혹은 당이 아닌 정치조직)들은 그들이 확보한 지지의 수준만큼 대변될 수 있을 것이다. 인민의 정치적 의견 변화는 보다 쉽고 빠르게 반영될 것이다. 그렇기에, 당(혹은 비정당)들의 입지는, 특히 소수로 시작하여 영향력을 확장할 혁명적 조직의 위상은 평화롭게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평의회 체계의 구체적 구성방식은 혁명 중에 준비되어야 하고, 구체적인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이 평의회가 주로 지역공동체에 기반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나키즘적 조합주의 전통에 입각한 다른 누군가는 평의회가 공장, 사무실, 작업장에 기반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출과 대의의 방법은 지역마다 다양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연방적 평의회 체계의 장점이기도 하다.

아나키스트들은 공장과 공동체 모두에서 직접민주주의에 기반한 지역의 자치기구의 중요성을 신봉한다. 파견대의원들을 포함한 고등의 연방들은 존재할 것이지만, 이 연방 역시 일상적 직접민주주의(“삶의 방식”으로서의 민주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 인류가 존재해온 기간의 대부분 동안, 우리는 수렵-채집부족부터 부락까지 다양한 소규모 공동체에서 살아왔다. 초기 도시들은 수만 규모의 인구를 가지고 있었다. 수백만이 살아가는 도시라는 개념은 산업혁명이 만들어낸 현대적 개념이다. 아나키스트들은 탈중앙주의자로서 현대 도시와 후기 산업시대의 생활조건의 이점을 탈중앙화된 직접 민주주의와 혼합하고자 한다. 민주주의가 단지 대표자를 결정하여, 그 대표자가 다른 곳에서 우리를 위해 정치적이 되도록 하는 기제 이상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혼합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인민의 일상적 의사결정에 뿌리를 박아야 한다.

토마스 제퍼슨은 뉴잉글랜드의 마을 평의회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제퍼슨은 자치군들을 더 작은 분구로 나누어 그 분구들에 교육과 민병대, 경찰, 도로유지보수, 사법, 상급 자치구에 관한 선거 등의 통제권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사람이 그가 살아가는 분구-공화국의 방향을 공유하고 있다면, 그를 통하여 더 상급의 자치구들의 방향을 조금이라도 공유할 수 있다면, 그가 1년 중 하루의 선거일 뿐 아니라 일상적 삶 속에서 통치의 일부라고 느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카이사르나 나폴레옹같은 자가 자기 힘을 앗아가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심장이 뽑혀나오는 것을 감내할 것이다.”

특정한 기구에서 탈중앙주의와 중앙집권주의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실무적 문제다. 우리는 지역 코뮌을 필요로 하는 만큼 국제적 조직도 필요로 한다. 원칙적으로, 연방주의는 이 둘 모두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적절한 균형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은 사회적 실험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최소의 중앙집권을 제외하고, 최대한 높은 수위의 탈집중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기본적 원칙임은 분명하다.

마르틴 부버 역시, 문제작 『유토피아로 가는 길』(1958)을 통해 이와 같은 것을 지적한다. 그는 “우리는 중앙집중을 추구해야 한다. 하지만 지방에게로 과업을 넘겨야할 때는 도래할 것이다. 우리는 각 지방에 최대한의 주도권을 남겨두어야 한다”던, 러시아 혁명기의 레닌을 인용하고, 다음과 같은 첨언을 남긴다. “‘우리는 중앙집중을 추구해야 한다. 하지만...’으로 말을 시작하는 대신, 말을 한 바퀴 돌려 ‘우리는 중앙집중을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혁명적 필요에 따라 중앙으로 과업을 넘겨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이 필요가 객관적이고 임시적인 수준을 넘지 않도록 주의하자’라고 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회주의적 태도일 것이다.” 정확하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과 달리, 혁명의 도중에 조차, 우리는 일시적으로 필요할 때에만 중앙집권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

탈중앙화되고, 연방으로 결합한 민주주의 체계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이 자신의 모든 시간을 투자하여 모든 결정과정에 참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바버는 『강한 시민사회, 강한 민주주의』에서 참여적 정치를 “강한 민주주의”라 부르면서, 그 목적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 시간의 일부로 통치행위에 대한 책임의 일부를 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협력을 위해 사회를 “대표”하여 모든 기구 위에 군림하는 “주권”기구를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현대 사회에 세계 정부 같은 것이 있는가? 국제적으로, 우리는 “아나키” 상태에 있는 것이다. UN 결의안은 강대국들이 동의할 때에만 작동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세계 모든 지역의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다. 각국의 우정체계가 그러도록 합의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비행기도 세계 전역을 날고, 기업들은 세계 전역에서 사업을 벌이며, 인터넷은 세계 전역에서 작동한다. 세계를 하나로 묶기 위한 규칙을 만들기 위한 국제 회의들은 만연한 민족주의 속에서도 개최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세계 정부 같은 것은 없다.(크로포트킨이 이러한 지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내에서도, 국가가 모든 기구 위에 군림하는 무제한적 힘을 가지지고 있지 않다. 미국 국가는 “교회와 국가를 엄격히 분리”해야 하기에, 교회를 후원하거나, 재정을 지원하거나, 개입하지 않는다. 교회는 수백만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거대 기구다. 그리고 이론적으로 교회는 국가와 같은 층위에 있지 그 아래에 있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시민권이라는 것이 보장된다는 것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닌 한, 정부가 통제하지 않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최소한 이론상은 그러하다. 실질적으로, 많은 기본권들은 침해당하고 있다.)

길드 사회주의자들은 자유로운 사회주의는 국가사회주의의 중앙집중적 방식이 아니라, 다원주의적인 방식으로 산업을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콜, 1980; 패트먼, 1970; 타우니, 1948) 더 최근의 주장을 보자면, 존 번하임은 그가 추첨제라고 부르는 극단적 다원주의를 주장한다. 현재 중앙의 다기능 기구가 행하고 있는 전국적, 도시적 결정들은 “통제기구의 지침이 없더라도, 스스로 협상하고, 협상이 실패할 경우 유사사법적 조정을 이용하여 서로 협동하는 자율적인 특별기구들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는 공원과 거리와 도서관의 운영, 규제의 신설, 보건 서비스, 미화 등이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번하임, 1989)

번하임의 모델에서, 각 기구의 방향은 공동체 전체가 아닌 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모두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선출된 지도위원회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도위원회는 그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 중에서 추첨될 것이다. 오늘 우리는 배심원단을 추첨으로 뽑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에서 공무원과 위원회를 선출할 때에 작동하였던 방식이기도 하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인구분포에 따른 관점 차이가 반영되는 “통계적 대의 민주주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전업 정치인 대신 평범한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기구들을 직접 관리할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이러한 형태들은 지역과 민족성에 따라 각자 다르게 실험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일부 지역들은 대중조직이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되어 총괄적으로 사회를 운영하는 더 견고한 연방 체계를 선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서로 평등한 조직들이 필요할 때에만 합의를 통해 협력하는 느슨한 연결망을 선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번하임이 주장하는 것 같은 극도의 다원주의를 성취하기 위해 추첨제가 필요충분조건인 것은 아니다. 바버(2003) 역시 선출직 대표자들을 대치하기 위한 여러 기구들을 실험해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나키즘에 대한 흔한 비판 하나를 이야기해보자. 아나키즘은 모든 사람이 언제나 선해지는 것이 가능하다고 상정한다는 비판을 자주 받는다. 그렇기에 아나키즘은 인간 본성의 부정적 측면을 거부하는 너무 이상주의적인 이데올로기라 불린다. 아나키즘이 모든 인간은 협동적이고 자주경영적인 사회에 적응할 것이라 믿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아나키즘은 모든 사람이 완벽해질 수 있을 것이라 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나키즘은 언제나 인간은 믿을 수 없는 존재라고 믿어왔다. 그렇기에 어떠한 인간도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권력을 가져서는 안되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아브라함 링컨은 노예제에 대해 말하면서 “누구도 다른 사람의 동의 없이 그를 지배할 만큼 훌륭하지는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아나키스트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심지어 동의가 있더라도, 누구도 타인을 지배할 만큼 훌륭하지 않다“고 믿는다. ”모든 권력은 부패한다“는 것이야말로, 아나키스트들의 근본적인 신념이다. 그렇기에 아나키스트들이 탈중앙화 · 다원주의 · 사상의 자유 · 언론의 자유 · 직접 민주주의 · 대의성의 최소화 · 권력이 누군가의 손에 쌓이는 것에 대한 예방을 옹호하는 것이다.(굿맨, 1965)

누군가는 불량사회는 어찌할 것인가?라고 물을 것이다. 아나키스트 연방이 존재하는 가운데, 특정 마을, 코뮌, 혹은 도시가 연방을 탈퇴할 권리를 행사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나서 이들이 오직 백인만을 구성원으로 받겠다고 선언하거나, 학교에서 창조설을 가르치거나, 다른 공동체들과 공유하는 강에 폐기물을 버린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럴 때 국가가 나서서 각 공동체들이 공동선에 복무하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닌가? 국가없는 사회에서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충분히 유의미한 가정이다. 내가 자유의지주의적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인간들은 완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에 동의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나는 이러한 경우에 다른 지역 공동체들이 회의를 개최할 것이라 본다. 누군가는 이 회의에서 이 불량사회를 내버려두자고, 이들이 그냥 고여 썩어가게 두자고 제안할 것이다. 유색인종들은 다른 곳에서 살 수 있으며, 그들의 학교는 상급 교육기관에서 인정하는 학력이 되지 못할 것이다. 다른 이들이 그들의 폐기물을 치울 수도 있다. 최소한 그것이 탄압보다는 낫지 않겠냐는 제안이 있을 수도 있다. 반면 다른 누군가는 스스로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 해하는 저 불량사회를 용납해서는 안된다고 선포할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하여 지역 자경단을 동원하고, 적 공동체에 쳐들어가 그 정책을 바꾸게끔 하자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두 주장이 너무 극단적이라며, 중간 어디엔가의 방식을 제안할 수도 있다. 그 공동체가 정책을 바꾸도록 설득하기 위한 선전활동이 조직될 수도 있고, 그 공동체 안에서 비폭력 시위를 개최하여 폭력적이지 않은 불편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 공동체에 대한 경제적 보이콧은 무기 없이도 그들을 탄압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각 지역연방들은 각자의 특정성에 따라 여러 정책들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 등은 아나키스트들이 완전히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협력적인 사회(마르크스가 말하는 바, “고등공산주의”)로 바로 건너뛸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고 착각하고 있다. 이것이 아나키즘의 캐리커쳐다. 우리가 보아온 아나키스트들은, 일반적으로 (크로포트킨의 말을 빌리자면) 무장대중을 통한 “영역의 방위”와 “상호 보호”, 연방을 통한 사회적 협동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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